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2-1.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반면교사

w.j.lee 2024. 4. 18. 13:23

 

1. 미토콘드리아 이브와 반면교사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중부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남부 캘리포 니아까지 130,000평방km에 이르는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기회사다.

대한민국 국토의 넓이가 약 100,210평방km이므로 대한민국 국토 면적보다 더 넓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는 회사라고 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북쪽의 이글락(Eagle Rock)이라는 도시에 회사가 소유한 오래된 변 전소 하나가 있다.

수명이 오래된 변전소답게 노후한 고전압의 변전 장치 들과 낡은 건물들이 어우러져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드는 곳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곳이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나 TV프로그램 제작자들에게 인기 있는 촬영 로케이션 장소가 되어버렸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가 출연한 "페이스 오프"(Face/Off),

존 카펜터 감독의 "화성의 유 령" (Ghosts of Mars),

샤론 스톤이 오랜만에 주연을 맡은 TV 시리즈인 “에이전트 엑스"(Agent X),

그리고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의상상 등 총 5개 부분을 석권한 "아티스트"(The Artist)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꽤 유명 작품들이 이곳에서 촬영한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다소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1993년도에 상영된 "데몰리션 맨"(De- molition Man)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실베스타 스탤론, 웨슬리 스나입스, 그리고 산드라 블록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던 영화였으므로 지금도 줄거리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존 스파르탄 형사(실베스타 스탤론 분)는 흉악한 인질범인 사이몬 피닉스(웨슬리 스나입스 분)를 격투 끝에 체포한다.

하지만 사이몬 피닉스가 억류했던 인질들은 목숨을 잃게 되고 존 스파르탄 형사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냉동 인간이 되어 미래 세계에서 풀려나는 처벌을 받는다.

존 스파르탄이 흉악범인 사이몬 피닉스를 체포하기 위해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가 바로 이글락 변전소다.

 

2032년에 냉동 감옥에서 풀려난 존 스파르탄 형사는 의문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미래 세계 지도자인 콕토 박사를 구해준다.

이에 콕토 박사는 자신을 구해준 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저녁을 대접하겠 다며 존 스파르탄 형사를 “타코 벨”로 초대한다.

아니, 미래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가 저녁을 대접하는 곳이 패스트푸드점인 타코 벨이라니?

우리 식으로 번안한다면 대통령이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곳이 싸구려 분식집이라는 것과 똑같은 이치가 아닌가!

그래서 이를 궁금하게 여긴 스파르탄 형사는 옆에 있던 미래 세계의 경찰인 레니나 헉슬리(산드라 블록 분) 경위에게 하필이면 왜 타코 벨이냐고 물어본다.

레니나 헉슬리 경위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타코 벨이 요식업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됐어요. 따라서 현재 존재하는 모든 식당은 타코 벨입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와의 실존성을 증명하는 꽤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미토콘드리아는 모계 혈통의 유전을 한다. 

생물학자들이 인간 여성의 미토콘드리아의 유전 경로를 추적한 결과, 

약 15만 년에서 20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여성에게 유전 경로가 수렴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생물학자들은 이 여성에게 "미토콘드리아 이브"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창조과학회에서는 이 발견을 하나님의 창조의 증거로 채택하고 있다. 

 

물론 15만 년에서 20만 년은 젊은 지구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6천 년과 비교하면 25배에서 33배 이상이나 더 긴 시간이다.

하지만 창조과학회 측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측정 오차 운운하 며 은근슬쩍 넘기면서,

창세기에 나오는 것과 같이 모든 현생 인류가 아담의 아내이자 최초의 여성인 이브에게서 기원했다는 증거가 된다고 설 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설명을 접한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것이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이러한 설명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려면 전문적인 생물학 지식이 필요 하기 때문에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창조과학회에서 느꼈던 가장 큰 실망 중 하나가 바로 이와 관련된 것이었음을 말하고 싶다.

이토록 아전인수격 왜곡을 통해서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현대 유전학의 성과들을 젊은 지구 창조론을 주장하는 증거 자료로 둔갑시키는 묘기를 부릴 수 있는지 어처구니 없고 착찹하기만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현생 인류의 유일한 조상이 결코 아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 생존 당시에도, 또 그 이전에도 많은 여성이 있었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지금 추적할 수 있는 가장 긴 모계 유전 경로를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해보자. 

"데몰리션 맨"이라는 영화에서 요식업계를 천하 통일한 타코 벨은 1962년도에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다우니 (Downey)라는 도시에서 창립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2032년에는 모든 레스토랑이 오직 타코 벨뿐이다.

자, 그렇다면 타코 벨이 창립되던 1962년으로 되돌아간다면 그 당시에도 레스토랑이 타코벨 단 하나뿐이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맥도널드가 1940년에 창립되었고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은 1930년대에 창립되었으니까,

타코 벨뿐만 아니라 다른 패스트푸드점 들도 다수 있었다.

게다가 다른 종류의 레스토랑, 예를 들면 정통 미국식의 두툼한 프라임 립 스테이크를 파는 레스토랑,

온갖 종류의 파스타를 파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고급스러운 프랑스 레스토랑,

그리고 중국 혹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계 레스토랑 등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들이 타코 벨이 창립되던 1962년도,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면서 소멸과 발전을 반복했을 것이다.

