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종려주일 : 동상이몽

w.j.lee 2024. 3. 19. 07:13


동상이몽

2024년 3월 24일 일

마가복음 11:1-11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막 11:7-8)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께서 성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주님의 걸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결같은 걸음이지만 지켜보는 이 들은 다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제자들은 선생님이 예루살 렘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지 잔뜩 기대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반응을 살피며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가 흔들리지 않을까 주시합니다.

로마는 유월절에 혹여 소요라도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가운데 지켜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따르는 백성들도 기대감에 부풀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부터 시작되는 긴장이 예수 님의 시간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첫 시작은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타는 것입니다. 

나귀는 주로 짐을 부리는 동물입니다. 

볼품이 없지요.

말과 같은 위용도 없고 굽어볼 만큼의 높이도 없습니다.

게다가 어린 새끼를 탔으니 모양새도 그리 썩 좋아보이지 않겠지요.

흔들거리고 뒤뚱거리기도 하면서 입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산에 오르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즉위식은 아무도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초라합니다.

옛 예언자는 이를 그분의 겸손이라고 암시하지만(마 21:5) 사람들의 기대와는 너무 다른 광경입니다.

 

백성들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오는 예수님이지만 개의치 않고 환호 합니다. 

겉옷을 펼쳐 그분의 길을 마련하고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며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합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분이여!' 라는 환호는 분명 메시아의 도래를 뜻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라 는 고백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격의 환호로 자신들이 메시아를 맞아들이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도성은 들떠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입성식에 메시아의 임재, 새로이 즉위하는 임금의 도래라는 자신들의 염원을 풀어냅니다.

그들 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 하나님이 보내신 새로운 임금으로 맞이하고 싶어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연출하는 메시아의 즉위식과 사람들이 마련한 즉위식이 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흐름은 전혀 다릅니다. 

한편 에는 흥분한 이들, 메시아의 도래를 외치며 들떠서 당장 무엇이라도 성취할 것 같은 분위기에 사로잡힌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 한가운데, 흔들리는 어린 나귀의 등 위에서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한 주님이 계십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되어 침묵 가운데 순종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하나는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손바닥 뒤집듯 분노와 저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굳이 당신의 연출과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들의 함성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내실 것을 논쟁으로 끌어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눈에 드러난 모양은 믿음의 실재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가까이 갈수록 믿음이 담고 있는 실상이 드러납니다.

불분명하고 흐릿한 것이 점차 선명해집니다.

순종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합한 믿음 인지, 자기만족을 위해 제 뜻을 성취하려는 것인지가 구분됩니다.

예루살렘 입성은 그 출발점이며, 십자가는 그분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믿음의 신실함을 구별하는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어떤 이에게는 하나님께로 도약하는 디딤돌이고, 어떤 이에게는 넘어지는 걸림돌이 됩니다.

 

 

 

기도
주님, 

나귀에 오르셔서 백성들의 환호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잠긴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가 주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 는 주님을 찬양하게 하시고 저도 그리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찬양하다 원망하고 분노하는 이들을 용서하신 주님!

자주 그러는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다시금 '나 를 따라오라'고 속삭여 주십시오.

아멘


출처 : 사순절 묵상여정- 곁에 머물며(송대선, 지강유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