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한국의 說話

살인을 부르는 엽전

w.j.lee 2016. 7. 30. 06:42


살인을 부르는 엽전


조선시대 때 보성군 벌교읍 어느 마을에 조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제법 농사를 짓는 편이어서 살림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도 소를 몇 마리 키워서 가금 목돈을 손에 쥐는 재미로 살았다.

어느 날, 조 씨가 소를 팔러 장터에 가려는데 큰 아들이 따라나섰다.

이제 큰 아들 나이도 열여섯이니 세상 물정도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조 씨는 아들을 데리고 소시장으로 갔다.

여기저기 장터 구경도 시켜주고 흥정하는 것도 지켜보게 하였는데,

조 씨도 결국 소를 팔게 되었다.

조 씨는 소 판 돈 일부를 아들한테 사업 밑천으로 주었다

그렇게 해서 각자 소 판 돈을 옆구리에 차고 돌아왔다.

그런데 벌교로 넘어오는 재를 지나는 길에 아들 뒤를 따라가던 아버지한테

갑자기 괴이한 생각이 들었다.




 '저 놈을 죽여버리면 저 돈이 다 내 것인데..'

래서 앞서가는 아들에게 다가가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쳤다.

정신을 차린 조 씨가 흠칫 놀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아버지가 자신의 전대를 풀어 무겁다며 아들에게 다 주었다.

엽전 뭉치가 무겁다는 아버지를 아들이 쳐다보며 피식 웃고는 아버지 전대마저 허리춤에 찼다.

그렇게 한참을 앞서가던 아들의 눈빛이 갑자기 묘해졌다.

그러더니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죽여버리면 이 돈을 내가 다 차지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살짝 뒤를 돌아본다는 것이 그만 아버지하고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자 아들 역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찜찜했는지 조 씨가 아들에게 술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는 늦은 밤에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옛날에는 대부분 집성촌이어서 한 동네에 집안사람들이 사는 경우가 많았다.

밤중에 사람을 부르자 다들 의아해하면서 조 씨 집으로 모였다.

소를 팔아서 한 턱 낸다 하니 비록 늦은 밤이기는 하지만

다들 기분 좋게 마시는데 아무래도 조 씨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 있느냐 물어도 대답이 없던 조 씨가 술이 한 잔 들어가 얼굴이 불콰해지자

소를 팔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아들놈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죽고 싶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아들도 아버지 돈을 가지고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마을 어르신 가운데 한 명이 돈에 뭔 조화가 붙은 것이라며

소 판 돈을 전부 가지고 와서 불빛에다 비쳐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엽전 가운데 하나에 검붉은 자국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피 묻은 돈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아까 그 어르신이 이 피 묻은 돈이 살인을 부르는 돈이라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길로 피 묻은 엽전을 가지고 동구 밖 멀리 가서 깊숙이 묻어버렸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어느 해, 마을 어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마을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집도 많이 들어선 데다 길도 대부분 넓혀져서 마을의 면모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이다.

동구 밖에서 아이들이 구슬치기를 하고 놀았다.

구슬치기를 하던 아이 가운데 한 명이 땅을 파다가 신기하게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어? 이게 뭐지?"



그러자 곁에서 지켜보던 다른 아이가 잽싸게 빼앗더니 소리쳤다.

"이거 엽전 아냐? 옛날 돈 같은데?"

돈이라는 말을 하자 엽전을 처음 발견한 아이가 빼앗으려 하였다.

그러자 엽전을 손에 쥔 아이가 깔깔깔 웃으며 멀찌감치 달아나버렸다.

엽전을 호주머니에 넣고 신이 나서 돌아오던 아이의 눈에 동네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그러자 아주머니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묘하게 변하였다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