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2-4. 노아의 방주는 급격한 진화를 촉발하였는가?

w.j.lee 2024. 4. 18. 13:22

 

 

4. 노아의 방주는 급격한 진화를 촉발하였는가?

 

리처드 도킨스는 『지상 최대의 쇼』라는 책에서 1950년대에 러시아(실험이 시작될 당시는 구소련)에서 실시했던 은 여우 품종 개량 실험에 대한 재밌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은 여우는 붉은 여우 종(Species) 중에서 유달리 반짝이는 풍성한 은빛 털끝을 가진 변종 개체를 일컫는다.

이 특이한 변 종은 1883년 캐나다에서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났다.

이 화려하고 매혹적인은 여우의 털은 곧바로 전 세계적인 여우 모피 산업 대유행을 일으켰다.

러시아 정부는 다루기 힘든 이 야생의 은 여우를 개량해 사육하기 쉬 운 품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유전학자인 드미트리 벨랴예프를 은 여우 모피 농장의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야생성이 강한 은 여우들은 사람이 쓰다듬으려 하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사람이 손으로 만져주는 것을 마치 온순한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살갑게 반기는 매우 소수의 은여우 개체도 있었다.

벨라예프는 이 소수의 유순한 개체들을 체계적으로 교배했다.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자연 선택 대신에 여러 세대에 걸쳐 인공 선택을 반복하는 실험이 실시된 것이다.

그리고 실험이 진행될수록 실험 집단 안에서 유순한 개체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실험은 1985년 벨랴예프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진행되었으며, 실험을 시작한지 약 40여 년이 지난 35세대에 이르러서는 유순한 개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실험군의 70-80% 에 이르게 되었다.

 

이 실험의 본래 목적은 사육하기 쉬운은 여우 품종을 만들어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실험 끝에 사육하기 쉬운 은여우 품종 개량에 성공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획득하게 된 부가적 형질 때문에 손쉽게 모피를 얻기 위한 원래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다. 

개량된 은 여우들은 인간을 잘 따르는 행동만 개를 닮게 된 것이 아니었다.

생김새마 저도 개를 닮아버리고 말았다.

원래의 은 여우는 길고 풍성한 은회색 빛의 매혹적인 털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 개량종은 마치 집에서 흔히 키우는 바둑이처럼 하얗고 검은 얼룩무늬 털을 갖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쫑긋 하게 서 있던 은 여우의 귀는 강아지의 귀처럼 아래로 축 처졌다.

원래의 은 여우 꼬리는 아래로 향하고 있으나 이 개량종은 여우의 꼬리는 마치 진돗개의 꼬리처럼 위로 말려 올라갔다.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실패했다.

 

이 실험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개량종은 여우의 대조군에 대한 실험이 행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일 인간에게 적대적 성향을 보이는 집단도 같이 40년 동안 교배해서 개량종과 비교했다면

개량종이 갖게 된 인간 친화적인 성격이 유전인자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에 의해 사육된 환경에 의한 것인지가 더 확연하게 드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40년에 걸쳐 거행된 장기 교배 실험을 통해서 얻은 은 여우 개량종이

과연 여우라는 종의 장벽을 넘어서서 다른 종이 되었던 것일까? 물론 아니다.

개와 비슷한 형질이 많이 발현되었지만 이 개량종 역시 여전히 여우라는 종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종이라는 것은 생물 분류 의 최소 단위다.

요즘은 이 종이라는 개념만으로는 충분치 않은지 생물학자들은 종의 하위 개념인 아종이라는 분류 단위도 만들어놓았다.

아종이란 종분화가 진행되어 다른 형질이 많이 발현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종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상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은 여우는 붉은 여우의 아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생물을 분류하는 기준에 대해서 벨랴예프가 실험을 한 은여우(붉은 여우)라는 종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자.

생물 분류 체계는 "계 - 문- 강 - 목 - 과 - 속 - 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1) 계: 생물을 분류하는 가장 상위 체계다. 

    식물이냐, 동물이냐, 세균이냐 하는 분류가 바로 “계"에 속한다

2) 문: 계의 하위 체계다. 

     척추를 가진 동물이냐, 아니면 척추 없이 몸이 곤충 같은 마디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분류가 바로 이 체계에 속한다.

3) 강: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어류 등을 분류하는 체계다. 

4) 목: 강의 아래 단계다. 여우는 포유강이고 식육목에 속한다.

5) 과: 식육목에는 고양잇과, 개과, 곰과 등등이 있다.
6) 속: 갯과에는 12개의 속이 있다. 아래 도표를 참조하라.
7) 종: 은여우(붉은 여우)는 다른 11개 종의 여우와 함께 여우 속에 속 해 있다. 아래 도표를 참조하라.

