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6일 금요일
능력의 주님을 향한 해 믿음의 부르짖음
오늘의 말씀(마태복음 20:29~34)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29 As Jesus and his disciples were leaving Jericho, a large crowd followed him.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0 Two blind men were sitting by the roadside, and when they heard that Jesus was going by, they shouted, “Lord, Son of David, have mercy on us!”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1 The crowd rebuked them and told them to be quiet, but they shouted all the louder, “Lord, Son of David, have mercy on us!”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2 Jesus stopped and called them.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he asked.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3 “Lord,” they answered, “we want our sight.”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34 Jesus had compassion on them and touched their eyes. Immediately they received their sight and followed him.
오늘의 말씀 요약
길가에 앉은 두 맹인이 지나가시는 예수님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 서"라고 외칩니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나, 두 맹인은 주님을 향해 더욱 소리 지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 눈을 만지십니다.
그들이 곧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릅니다.
본문 해설
맹인들을 꾸짖는 사람들(20:29~31)
예수님은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떠나가실 때 그분을 향해 애타게 부르짖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두 명입니다.
그들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30절)라고 외칩니다.
그때 무리가 조용히 하라고 꾸짖습니다(31절).
연약한 이들을 돕기는커녕 면박을 주는 '무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29절).
오늘날로 치면 성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상처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마귀가 성전 꼭대기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듯이(4:5), 교회 안에서도 시험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실망할수록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예수님은 상처를 치유하시기 때문입니다.
- 두 맹인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치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어떻게 반응 했나요?
-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을 때, 나는 어떻게 하나요?
맹인들을 치유하신 예수님(20:32~34)
두 맹인은 자신들을 꾸짖고 무시하는 무리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을 향해 더 크게 부르짖습니다(31절).
맹인들은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눈을 고칠 능력은 '무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힘겨운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사람 혹은 문제를 붙들고 울며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염려하고 사람을 원망하다 보면, 기운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칩니다.
염려와 원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향해 불평이나 원망을 쏟아 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 무리의 꾸짖음을 개의치 않고 예수님께 끝까지 부르짖은 두 맹인은 어떻게 되었나요?
- 나는 어떤 염려와 원망을 내려놓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하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세상 것은 볼 수 있으나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은 아닌지요.
진정 구해야 할 것은 주님의 긍휼이며, 더 간절히 원할 것은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임을 깨닫습 니다.
주님 손으로 저를 만지시고 새롭게 하셔서 주님만 따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에세이
부르짖을 이유
목회를 위해 제주도로 부임한 한 제자가 부임 초기에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교수님, 여기는 곳곳마다 풍경이 멋지네요.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 가슴이 확 트입니다. 교수님도 한 번 방문하세요.”
그 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몇 년 후쯤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교수님, 육지로 가고 싶어요. 가는 곳마다 아무것도 없고 어디나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서 답답해요."
바다도 풍경도 그대로일 텐데 그의 평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풍경이 멋지게 보일 수도 있고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과, 바다를 보며 가슴이 트일 수도 있고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 절망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끝이라고 낙심 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시작이 열리리라는 믿음을 갖길 원하십니다.
신앙이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절망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창녀, 세리,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에게서 아무런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연약한 그들에게 친히 희망이 되어 주셔서 그들을 고치시고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가장 큰 절망인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 하신 예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주님이 당신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기실 것입니다.
- 두란노 -
영적 여정에서 중요한 요소는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우리 구주를 향한 끊임없는 간구다.
-폴 말라드 -
한절 묵상(마태복음 20장 34절 )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맹인 두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그들의 소원대로 보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비하심으로 치유해주시고, 치유받은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만지심을 통해 육신의 눈만 뜨게 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 믿음의 눈도 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눈을 뜬 것만 기적이 아닙니다.
참빛이신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은 더 큰 기적입니다.
성도는 육신의 치유에 만족하지 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두란노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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