사랑이 전부다
사랑이 전부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 프랜시스 챈
신학을 중시하고 죄를 미워하면서, 그와 동시에 연합을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는 매우 드물다.
연합을 원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냥 좋은게 좋은 거잖아."라며 신학과 거룩한 삶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 가지를 다 원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바른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분열은 대개 상대와 진실한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의견이나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피상적' 사랑이 문제다.
깊은 사랑에 빠지면, 분열은 생각할 수도 없다.
'이혼하는 것'과 '내 의견을 양보하고 배우자와 갈등을 해결하는 것', 이 둘 중에서 내가 전자를 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배우자를 너무 사랑하기에, 헤어지기는커녕 멀어지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우리는 정말 쉽게 분열한다.
우리의 사랑이 그만큼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은 표정이나 몸짓, 꾸준히 건네는 칭찬의 말이나 희생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기쁨과 평강을 누린다.
자원함으로 연합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한다.
우리에게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 하신 것들을 주님은 그분의 몸 된 공동체를 통해 사랑으로 공급해 주실 것이다.
사랑이 전부다.
사랑에 초점을 맞출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의 연합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 나라를 위한 일에 뛰어든다면 다른 어떤 일에서보다 더 큰 만족과 기쁨이 돌아올 것이다.
- 루시 쇼
한절 묵상 민수기 (32장 25, 27절 )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헌신하지 않는 나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데 실패하는 사람은 충성이 필요할 때 자기 안위부터 챙기고, 희생을 요구받으면 손익부터 계산합니다.
모세는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에게 온전한 헌신을 다짐받습니다.
본문에서 여러번 사용된 '여호와 앞에서'라는 표현은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20~27절).
헌신은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에 충실한 태도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과 섬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