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2-5. 리오널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리고 패러다임

w.j.lee 2024. 4. 18. 13:22

 

 

5. 리오널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그리고 패러다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단일 종목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를 꼽으라면 아마도 축구가 아닐까 싶다. 

축구는 지역에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축구는 상대편 골문으로 공을 더 많이 집어넣으면 이기는 단순한 규칙을 갖고 있지만,

이를 위해 11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창의적이고 기발한 전술을 만들고

또 선수 각자의 능력에 따라 현란한 개인기들이 속출하는 묘미를 지녔기에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나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의 연봉은 200억 원을 훌쩍 넘어간다. 

1985년생인 호날두와 1987년생인 메시는 축구계에서는 별 중의 별로 불리며 

그 뒤를 이어 1992년생인 브라질의 네이마르 같은 선수도 지구촌 축구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이들은 신기에 가까운 개인기로 상대 수비진을 유린하고 팀 승리를 견인해낸다.

 

그런데 만일 이 글을 쓰고 있는 50세인 내가 "나는 호날두나 메시보다 훨씬 더 뛰어난 축구 선수다.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축구팀은 당장 호날두나 메시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나와 계약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축구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연히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고 아예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친절한 축구팬 한두 사람이 "도대체 당신이 호날두나 메시보다 뛰어난 축구 선수라는 근거가 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거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할 생각이다.

 

전 세계 축구팬들이 축구를 보는 눈이 잘못됐다. 

그래서 호날두와 메시에 열광하고 있다. 

만일 축구팬들이 축구를 보는 눈이 바르게 바뀐다면, 

즉 올바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나를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 할 것이다.

 

자, 내가 이런식으로 답한다면 과연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받겠는가?

나의 지인이 한번은 창조과학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 참가 한 적이 있었다.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그 지인은 창조과학회 소속 강사에게 다소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강사는 정상 과학에서 증명된 내용들과 판이하게 다른 얼토당토않은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입버릇처럼 "이래도 안 믿으시겠습니까?"라고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창조과학회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그렇게 확실하다면 왜 그 내용이 기성 과학자들 사이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까?"

이에 대한 강사의 답변은 "현재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 때문에 창조 과학회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였다.

 

쿤(Thomas Kuhn)이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과학에서 패러다임이 차지하는 역할을 분석했다. 

그 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 활동을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정상 과학 활동이 이루어지는 과학자 사회의 신념, 가치, 문제의식,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등을 총망라한 기반 시설 (infrastructure)을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했다.

마치 철도라는 기반 시설을 가지고 있으면 기차가 달릴 수밖에 없고,

운하 같은 물길을 기반 시설로 가지고 있으면 선박이 운행되듯이,

과학자들의 정상 과학 활동은 이러한 패러다임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할 것이며 어떤 방법과 실험 절차가 선택되는가는 철저히 패러다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던 쿤은 과학 철학과 과학사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를 계속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을 연구하던 쿤은,

철학사에서 그토록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고대 그리스 철학의 거성 같은 존재가

어떻게 운동역학 분야에서는 이토록 유치한 생각을 했는지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토머스 쿤은 계시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역학은 뉴턴의 운동 역학과는 개념 자체가 전적으로 다른 체계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다른 이해를 바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역학에 접근해보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무척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 이론과 뉴턴의 근대 역학 이론 사이에는

서로 연결될 수 없는 단절이 있다고 진단했으며

이러한 단 절을 공약 불가능성(incommensurabilty)이라고 불렀다.

 

그는 아리스토텔 레스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패러다임에서 뉴턴의 근대 역학 이론이 태동 된 패러다임으로의 변환은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발전 단계를 통해 이루 어낸 성과가 아니라,

마치 정치적인 혁명을 통해 일순간에 기존의 체제가 붕괴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듯이 급격한 단절을 통한 불연속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는 과학자 집단이 이전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것을 마치 종교적인 개종과 유사한 것으로 비유했다.

과거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과학 이론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근거한 과학 이론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논파했던 것이다.

 

쿤은 과학사에서 여러 예들을 찾아 패러다임 이론을 논증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뉴턴의 역학 이론으로의 전환, 

뉴턴의 역학 이론에서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으로의 전환, 

그리고 천동설에 서 지동설로의 전환 등이

쿤이 제시했던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대표적 예들이다.

 

창조과학회는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어떻게 사용할까? 

창조과 학회는 현재 과학계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기본적으로 무신론적 세속적 패러다임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창조과학회는 무신론적 세속적 패러다임에서 태동한 현대 과학은 필연적으로 무신론적 · 세속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무신론적·세속적인 패러다임을 창조과학회 식으로표현하면, 그것은 "진화론적 패러다임이다. 

