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제 1부 역사적 배경

제 1장 서론

w.j.lee 2023. 5. 9. 13:20

제 1장 서론

 

성경 독자들이 말라기 4장에서 마태복음 1장으로 책장을 넘길 때,

그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구약에서 신약으로 건너 뛰게 될 뿐 아니라,

또 대부분의 독자들이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사실이지만- 신구약 사이의 수 세기의 기간을 건너 뛰고 있는 것이다.

말라기와 세례 요한의 출현 사이에는 약 4세기에 걸친 공백이 있다.

과거에 어떤 학자들은 이 공백기간이 유대 역사나 신약의 역사와 신학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침묵의 세기들”(silent centuries)이라고 지칭하여 망각 속에 묻어버렸다.

 

그러나 이 세기들은, 종종 이해되고 있는 것 보다 더 큰 의미에서, 신약시대와 신약성경에 대한 이해와 정당한 평가를 위한 열쇠가 되고 있다.

구약과 신약성경의 무대가 모두 지중해 연안이지만 두 성경의 지적(知的)이며 사회적, 종교적 배경은 서로 상이하다.

사실상 신약성경이 기록된 분위기는 두 성경 사이의 중간사 시기에 표출된 것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구약성경에 대한 연구만 가지고는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또한 로마제국의 역사에 대한 개관은

성경독자들에게 많은 신약성경상의 구절들과 관념들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중간사 기간에는 중요한 발전들이 있었다.

즉, 강대한 왕조들의 교체가 있었고, 유럽의 판도가 두 세 차례나 바뀌었으며,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국경선이 커다랗게 변모하였고, 새로운 문화들이 출현하였다.

 

중간사에 속하는 정치와 종교의 역사는 성경학도들이 꼭 알아야 하는 과목이다.

이 기간에 기록된 문헌들은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기간에 히브리어, 아랍어, 그리스어로 기록된 중간사 문헌들은

아이스펠트(Eissfeldt)가 “구약의 영향사" (die Wirkungsgeschichte des Alten Testaments)라고 호칭한 바,

곧 세계와 기독교 역사에 끼친 구약성경의 영향을 보여준다.

 

신구약성경 사이의 중간기 역사는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평가할 수 없으리만큼 귀중한 것이다. 

이것은 말라기 당시의 정치적 이며 사회적 상황과 복음서 독자들이 직면한 세계 사이의 공백을 다 리놓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발견되는 제도들이 신약성경에서 계속 나 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중간세기 동안에 세계 제패권은 페르샤에서 로마로 넘겨진다.

즉, 서방이 이제는 동방을 대신하여 지배한다.

유대인 사회의 전 국면은 신약성경이 기록될 때까지 변화를 겪었다.

신약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새로운 사실들과 상황들이 자기에게 부딪쳐오며 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중간사 시기에 일어난 여러 발전에 대한 연구는 그로 하여금 이미 발생했던 많은 변화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말라기 시대에는 인구가 희소하였고, 성읍들은 쓰레기더미에 불과 하였으며, 

곳곳마다 땅은 황폐한 채 버려져 있었고, 소수의 착취에 의하여 대다수가 더욱 악화된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나 초기 신약시대에는 팔레스틴이 로마제국 가운데서 가장 인구밀도가 조밀한 지역 중의 하나가 되었고 그 성읍들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계단을 이룬 언 덕들은 마지막 한 치까지 개발되어 경작되었다.

팔레스틴의 상인들은 지중해 세계의 무역에 참여하여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리스어는 신약성경의 언어인데 당시 로마제국 전역에서 널리 사 용되고 있었다. 

비록 쿰란(Qumran)에서 발견된 문헌들은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에 히브리어가 완전히 사멸된 언어가 되었다는 주장을 부인 하고 있지만, 당시에 아랍어는 히브리어를 대신하여 통용어가 되었다.

구약시대의 말기에 아람어가 페르샤 제국의 lingua franca (세계 공용어)가 되었고 이 사실은 회당예배시에 통역관(methugeman)을 기용한 기원을 설명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율법과 선지서에 대한 아람어의 대구적(的) 번역이 구술로 전달되었으나

후기 초대교회 때에는 이들이 결국 문자화되어 탈굼(Targum)이라 지칭되었고, 상당수의 종류가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그리스어는 어디서 들어왔는가? 

이 당시에 70인경(Septuagint)으로 알려진 그리스어 역본이 있었으며

이것은 애굽의 파피루스에 사용된 코이네 그리스어 (Koine Greek)와 동일시되는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왜 타국으로 분산된 유대인들(Diaspora)은 그리스 역본 대신에 자기들의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과 신약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출현 사이의 수 백년의 역사에서 발견된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유대교의 특징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열적인 헌신과,

다신교 및 우상숭배의 회피였으며, 더 나아가 신약성경에서 강조되고 있는 영혼불멸과 육체부활에 대한 신앙까 지도 포함하고 있다.

이 종교가 갖는 종말론적인 견해들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세기보다

예수 강림 이후 일세기에 보다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산헤드린 공회를 만나고, 장로들의 전통에 대하여 읽으며, 서기관들의 활동을 대하게 된다.

복음서 저자들은 많은 경우 예수께서 제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율법을 읽고 종교적인 강론과 기도를 하시기 위하여 회당을 찾으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은혜를 베푸셨을 때 팔레스틴은 유대와 사마리아, 갈릴리의 세 부분(주<州>)으로 분할되었다. 이러한 성경상의 분할은 어 떻게 유래되었는가?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신구약의 중간사 시기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지리와 역사, 종교적 발전을 연구할 때 얻어진다.

 

중간사를 연구하는 자료들은 애굽의 역사가인 마네토(Manetho)와,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의 저서들,

폴리비우스(Polybius)의 역사서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와 필로(Philo)의 저서들,

유대의 외경 과 위경들, 다메섹(Damascus)에서 발견한 사독의 문서들(Zadokite documents),

사해 동굴들에서 발견한 저작물들 등에서 얻게 되었다.

 

본서의 목적은 팔레스틴과 이방지역에서 유래된 유대인의 문학을 간략히 다루는데 있으며,

특별히 70인경, 외경, 위경, 쿰란 종파의 저술들, 요세푸스와 필로의 저술들에 집중되어 있다.

 

바벨론 유수에서 시작하여 유대인들이 애굽과 팔레스틴과 유대인의 분산에서 체험한 종교적 발전의 말기에 이르는

근동세계의 역사적 발전을 서술하는 것이

70인경과 외경, 위경, 쿰란의 비정경적 문헌, 필로와 요세푸스의 저술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