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한국의 說話

지리산의 여신마야고

w.j.lee 2017. 7. 26. 19:06


지리산의 여신 마야고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반야(般若)라는 신이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여신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지리산에는 또한 마야고(麻耶姑)라는 여신이 있었다.

마야고는 옥황상제가 "지리산을 수호하라"는 명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지리산 성모(聖母) 마고(麻姑) 할미의 딸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에 있는 마고할미 상


어느 날 세석평전에서 놀던 마야고가

고약하기로 소문난 남신 몇 명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반야가 나타나 그녀를 돕겠다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야고가 비명을 지르자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을 가르더니 사방이 캄캄해졌다.

다들 깜짝 놀라 주춤하는 사이 하얀 옷을 펄렁거리며 누군가가 허공에서 내려왔다.

성모 마고할미였다.



저 여인이 마야고라는 말인가?

마고할미의 딸 마야고?

반야는 연신 마야고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마야고 역시 늠름한 반야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날 이후 마야고는 반야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반야는 달랐다.

마야고가 생각날 때면 고통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애써 생각을 지워버리려 하였다.

사실 반야는 옥황상제의 아들이었다.

일이 있어 지리산으로 내려온 아들에게 옥황상제는

몸과 마음을 더럽히면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반야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마야고를 생각하자니 하늘나라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고,

하늘나라로 돌아가자니 마야고가 너무도 그리웠기 때문이다.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마야고에게 불행을 안겨줄 것이라는 생각에 마야고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반야를 생각하는 마야고의 마음은 갈수록 강해졌다.

더구나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반야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마야고가 마고할미에게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마고할미가 딸의 딱한 처지가 안타까워

제석봉에 올라가 옥황상제께 빌어보라 일렀다.



마야고가 기도를 하던 중 비몽사몽 간에 옥황상제가 나타나,

억새로 옷을 만들어 그 옷을 반야에게 주면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 이른다.

억새를 한 아름 꺾어온 마야고는 그날부터 반야의 옷을 짓기 시작하였다.

옷을 짓는 내내 마야고는 반야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옥황상제의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이 있었다 마고할미였다.

마고할미는 반야와 마야고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였지만

막상 마야고가 반야와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드디어 옷이 완성되었다.

옷을 만들 때는 몰랐는데 막상 옷을 완성하고 보니 걱정이 생겼다.

반야를 어떻게 만날 것인지,

리고 만나더라도 옷을 어떻게 전해줄 것인지 암담하였기 때문이다.


반야에게 옷을 전해줄 기회를 찾지 못해 마음만 태우고 있던 마야고에게

마고할미가 며칠 후 보름날 밤에 어디로 가면 반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반야에게로 가서 마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며칠 후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 마야고는 마고할미가 알려준 지리산 중턱에 앉아

억새 옷을 품에 안고는 반야를 생각하고 있었다.

때였다. 꿈에도 기다리던 반야가 저쪽에서 손짓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야고는 반야의 옷을 든 채 반야를 향해 달려갔다.

달리는 마야고 위로 꽃잎이 바람에 나부껴 흩뿌려졌다.

흩뿌려진 꽃잎이 달빛에 반짝거렸다. 너무도 황홀한 장면이었다.

이내 반야에게 다가간 마야고가 덥석 안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반야는 보이지 않고, 쇠별꽃들만 달빛 아래서 바람에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반야와 마야고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는 쇠별꽃.


쇠별꽃 군락.


반야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쇠별꽃의 흐느적거림을 반야가 걸어오는 것으로 착각하였던 것이다.

사실은 마야고와 생이별을 하게 된 마고할미가 반야와 마야고를 속였던 것이다.

서로에게 다른 장소를 알려주고 허탕을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속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반야는 마야고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하늘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쇠별꽃과 마야고의 전설 '환란'

마야고는 쇠별꽃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는

자신을 속인 쇠별꽃이 다시는 피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성껏 지어 두었던 반야의 옷도 갈기갈기 찢어서 숲 속 여기저기에 흩날려 버렸다.

또 매일 같이 얼굴을 비춰보던 산상의 연못도 신통력을 부려서 메워 없앴다.

마야고가 갈기갈기 찢어 날려버린 반야의 옷은

소나무 가지에 흰 실오라기처럼 걸려 기생하는 풍란(風蘭)으로 되살아났는데,

특히 지리산의 풍란은 마야고의 전설로 환란(幻蘭)이라고 부른다.


지리산 풍란


또, 마야고가 메워 버렸다는 연못은

누군가가 천왕봉 밑 장터목에서 찾아내 산희(山姬)샘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야고의 한과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하여

고려 때 천왕봉에 사당을 세우고 여신상을 모셨는데

일제 때 한 왜병이 군도로 그 코와 귀를 잘라 버리려다가 벌을 받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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