생물학의 생명 진화론은 물론이고, 45억 년 지구를 설명하는 지질학, 138억년 우주를 설명하는 빅뱅 이론 등

성경의 문자적 표현과 다른 자연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모든 현대 과학의 성과는

창조과학회 입장에서 볼때는 진화론적 패러다임 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제반 과학 분과들에 대한 자의적 왜곡 및 모욕이다.

왜냐하면 지질학, 지구 물리학, 해양학, 천문학 등 과학 분야의 제 학문들이 독립적인 존립 근거도 갖추지 못하고 생물학의 한 분야인 진화론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우구스티누스, 카이퍼, 도예베르트 등과 같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을 통해 이어져온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중 무장한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이 정립되어야만 한다고 주창하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창조과학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창조과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면 정상 과학을 뒷받침하는 그릇된 패러다임,

즉 진화론적 패러다임에서 태동된 오래된 지구를 설명하는 현대 지질학 이나,

오래된 우주를 설명하는 빅뱅 이론,

그리고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을 설명하는 생물학의 진화론 등은 당연히 폐기될 수밖에 없으며,

창조과 학회에서 주장하는 성경의 문자적인 표현에 근거한 6천 년짜리 우주 및 지구설과 홍수지질학 등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창조과학과 관련된 서적들을 살펴본다면 유난히 패러다임이나 세계관을 강조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현대 지질학, 천문학, 생명 진화론 등은 그릇된 패러다임 위에 정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창조과학회는 이러한 그릇된 패러다임을 폐기하고 올 바른 패러다임 위에서 정립된 창조과학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에 따른다면 정상 과학이냐, 창조과학이냐의 선택의 문제는 기실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 이론이란 것이 단지 세계관에 의거한 패러다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상

과학을 받아들이냐, 창조과학을 받아들이냐는 전적으로 어떤 패러다임을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로 둔갑해버린다.

하지만 과학의 문제가 과연 패러다임을 취사선택하는 것만의 문제일까?

 

우리가 현대 과학 이론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것이 인류 에게 꼭 필요한 편익을 제공하고,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료하는 등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자주의라는 교조적 경직성을 바탕으로 한 패러다임 위에 구축된 창조과학이 과연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창조과학은 결코 이러한 소임을 수행할 수 없다.

 

이 우주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혹은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혹은 초월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나뉜 채 이 두 실체가 동등한 힘을 가지고 싸우는 전쟁터라고 설명하는 이원론적 사고의 그릇된 점에 대해서는

본회퍼가 그의 저서인 「윤리학」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세계를 상반되는 두 실체가 대립하고 있는 곳으로 인식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중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우리는 삶의 한쪽 영역은 포기할 수밖에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삶의 전 영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현실 (The Reality of God)에 온전히 참여할 수 없다. 

 

따라서 진화론은 무신론적이고 타락한 세계관에서 나왔기 때문에 거부해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발원한 창조과학을 선택해야 한다는 창조과학회의 패러다임론은

신앙을 앞세워 객관적인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마저도 바꿀 수 있다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혹시 독자들 가운데는 한국교회 안에 만연한 창조과학의 영향 때문에

기독인 과학자들 대다수가 생물 진화를 반대하고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젊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으며

무신론적인 세계관 위에 건설된 세속 과학에 맞서 싸우는 십자군 전쟁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 겠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극단적인 이원론 위에 구축된 젊은 지구론 계열의 창조과학을 주창하는 과학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무신론 과학자로서 스탠퍼드 대학교의 물리학과 교수인 레너드 서스킨드의 이야기를 인용해본다.

 

교수님은 신을 믿습니까? 

내 대답은 간단했다. 

아뇨, 나는 신을 믿지 않습니 다. 

하지만 내 수많은 친구들 -저명한 과학자들- 은 지적인 존재가 창조에 관여한 것이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그런 다음에 나는 한 마디를 보탰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똑같은 방식으로 과학을 합니다.

우리 모두는 과학이 힘닿는 한 자연적 메커니즘으로 세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다시 쿤의 패러다임 이론으로 돌아가 보자. 

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존의 패러다임보다 수리적인 우월성을 바탕으로 자연에 대해 훨씬 더 정확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패러다임 전환을 정치적 혁명이나 종교적인 개종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기에 쿤은 과학의 진보를 부정했다고 간주되기도 한다.

쿤이 주장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쿤은 객관적인 과학의 진보 자체를 부정 하지는 않았다.

그는 패러다임이 바뀐다면 "6천 년 지구" 혹은 "138억 년 빅뱅 이론", 이 둘 중 어떤 것이라도 다 맞을 수 있다라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사실 쿤은 상대주의자라는 평가를 매우 싫어했고 따라서 「과학 혁명의 구조」의 새로운 판이 출간될 때마다 자신이 상대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한 반론을 새롭게 추가했다.

