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성경 내용 요약

55. 신자가 자살하면 구원이 취소되는지요? 에 대한 보완

w.j.lee 2014. 8. 14. 09:56

 

 

55. 신자가 자살하면 구원이 취소되는지요? 에 대한 보완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기독교인 가운데

자살 충동을 느낀 자가 19.2 %에나 이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실천신학회에선

“현대인의 자살증가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은 없는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자살을 무조건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인들에게  

성경적으로 잘 가르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런 기사를 접한 분들이 성경문답에 올린 상기 제목의 글을 읽고선

자칫 오해할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주위에서 자살하는 기독교인들이 간혹 나오는데

그럼 그들은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올랐다가

다시 지워지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 글의 요지는 자살과 구원의 취소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진정한 신자라면 그 영혼에 이미 거하고 있는 성령의 간섭으로

자살까지는 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기독교인도 온갖 정신 질환이 들 수 있고 심지어 자살까지 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자살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진정으로 중생한 참 신자는 일부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다 신자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자살의 충동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정말 주위 사방이 벽으로 완전히 막혀서 탈출구가 그것 말고는 없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것도 수시로 말입니다.

 

그러나 자살의 충동을 느끼는 것과 자살을 감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말로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려면 치밀하게 계획하고 도구도 장만해야 하며

또 그러는 동안에 시간적으로도 상당한 경과가 지납니다.

그 사이에 신자 안에 하나님이 주신 참 생명이 있고 또 성령이 간섭한다면

자살의 결행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경우를 보십시오.

이스라엘 전국에 여호와를 아는 자라고는 혼자 밖에 남지 않은 듯싶은 절망에 빠졌고

곧 이사벨의 군대가 와서 자기를 죽이리라는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죽기로 작정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19:4)

심지어 하나님더러 자기 목숨을 앗아가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지는 않았습니다.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욥3:11)라고 하면서

자기 생일을 저주했습니다.

그도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나하리이다.”(7:19,21)

졸지에 최고의 불행을 겪고 몸에 병이나 극심한 고통으로 괴로워했던 욥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더 신기할 정도이지 않습니까?

그는 최소한 하나님이 자기를 침 삼키는 순간도 놓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신자는

“하나님 이제는 도무지 아무런 수가 없으니 차라리 나를 죽여주시옵소서!”라고

간구는 할지언정 스스로 자살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까지 고통과 절망의 심연에서 절규하는 신자를

하나님이 그대로 죽도록 놔두시겠습니까?

특별히 순교시켜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계획이 따로 없는 한

절대 그러지 않을 것 아닙니까? 

       

따라서 “신자가 자살하면 구원이 취소되는지요?”라는 질문은

엄밀히 따지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신자라면 자살할 충동은 느껴도 자살을 결행하지는 않고

또 성령이 그 전에 막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교회 안에 중생하지 않은,

참 신자가 아닌 단순히 기독교인인 경우는 때로 자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하지 않았기에 사실은 여전히 구원 받지 않은 상태에서 죽은 것이므로

그 취소여부와는 처음부터 관계없습니다.

따라서 정작 따져 보아야 할 주제는 신자가 과연 자살할 수 있을지 여부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것은 혹시라도 중생한 신자가 격한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사단에 미혹되어 순간적으로 자살하게 되는 가능성이지만 그것도 사실은 무망합니다.

우선 사단은 욥기의 경우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 신자를

함부로 조종할 수 없기에 신자의 생명을 앗는 것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스스로 감정에 격동되는 경우도 같은 맥락입니다.

거듭난 이후의 신자의 일생은 욥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이 당신의 강한 오른 손으로  

죽을 때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영원토록 붙들고 계시므로

신자가 자살하도록 방치하실 리는 결코 없습니다.

 

재삼 강조하지만 거듭난 신자에게 와있는 하나님의 참 생명은

절대로 다시 상실되지 않기에 스스로 죽는 일은 참 신자에겐 실현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록 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만 차마 제 손으로 목숨을 끊지 못합니다.

하나님더러 죽여 달라고 간구까지는 해도 말입니다.

 

교회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교인들에게 단순히 삶과 죽음의 의미를 가르치거나,

마음의 질병을 심리학적으로 치유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성령이 간섭하여 새

 생명을 부여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교회마저 자살에서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그럴수록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