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 34일 : 외침과 들으심의 공명

w.j.lee 2024. 3. 19. 04:24

 

 

외침과 들으심의 공명

2024년 3월 23일 · 토

마가복음 10:32-34,  46-52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 유 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막10:48)

 

 

 

세 번째 수난을 예고하는 예수님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제자들과 동행하던 분이 이제는 앞서 걷습니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분이, 찾아오는 이들을 기다리던 분이 앞장서 걷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달라진 주님의 모습에 당황하며 두려워합니다.

말은 없지만 뭔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엔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홀로 걸어야 할 길'을 나섰습니다.

이제까지는 제자들, 말씀과 치유가 갈급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사역의 중심이었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던 걸음입니다.

연약한 이를 위해 한없이 기다려 주던 여정이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길잃은 양, 이스라엘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 중심이 됐습니다.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나누던 시간을 뒤로한 채 십자가를 향해 깨어 걸어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 

누가는 이를 일러 '돌을 던져서 닿을 만들 떨어지는 것'(눅22:41)이라며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자기 생명을 ㄷ드러내는 기도를 다른 이 앞에서 드릴 수는 없지요. 

생명을 받는 분은 아버지 이니 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믿음의 결정적 걸음은 사람들과 의 논하거나 경험에 근거한 조언을 들으며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께서 거두시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길을 홀로 걸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 길은 아버지께서 마련해주신 길이며 우리에게 걸을 힘도 주신 길임을.

 

여리고의 바디매오도 홀로 남겨진 사람이었습니다. 

보지 못하고 구걸로 연명해야 하니 아무도 그와 함께하지 않았지요. 

살아는 있으니 세상에는 '없는 셈'인 인생입니다. 

모두 자기 길을 가는데 바디매오는 길에서도 밀려나 길가에 있습니다. 

우정으로 대해줄 벗도 없으며 환대 하는 이도 없었지만 홀로였기에 자신이 들어야 할 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님이 지나신다!' 

그야말로 지나는 소리에 불과했지만, '길가 인생'인 자기에게 유일한 길임을 알아챘습니다.

 

바디매오는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꾸짖으며 입을 다물라 하지만 더 크게 외칩니다.

외침은 주님을 향한 것입니다.

사이에 선 이들이 뭐라고 하든 그것은 그들의 일 일 뿐, 예수님과 바디매오 사이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바디매오에겐 자신의 생애에 유일하게 주어진 기회였고 두 번 다시 부를 수 없는 이름이기에 더 간절히 불렀습니다. 

절규에 가까웠을 그의 외침을 예수께서 들었습니다. 

주께서 멈추고, 그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천연덕스레 안심하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합니다.

 

주님과 나 사이의 웅성거림이 잦아드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웅성거리지만 주님을 향한 기도는 그것에 짓눌리지 않습 니다.

주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주님 말씀일지라도 그저 입으로 옮기는 이들에게는 '지나가는 말'이 되었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눈을 뜨고 새 세상을 보는 사건은 주님과 바디매오 둘 사이에서만 일어 났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선언이 홀로 걷던 둘 사이에 공명이 되어 울립니다.

눈을 뜨자 새 길이 드러났습 니다.

예수님의 길이 그에게 드러났으니 자연스레 그분의 길이 바디매 오가 따를 길이 됩니다.

 

바디매오의 길이 주님의 길과 만나 새로운 세상이 열리듯 우리도 주님의 길과 만날 수 있기를 청해야겠습니다. 

이 길을 그냥 지나치면 언제 다시 만나겠습니까?

 

 

기도

주님, 

저희에게 허락된 사순의 시간에 홀로 걸으시던 주님을 묵상하며 저의 걸음을 돌아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디매오처럼 이 길에서 주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당신의 말씀을 그저 옮긴 후 사라진 이들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웅성거림에 귀를 막고 현란한 것들에 눈을 감고 주님의 걸음, 그 발자국 소리에 깨어있게 하십시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사'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기도하게 하십시오.

아멘

 


출처 : 사순절 묵상여정- 곁에 머물며(송대선, 지강유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