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한국의 說話

송광사 비사리 구시에얽힌 이야기

w.j.lee 2017. 5. 22. 11:46


 송광사 비사리 구시에얽힌 이야기


순천 송광사. 승보사찰로 유명한 송광사에는 3대 명물(쌍향수, 능견난사, 비사리 구시)이 있다.


옛날 옛적에 순천 땅 어느 고을에 할머니가 살았다.  

일찍 남편을 여읜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큰소리 한 번 나지 않을 정도로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는데

가끔 송광사에 들러 불공을 드리는 것이 일이었다.


송광사 3대 명물 가운데 하나인 쌍향수.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가져온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랐다고 전해지는데, 가지가 모두 아래로 향한 것이 특징이다.


가고 오는 데만 족히 반나절이 걸리는 데도

할머니는 송광사에 들러 불공드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70이 되었는데도

할머니는 매우 정정하여 다들 처녀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을 먹다가 그 할머니는 아무 이유도 없이 숨졌다.

너무도 조용히 숨졌기에 자식들은 처음엔 할머니가 숨진 지도 몰랐다.

죽은 할머니는 저승사자를 따라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죽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궁금해서 앞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염라대왕이 재판을 한다는 것이었다.

염라대왕이 순천 송광사를 무척 좋아하여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너도나도 가보았다고 염라대왕 앞에 나섰다 염라대왕이

"비사리 구시 길이가 얼마며, 높이나 폭이 얼마나 되느냐?" 물었다.

그러자 가본 적이 없는지라 우물쭈물 엉터리 대답을 하였다.

염라대왕이 크게 노하여 지옥으로 보냈다. 그 다음, 또 그 다음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할머니 차례가 되었다.

역시 염라대왕이 비사리 구시의 길이, 높이, 너비를 물으니 할머니가 대답하였다.

"살아 있을 때 해마다 초파일에도 가보고 보조국사님 제삿날에도 가보고 여러 번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구시를 보고도 재보지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크게 칭찬하며 좀 더 살다 오라 하였다.

할머니가 눈을 떠보니 아들이 울고불고 난리였다.

죽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자 아들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아들을 붙잡고 저승 이야기를 하던 할머니는

즉시 송광사에 있는 비사리 구시를 재러가자고 하였다.

할머니는 그길로 아들과 함께 자를 들고 송광사에 가서 비사리 구시를 재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렸다.

할 수 없이 아들은 명주실을 길이, 높이, 너비만큼

각각 끊어 할머니의 빨간 주머니에 넣어 드리며

"어머니, 나중에 돌아가셔서 염라대왕이 물으면 주머니에서 실을 꺼내어

'길이는 요만큼, 높이는 요만큼, 너비는 요만큼입니다'하고 답하세요"하였다.

죽었다 살아 돌아온 할머니는 100살 넘게 살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인근에 비사리 구시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후로 한때 이곳에서는 나이 많은 노인들이 송광사 비사리 구시를 자로 잰 후

실을 끊어 빨간 주머니에 차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송광사에 노인들이 많이 찾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송광사 3대 명물 가운데 하나인 능견난사.

위로 포개도 아래로 포개도 그 크기가 딱 들어맞는다. 볼 수는 있지만

만들기는 어렵다 하여 숙종이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록에 따르면 비사리 구시는

1724년 남원 송동면 세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진 것을 가공하여 만든 것이다.

나라에서 제사를 모실 때 손님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통인데,

약 4천 명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쌀 일곱 가마 분량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쌍향수, 능견난사와 더불어 송광사 3대 명물 가운데 하나이다.

비사리는 벗겨놓은 싸리나무의 껍질로, 노를 꼬거나 미투리 바닥을 삼는 데 사용한다.

그런데 싸리나무는 화살을 만들거나 울타리 혹은 빗자루를 만들 때 쓰는 것으로,

커다랗게 자라는 것이 아니다.

비사리 구시는 실제로는 우리가 흔히 괴목(槐木)이라 부르는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시는 구유를 일컫는 사투리다.

구유는 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을 말하는데,

흔히 큰 나무토막이나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든다.

@4천 명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분량의 밥을 담을 수 있다는 송광사의 비사리 구시.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