 

쿤은 과학의 진보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다는 점은 부정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제공하는 정상 과학이 이전보다 자연을 더욱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의 진보를 설명 한다.

즉 쿤은 과학의 진보는 어떠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지 만,

현재의 패러다임이 과거의 패러다임보다 더욱 정확한 수리적 정량성을 바탕으로

자연 현상에 대한 더욱 합리적인 설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역설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젊은 지구론을 선택하느냐 정상 과학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패러다임의 문제라는 창조과학회의 주장은 

쿤의 패러다임론을 극단적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창조과학회는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세속적이고 진화론적인 세계관에 오염된, 믿음 없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가며 자신들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방어하고 있다.

 

이장의 초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축구를 보는 눈이 바뀐다면

내가 호날두나 메시 같은 현존하는 최고 수준의 스타 선수보다 더 각광을 받는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내가 메시나 호날두를 능가하기 위해 축구 연습은 전혀 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축구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기만 한다면 그들보다 뛰어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신념하에

회사일도 제쳐놓고, 가정도 팽개치고 세계축구 협회(FIFA) 본부가 있는 스위스 취리히에가서

주야장천 축구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로비만 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나의 생계가 어려워지고 가정이 깨진다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로비가 성공해서 축구 패러다 임이 바뀐다면 나는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세계적인 축구팀 과 계약을 할 수가 있다.

연봉 200억 원에 5년만 계약해도 1천 억을 벌게 된다.

이 돈이면 망가진 가정도 다시 회복할 뿐만 아니라 노후를 꽤 행복 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독자라면 나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메시가 더 훌륭한 선수냐, 호날두가 더 훌륭한 선수냐는 사람들이 축구를 보는 눈 혹은 한 시대를 주도하는 축구 전술에 대한 이해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를 메시나 호날두를 능가하는 축구 선수로 평가하는 것은 결코 패러다임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지금까지 50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축구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와 세계적인축구 스타들은 축구 능력면에서 비교 자체가 될 수 없다.

 

과학 이론도 마찬가지다.

특정 과학 이론이 수용되는 이유는 우리가 자연계에서 경험하는 현상을 그것이 잘 설명하고 예측하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그럴싸한 이론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자연계에서 경험하는 것과 모순되는 패러다임은 결코 수용될 수 없다.

 

과연 창조과학회가 기존의 정상 과학 이론을 넘어서는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연에 대한 효과적인 설명과 정확한 예측을 찾아내기보다는 단지 패러다임의 전환에만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치열하게 연구 활동을 하면서 세계적인 과학정론지에 논문을 제출하고 실력으로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자신들의 말도 안 되는 주장만 강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모습이야말로 1년 200억 원에 5년 계약이면 삶이 한 방에 해결된다는 망상을 가지고 스위스 취리히에서 로비 활동에만 올인하는, 위의 비유와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 아닐까?

 

창조과학회는 자신들을 가리켜 정상 과학계에서 핍박과 배척을 받는 순교자의 모습으로 즐겨 묘사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배척을 받는가는 쿤의 패러다임론을 차용해 설명한다. 

만약에 창조과학회가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론에 입각해서 자신들의 이론을 변증하려면

자신들의 이론이 과연 기존의 과학 이론들보다 자연에 대해 더 정확한 설명과 예측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패러다임 때문에 자신들의 이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식의 투정은

내가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보다 더 축구를 잘한다고 억지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터무니없는 궤변이자 학문적 실패에 대한 궁색하기 그지 없는변명에 불과하다.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

 

 


내가 읽은 글 중에서 창조과학이 패러다임과 세계관에 유별나게 천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장 탁월하게 설명한 글은

약 10여 년 전,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의 윤성철 교수가 인터넷 상에 게재했던 글이다.

본 장도 윤성철 교수의 패러다임과 창조과학에 대한 해석을 많이 참고했다.

윤성철 교수의 글은 현재 인터넷에서 내려져 있고 책으로 출간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참고 자료로 소개할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과학의 취사선택이 결코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패러다임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윤성철 교수의 한 가지 비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화석의 기록을 보면서 진화론도 될 수 있고, 6천 년 젊은 지구 이론도 될 수 있으니 당신 선택에 달렸소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이 아 니다.

생사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인터페론을 먹든 청산가리를 먹든

암 치료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믿는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범죄 행위이지 과학이 아닌 것이다."

 

성경의 문자적 표현에 집착한 창조과학, 특히 젊은 지구론의 왜곡된 자연 해석이

인류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적절 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집필하는 중에 소중한 글을 다시 나에게 공유해주셨던 윤성철 교수께 이 지면을 빌려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