 

영화 속 2032년도의 상황처럼 타코 벨의 자회사들이 전 세계에 현지화된 레스토랑들을 운영한다고 가정해보자.

한국에 진출한 타코벨은 "타코 별"이라는 현지 법인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중국에는 "타코 반점", 일본에는 "타코야끼"라는 이름의 현지 법인을 세워 아시아에서 강력한 독과점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또한 독일에서는 "구텐 타코", 프랑스에서는 “봉 타코", 이탈리아에서는 "타코 이딸리아노" 같은 현지 법인들이 모든 유럽의 요식업을 장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타코벨 자회사들 중에서 본점인 타코 벨보다 창립 연도가 더 이른 법인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모든 자회사들은 본사인 타코 벨이 설립된 1962년보다 늦게 세워졌기 때문이다.

영화 속 미래 세계인 2032년 미국에서 타코 벨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유일하고 또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레스토랑이라고 할지라도

그 것은 그때의 기준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일 뿐이지

타코벨이 최초로 세워졌던 1962년도에도 다른 레스토랑이 없었다든가,

아니면 타코 벨 창립 이전에는 다른 레스토랑이 부재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코 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현존하는 미토 콘드리아의 모계 혈통 유전의 최장 경로를 보여주는 사례일 뿐, 

이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결코 최초의 여성을 의미한다고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미토콘드리아 이브 시대에도, 그 이전에도 많은 여성들이 존재했다.

우리는 수십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전 경로를 추적하는 현대생물학의 경이적인 성과에 큰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고에서 비롯된 성과들은 직접적으로 우리 인류의 편익과 복지를 향상시키는데 사 용된다.

가령 의학 및 제약 분야에서 응용되어 각종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며

농학 분야에 응용되어 가난과 기근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식량을 제공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이러한 과학적 성과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적 성과들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소명 중 하나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가 이러한 소명은 외면한 채, 사이비 과학에 휘둘리고 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임진왜란 때 조선 침략 선봉대 1군을 지휘했던 소서행장(小西),

즉 일본식 발음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는 십자가를 군기로 사용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진영에는 예수회에서 파견한 포르투갈 출신의 세스페데스 신부가 종군했고, 밤마다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그 결과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에서는 낮에는 조선 양민을 도륙하고 밤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1600년 가을, 일본의 패권을 놓고 싸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패하여 포로가 된 고니시 유키 나가는

사무라이로서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할복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참수형을 택한다.

가톨릭 신자로서 교리를 지키기 위해 자살 대신 불명예스러운 참수형을 택했던 것이다.

 

일본 문학의 거장으로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숙적』(宿敵, 포북 역간) 이라는 소설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양민을 학살하지 않은 엄정한 군기를 가진 모습으로 묘사했다.

어느 사료를 바탕으로 그런 소설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가 엄정한 군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의 부대에 비해 민가를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탈하고, 양민을 학살 했던 일이 적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가 침략 군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엄정한 군기를 가졌다고 해도 침략군은 침략군일 뿐이다.

일본 문학의 거장인 엔도 슈사쿠가 아무리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변호한다고 해도

결코 선조의 무능과 폭정에서 우리 백성을 해방시키는 해방군이 아닌 침략군이라는 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고 이순신 장군은 이런 고니시 유키나가에 대항해 싸웠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을 아주 가끔씩 접할 기회가 있다. 

어떻게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진 분을 나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단순히 고시니 유키나가라는 적장이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이들에게는 이순신 장군, 권율 장군,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전란에 휩싸인 민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한 분들이 다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서산대사와 사명 대사는 불교의 승려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나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처럼 기독교는 무조건 선하고 기독교가 아닌 것은 무조건 악하다는 기계적 이원론에 사로잡힌 몰역사적이고 비상식적인 편가르기는 오히려 일반 은총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민족이 십자가를 처음 접한 것은 왜군 선봉대의 깃발에서였다. 

당시 조선의 무고한 양민들은 십자가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아마 요즘 말로 하면 어마어마한 십자가 안티(Anti)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 깃발에 새겨진 십자가도 당연히 예수님이 달려 돌아가셨던 십자가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십자가를 통해 은혜를 받고 구원의 감격을 얻을 수 없었다.

어쩌면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에서는 정기적으로 미사 (예배)가 드려졌을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은 왜군 깃발에 새겨진 십자가를 볼 때마다 끔찍한 공포와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창조과학도 마찬가지다.

창조과학회가 수많은 교회를 상대로 진행하는 강의나 세미나는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일 따름이다.

더 나아가 창조 과학회는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어야 할 많은 사람을 기독교 안티로 내몰고 있다. 

자신들만의 리그에 함몰되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적 게토(Ghetto)로 만드는 창조과학회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십자가를 반면교사 (反面敎師)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우리 주변에는 미토콘드리아 이브처럼 창조과학회의 왜곡된 과학 해석을 통해서도 믿음을 갖게 되거나 나아가 그것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묻고 싶다.

 

하나님께서 자연과 역사를 주관해오신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인가?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