 


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과는 총 12개의 속으로 분류된다.

이 12개의 속 아래에는 35종의 다양한 동물군이 존재한다.

먼저 늑대, 자칼, 코요테같이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9개의 늑대 계열 종들이 있다.

인류가 가장 소중한 반려동물로 여기는 개는 따로 종분류가 되어 있지 않다.

개는 회색 늑대와 같은 종으로 분류된다.

즉 개는 회색 늑대의 아종인 셈이다.

개가 인간에 의해 가축화된 것은 15,000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개가 가축화된 이래로 15,000년이 지나는 동안 회색 늑대와의 생식적 격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와 회색 늑대는 생물 분류학상으로 차이가 없는 같은 종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은 아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리고 늑대 종류보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여우 계열의 26개 종들 역시 갯과의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북극 여우, 회색 여우, 벵골 여우, 큰 귀 여우,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사막여우 (페넥 여우),

붉은 여우 등 다양한 종의 여우들이 있다.

굉장히 생뚱맞게 보이지만 너구리도 26종의 여우 계열에 속한다.

너구리는 여우와 가까운 근연 관계를 가진 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렇듯 도합 35개의 종들이 과에 속해 있다.

 

이 35개의 종들은 물론 현존하고 있는 현생들이다. 

그러나 화석상의 기록을 보면 많은 갯과의 동물들이 멸종됐던 것을 알 수가 있다.

현재 까지 화석을 통해서 파악한 멸종된 갯과의 동물들의 종 수는 147종이다.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갯과의 모든 종수는 현생 35종과 이미 멸종된 147종을 합하여 총 182종이다.

182종의 다양한 생물종들이 우리가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들과 혈연관계가 가까운 생물 분류학상으로 "갯과" 로 묶여 있다.

 

창조과학회에서는 창세기 1장의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 는 표현에 문자적으로 집착해서

지구상의 생명 역사의 전개 과정에 진화는 결코 없었고 천지가 창조된 시점부터 모든 생물이 완벽하게 종류별로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생물의 "종" 내에서 이루어지는 소진화는 받아들인다.

우리가 키우는 개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치와와처럼 조그만 한 개부터 세인트버나드처럼 커다란 대형견까지,

불독처럼 털이 짧고 주둥이가 뭉툭한 개부터 콜리처럼 털이 길고 주둥이가 긴 개까지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존재한다.

이렇듯 개라는 "종"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소진화라고 한다.

반면에 종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것을 대진화라고 하는데,

창조과학회에서 반대하고 있는 진화는 바로 이러한 대진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대진화라는 개념이야말로 지구상의 생명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진화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함의를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진화를 반대하는 창조과학의 논리는 노아의 방주에 이르러서 난항을 겪는다.

현대의 규모가 큰 유조선, 벌크선, 컨테이너 선박들의 경우는 300m 이상의 길이를 갖춘 것이 많고 심지어 400m가 넘어가는 선 박도 있다.

선박이 물에 진수됐을 때 물 속에 잠기는 깊이를 흘수라고 하 는데 흘수가 20m를 훌쩍 넘어가는 초대형 선박들도 많이 있다.

그럼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동물을 암수 한 쌍씩 “종류별"로 이러한 거대 선박에 태울 수가 있을까?

지구상에 현존하는 동물의 종수는 150만 종에 이른다.

길이 400m에 이르는 초대형 선박이라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의 동물을 암수 한 쌍씩 태우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따라서 불과 길이 135m와 흘수 7m의 소박한(?) 사이즈의 노아의 방주에,

창세기 6:20의 하나님께서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라고 명하신 대로

150만 종에 이르는 지구상의 모든 동물의 암수 한 쌍을 태운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이런 이유로 창조과학회에서는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동물들의 종수를 어떻게 해서든지 줄이려고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어류들은 당연히 방주에 탈 필요가 없고, 양서류는 물론 악어나 바다거북 같은 파충류 및 고래나 물개 같은 수상 포유류도 방주에 승선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방주에 승선할 필요가 없는 동물의 종수를 줄인다고 해도 노아 방주라는 제한된 공간에 그 많은 동물을 다 태울 수는 없다.

그래서 고심 끝에 창조과학회는 성경에 쓰여 있는 “종류대로"가 현대 의 생물 분류학의 "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종의 상위 분류 단위인 "속"을 넘어서 "속"의 위 단계인 "과" 혹은 그 이상의 분류 기준에 해당한 다고 주장한다.

