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한국의 說話

남의 부모를 사러간 부부

w.j.lee 2017. 6. 9. 21:49


남의 부모를 사러간 부부



보성군 벌교의 상징인 홍교. 벌교에는 효심이 지극한 부부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보성군 벌교에 서 씨 성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 살았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서 씨는 어렵게 돈을 모아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상대방은 역시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던 여자였다.

비록 전에는 머슴살이를 하고 식모살이를 하였지만

두 사람 다 열심히 일해서 이제는 제법 남부럽지 않게 잘 살게 되었다.

그런데도 항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였다.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그리웠던 것이다.

서로의 생각은 비슷한데도 두 사람은 속내를 내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데

부모님 생각하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두 사람은 서로의 속내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부모를 한 번 모셔 보자는 데 의견이 일치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부모님 팝니다'하는 광고가 났다.

막상 부모를 모셔보자고 합의는 하였지만 그

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서 씨는 광고를 보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찾아가보니 이상하게도 아주 호화스럽게 잘 사는 집이었다.

"이런 집에서 어찌 부모를 판다고 광고를 냈을까?"

의아한 생각이 들어 다시 집을 여기저기 둘러보니

정말 부모를 판다는 광고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주인을 만나 물어보니 정말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부모를 판다는 광고를 냈단 말인가?

보아하니 아직 실성할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천벌을 받을 사람들 같으니라고.

속마음은 그러했지만 서씨는 부모를 모셔야겠다는 생각에 가격을 물었다.

그랬더니 주인 내외가 서 씨를 한참 뜯어보더니 논 이십 마지기를 불렀다.

그 말에 서 씨는 움찔하였다.

평생 머슴살이 식모살이를 해서 부부가 모은 재산이라는 것이 삼십 마지기 남짓 되는데,

이십 마지기를 주고 나면 고작 열 마지기 밖에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부모를 모시고 싶기는 해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기다릴 아내 생각을 하니 돈도 돈이지만

어떻게든 부모를 모시는 것이 더 중요할 것도 같았다.

계약금 조로 다섯 마지기 값을 놓고 가라는 말에 서씨는 잠시 망설였다.

만약 집에 가서 아내가 반대한다면 거금을 날릴 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과감하게 다섯 마지기 값을 내놓고 집으로 돌아온 서 씨가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돈 이야기를 꺼냈다.

평생을 식모살이를 해서 모은 돈이니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다섯 마지기 값을 계약금 조로 주고 왔다면 아내가 펄쩍 뛸 텐데 하는 걱정도 앞섰다.

그런데 뜻밖에 아내가 더 적극적이었다.

"돈이야 또 벌면 되지만 부모는 다시는 모시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그러니 당장 모셔오세요.

그렇게 해서 서 씨는 논 열다섯 마지기를 팔아가지고 다시 부모를 사러 갔다.

말은 그랬지만 다섯 마지기 값을 포기하고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서씨가 오자 주인 내외는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정색을 하고는 대금을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하였다.

서씨가 논 열다섯 마지기 판 돈을 고스란히 넘겨주자 주인 내외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우리 부모님은 이 세상에 안 계시오."

그 말을 듣고 서 씨는 하마터면 큰 소리를 낼 뻔하였다.

부모를 판다고 속여 놓고 목돈을 가로채려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주인 내외의 인상이 너무도 좋아서 차마 큰 소리를 내지는 못하였다. 그

러자 주인 내외가 빙긋이 웃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가 판다고 광고를 낸 부모가 바로 우리라오."

그랬다.

그들은 재산을 많이 모았지만 부모님께서 세상에 안 계시니 늘 그것이 안타까웠다.

더구나 자식들이라고는 키워 놓으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래서 정말 자신들처럼 부모를 그리워하고 부모를 한 번 모셔보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전 재산을 넘겨줄 요량으로 광고를 냈다고 한다.

"당장 아내를 데려와서 평생 우리를 부모로 모셔주시오."

그렇게 해서 부모를 그리워하는 늙은 부부와 젊은 부부는

부모와 자식의 예를 갖추고 평생을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