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제 1부 역사적 배경 8

제 1장 서론

제 1장 서론 성경 독자들이 말라기 4장에서 마태복음 1장으로 책장을 넘길 때, 그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구약에서 신약으로 건너 뛰게 될 뿐 아니라, 또 대부분의 독자들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사실이지만- 신구약 사이의 수 세기의 기간을 건너 뛰고 있는 것이다. 말라기와 세례 요한의 출현 사이에는 약 4세기에 걸친 공백이 있다. 과거에 어떤 학자들은 이 공백기간이 유대 역사나 신약의 역사와 신학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침묵의 세기들”(silent centuries)이라고 지칭하여 망각 속에 묻어버렸다. 그러나 이 세기들은, 종종 이해되고 있는 것 보다 더 큰 의미에서, 신약시대와 신약성경에 대한 이해와 정당한 평가를 위한 열쇠가 되고 있다. 구약과 신약성경의..

제2장 페르샤 통치 하의 유대인

제2장 페르샤 통치 하의 유대인 B.C. 596년에서 A.D. 70년에 이르는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의 결정적인 시기였다. 유대교"가 존재케 된 것은 바로 이 기간 동안이었다. B.C. 605년과 B.C. 596년에 있었던 국외 이주를 필두로 하여 수세기 동안 유대 땅에 집중되어 있었던 유대인들은이제 결과적으로 근동과 중동, 소아시아, 유럽에까지 확산된 하나의 종교적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느헤미야, 에스라, 에스더와 같은 성경들과 외경과 위경에 속한 마카비서들(the Books of the Maccabees), 요세푸스가 저술한 「유대의 고사기」(Jewish Antiquities)와 「유대 전쟁사」 (Jewish War) 같은 책들은 이 기간의 역사에 빛을 비추어주는 책들이다. 또한 여..

제3장 알렉산더 대제와 유대인

제3장 알렉산더 대제와 유대인 마게도냐의 필립 왕이 나타나기 이전에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이 결코 통합된 적이 없었다. 크세르크세스 이래로 그리스 국가들의 세력이 날로 증가하여 갔지만 그들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정복하여 제국을 형성할 만한 공격력은 없었다. 물론 모 든 도시 국가들이 헬라 동맹(Hellenic League)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연합을 성취한 이는 마게도냐의 필립이었으며, 이 동맹은 페르샤 제국을 정복하는데 하나의 힘이 되었다. 알렉산더 대제의 부친인 마게도냐의 필립은 헬라 문화에 대한 상당한 긍지를 가졌다. 그는 아들인 알렉산더를 심마쿠스(Symmachus)라는 선생에게 맡겼고, 그는 알렉산더에게 호머의 일리어드(Iliad)를 알게 해주었다. 알렉산더가 1..

제4장 프톨레미 왕조와 유대인

제4장 프톨레미 왕조와 유대인 B.C.323년에 알렉산더가 죽으면서 그는 자기의 자리에서 제국을 통치하기에 충분한 나이의 계승자를 남기지 않았다. 그가 죽은 후에 알렉산더의 박타리안 왕족인 아내 록산나에게서 한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제국을 통치하는 계승자가 되길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친가와 처가에 있었다. 심지어 위대한 정복자가 장사되기도 전에 그의 왕국을 소유하고자 하는 자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 동안 알렉산더의 휘하 장수들 중의 하나였던 페르디카스(Perdiccas)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알렉산더의 아들을 위하여 제국의 통합을 고수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알렉산더의 이복형제이며 정신 이상자인 필립 아리 대우스(Philip Arridaeus)는 알렉산더의 아들이 혼자서 통치가 가능한 ..

제5장 셀류키드 왕조 하의 유대인

제5장 셀류키드 왕조 하의 유대인 수리아를 통치한 셀류키드 왕조의 역대왕들은 다음과 같다. 셀류쿠스 1세 (Nicator) B.C.312-280 안티오쿠스 1세 (Soter) B.C.280-261 안티오쿠스 2세 (Theos) B.C.261-246 셀류쿠스 2세 (Callinicus) B.C.246-226 셀류쿠스 3세 (Keroneos) B.C.226-223 안티오쿠스 3세 B.C. 222-187 셀류쿠스 4세 (Philopater) B.C.187~175 안티오쿠스 4세 (Epiphanes) B.C.175~163 안티오쿠스 5세 (Eupator) B.C.163~162 데메트리우스 1세 B.C.162~150 데메트리우스 2세와 알렉산더 발라스의 권좌를 위한 투쟁 알렉산더 발라스 B.C.150~145 데메..

제6장 마카비가(家) 통치 하의 유대인

제6장 마카비가(家) 통치 하의 유대인 헬라화 정책에 대한 유대인의 반대는 마침내 마카비 일가가 주도하는 공공연한 반란으로 발전되었다. 이 반란은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단호한 투쟁으로 격화되었다. 유대인들과 수리아 군대 사이의 전투의 결정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보낸 장교가 예루살렘과 욥바 사이의 분지에 위치한 모딘(Modin)이란 마을에 들어갔을 때 발생하였다. 아스모니안 계열의 마타디아스(Mattathias of the Asmonean line)는 이 방신을 숭배하기 위하여 세워진 제단 위에서 이방신에게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연로한 제사장에게 승복하라는 특별한 요청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본을 보이면 백성들이 영향을 받으리라는 수리아측의 계산 때문이었다. 만일 응락하..

제7장 하스모니안 왕조 하의 유대인

제7장 하스모니안 왕조 하의 유대인 비록 프톨레미가 시몬의 후예들을 멸절시키고자 계획하였지만 그의 아들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는 도피하였다. 프톨레미의 살해 음모에 대한 경고를 받으면서도 요한 힐카누스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의 아버지가 담당하였던 대제사장의 직임을 받았다. 그는 왕의 칭호를 갖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시몬조차도 왕이란 칭호 사용을 허락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스모니안 일가의 한 사람이 왕이란 칭호를 스스로 사용하였는데,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였는지는 의심스럽다. 시몬의 죽음은 유대인에게 환란을 초래하였다. 왜냐하면 수리아인들이 시몬의 살해 소식을 듣자 예루살렘을 공략하기 위하여 진군하였기 때문이다. 오랜 동안 예루살렘이 포위공격을 받은 후에 힐카누스는 수리아 왕..

제8장 로마 통치 하의 유대인(B.C. 63~A.D. 135)

제8장 로마 통치 하의 유대인(B.C. 63~A.D. 135) 유대의 역사에 있어서 로마의 통치 기간은 B.C. 63년에 시작되며 유대인의 생활의 붕괴를 가져오는 바르-코흐바(Bar-Cochba)의 반란이 하드리안(Hadrian-로마황제)에 의하여 진압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A.D. 135년에 하드리안은 예루살렘에 로마식 도시인 Aelia Capitolina 를 세움-역자주) 신약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이 기간이 A.D. 70 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에서 끝이 난다. 유대인 들이 로마 통치자가 제시한 법률에 굴복하여 순종할 때 그들은 정상이 참작된 대우를 받았다. 유대교는 로마제국 안에서 인정된 종교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유대인들은 그 액수가 작아서 짐이 되지 않을 만 큼의 조공을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