즉 창조과학회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에는 현대 생물 분류학상 "종"에 해당하는 수많은 동물이 승선한 것이 아니라,

종보다 훨씬 적은 "과"에 해당하는 동물들이 승선했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에 충분히 수용될 수 있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갯과에 해당하는 모든 종들,

즉 35종의 현생과 147종의 멸종한 종들을 합한 182종의 갯과 동물들이 암수 한 쌍씩 해서 총 364마리가 승선할 필요가 없고,

단지 노아 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갯과의 대표 동물 한 쌍만이 노아의 방주에 승선했으며,

이후 이 한 쌍으로부터 도합 182개 종의 갯과 동물로 분화되었다는 것이 창조과학회의 주장이다.

과연 이 주장이 옳다면 우리 주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고, 또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노아 홍수 이후로 지금까지 약 4,000년의 세월이 지났다.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갯과 동물 한 쌍이 182종의 다양한 갯과의 동물종으로 분화하려면 평균 22년 만에 한 건씩 종분화가 일어나야 한다.

즉 우리는 22년 만에 한 건씩 여우와 늑대가 분화되어 갈라지고, 또 여우에서 너구리가 갈라지는 것을, 늑대에서 코요테가 갈라지는 것을, 개에서 승냥이가 갈라져 나오는 것을 목도했어야 한다.

과연 우리가 이러한 현상을 인류사에서 목도한 적이 있었는가?

이러한 급격한 진화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한 번도 관찰된 바가 없다.

 

만일 창조과학회가 멸종된 147개 종의 화석은 노아 홍수 때 격류에 의 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빼야 한다고 주장하더라도, 4,000년 동안에 한 쌍의 갯과 동물이 현생하는 35개 종으로 분화되려면 평균 소요 기간은 고작 114년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약 1세기마다 늑대에서 승냥이가, 여우에서 너구리가 분화되는 모습을 보았어야 한다.

즉 472년의 기록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최소한 4번 이상의 "늑대 같고, 여우 같고, 승냥이 같기도 하고, 너구리를 닮은 새로운 종류의 짐승들 이 창궐하여 왕의 근심이 깊어졌다"라는 기록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창조과학회가 내놓은 급격한 진화라는 주장은 토목 엔지니어인 나에게는 높이 828m, 총층수 163층의 위용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를 하룻밤 새 뚝딱 지을 수 있다고 떠벌리는 것과 똑같은 수준의 허언으로 들린다. 

 

과연 노아의 방주에는 급격한 진화를 촉발하는 우리가 모르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었을까? 

그래서 홍수 이후 방주를 벗어난 동물들이 그토록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는 것일까!

 

창조과학회는 종을 뛰어넘는 대진화는 결단코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4,000년 동안 멸종한 종을 포함한 도합 182개의 갯과 종, 혹은 현생종인 35종이 분화되었다는 그들의 주장은 정확하게 현대 생물학에서 설명하는 "진화"의 의미와 일치한다.

그것도 지구상의 어떤 진화 생물 학자도 주장하지 못하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진화론인 것이다.

그럼에도 창조과학회는 한편으로 진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노아의 방주를 설명할 때는 대단히 빠른 속도의 진화를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진화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도대체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물을 같은 종으로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유성 생식을 하는 생물의 경우 서로 교미를 통해 번식을 해서 생식성이 있는 후손을 남길 수 있 느냐 없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말과 당나귀는 서로 교미해서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암말과 수당나귀 사이에서 난 잡종을 노새라고 부른다.

노새는 생식 능력이 없다.

따라서 말과 당나귀는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앞서 설명한 대로 40여 년에 걸친 은여우 품종 개량 실험을 통해서 얻게 된 개량종은 여우는 개와 외양이 상당히 흡사해졌다.

하지만 개량종은 여우 는 개와 생식 자체가 불가능한, 엄연한 여우다.

일단 개의 염색체는 78개, 은 여우의 염색체는 34개로 염색체 숫자부터 다르다.

 

인류의 반려동물인 개의 경우를 보자. 

개는 30,000년 전에 회색 늑대와 분화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개는 인간에게 가축화되기 전 약 15,000년 동안 자연 상태에서 회색 늑대와의 생식을 통해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인간에게 사육당하기 시작한 15,000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회색 늑대와의 유전자 교환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사육으로 인해 강제적인 생식 격리가 15,000년간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와 회색 늑대는 같은 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야 종 분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종 분화는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종 분화는 수십만 년에서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나며, 빠른 종 분화를 주장하는 단속 평형 이론에 의하더라도 수만 년의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현상이다.

종 분화는 창조과 학회의 주장대로 지질학적으로는 찰나의 순간에 해당하는 22년 내지는 114년 만에 한 건씩 뚝딱 벌어지는 사건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께서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종이 분화되는 대진화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창조과학회가

한편으로는 이렇듯 급격한 종 분화를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