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2-8. 법칙과 이론

w.j.lee 2024. 4. 18. 13:21

 

 

8. 법칙과 이론

 

독자들이 후크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면 아마 피터팬에 나오는 해적 선장 후크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학적 감수성보다는 숫자와 공식에 빠져 살아가는 이공계 출신들에게 후크란 이름은 피터팬의 후크 선장(Captain Hook)보다 17세기 영국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후크(Robert Hooke)가 더 친근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계 공학이나 토목 공학을 업으로 삼은 이들은 탄성 이론과 관련된 후크의 법칙을 잘 알고 있으리라.

후크의 법칙이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서 공식을 인용해보겠다.

 

F = kx

 

일반인은 물리학 공식이라는 소리만 접해도 굉장히 복잡하고 골치 아플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후크의 법칙은 매우 간단하다.

저 공식을 우리의 일상 언어로 번역하면 그 의미는 더욱 간단하다.

위의 후크의 공식이 의미하는 바는 "물체는 당기면 늘어난다"이다.

물론 "당기면 늘어난다"를 "탄성체의 변형량은 탄성 한계 안에서는 물체에 가해진 힘과 비례한다"라고 더 고급스럽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 뜻은 동일하다.

 

과학에는 여러 유명한 법칙이 있다. 

후크의 법칙은 이공계와 무관한 이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법칙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많은 사람이 익히 아는 유명한 과학 법칙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물리학에서 뉴턴의 만유 인력의 법칙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가장 유명한 과학 법칙 중 하나다.

1687년 「프린키피아」(Principia, 교우사 역간)라는 저서를 통해 세상에 나온 이 법칙은 물체가 가지고 있는 질량과 중력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냈다.

초속 30km의 빠른 속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지구에서 인간이 튕겨 나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이 중력이라는 힘은 두 물체의 질량에 비례해서 커지고 두 물체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서 작아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자연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킨 것을 넘어서 인류의 세계관이 기계적 결정론으로 바뀌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기계의 구동 원리를 이해한다면 그 기계가 미래에 어떻게 작동할지 충분히 계산할 수 있다.

우주 및 자연을 기계로 인식한다는 것도 이와 같다.

자연을 설명하는 과학 법칙 속에 충분한 데이터를 넣어서 계산한다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기계적 결정 론이다. 

 

기계 적 결정론이라는 것은 우주와 자연을 일종의 기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기계적 결정론이 인류 역사에 긍정적인 역할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통해서 자연에 대한 탈주술화가 가속되고 인간의 삶을 위해서 자연을 이용할 수 있는 이성과 과학의 진보를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연을 기계로 인식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자신이 사용하는 기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근대 이후 자연에 대한 극단적인 착취와 파괴는 이 기계적인 자연관을 통해서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만유인력의 법칙의 발견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뿐만 아니라 세계관마저 뒤바꾸어놓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과학 법칙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라면, 

우리가 과학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유명할까?

아마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가장 지명도가 높은 과학 이론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못지않게 유명하며 또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핵폭탄 개발도 바로 이 이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우주의 팽창에 대한 최초의 예견도 이 상대성 이론 방정식에서 나왔다.

 

2016년도 과학계의 핫이슈는 뭐니뭐니해도 중력파의 검출일 것이다.

그런데 이 중력파의 존재 역시 상대성 이론을 통해 약 100여 년 전에 예견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과 견주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왜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고 이론이라는 초라한 명칭을 지니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칙은 확고하게 증명된 사실이고 이론은 아직 뭔가 부족하기 때문에 향후에 더 상세히 연구되고 보완되어 그 부족한 부분이 메워지고 확고한 사실로 입증되면 법칙화된다.

따라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확고한 사실로서 어떤 경우에도 변함이 없으므로 법칙이란 이름을 얻었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으므로 법칙이란 명칭을 얻지 못하고 이론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창조과학에 경도되어 있는 그리스도인 중에는 상대성 이론이 성경의 문자적인 표현과는 다른 오래된 우주의 기원에 관한 설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주장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과학에서 법칙과 이론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어떤 경우에도 불변하는 확고한 사실이 아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더 넓게는 태양계처럼 중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곳에서는 잘 작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왔던 블랙홀인 "가르강튀아처럼 거대 중 력의 영향권 근처로 접근한다면,

거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만유인력의 법칙은 서서히 오작동이 발생하면서 나중에는 아예 작동하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된다.

사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오작동하는 사례는 비록 아주 미세한 값이지만 우리 태양계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수성은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이다.

따라서 수성은 태양의 거대 중력을 가장 강하게 받고 있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계산한 수성의 공전 궤도와 실제로 관측한 수성의 공전 궤도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수십 년 동안 과학자 들에게는 이 문제가 지대한 골칫거리이자 수수께끼였다.

심지어는 "태양 과수성 사이에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행성이 존재해서 수성의 공전 궤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수성의 공전 궤도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계산하면 실제 관측한 결과와 일치한다.

 

물론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지금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의 낙하 운동에서부터,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 들의 궤도의 움직임도 척척 계산하고,

지구와 다른 행성들의 공전 궤도 또한 정확히 계산한다.

하지만 태양과 가까운 수성의 공전 궤도에서 미세 한 오차를 발생시키는 사례와 같이,

이 법칙은 중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서서히 오작동이 발생하며 블랙홀 근처와 같은 거대 중력 하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정립된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극복해내고

거대 중력의 영향 하에서도 작동이 가능한, 즉 더 극단적인 환경의 우주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자연에 관한 포괄적인 이해의 틀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이론은 법칙의 하위 단계로서 그것이 더욱 발전되면 법칙이 된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학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굳이 과학에서 법칙과 이론과의 차이를 구분하자면,

법칙은 한가지 양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반면 이론은 추론, 검증된 가설 및 법칙 등 다양한 명제들을 포함한 더욱 포괄적인 설명 체계라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법칙과 이론이 상·하위 종속 개념이라는 오해는 진화론에서 더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진화론은 확고하게 검증된 법칙이 아니라 단지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

진화론도 이론일 뿐이고 창조론도 이론인데,

그리스도인은 성경에 기반한 이론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한 권으로 배우는 신학교라는 책에 아빌린 기독교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알리 후버가

"하나님의 존재 증명"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의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소진화는 확인할 수 있고 검증이 가능하며 따라서 문제되지 않는다.

대진화는 확인할 수 없고 이론일 뿐이며 따라서 논쟁의 대상이다.


이 문장은 지금까지 설명했던 과학 이론에 대한 오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런 식의 오해는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게 만들 뿐이다.

진화론은 분명히 과학 이론이다.

자연에 관한 특정한 설명이 이론이나 법칙으로 정립이 되려면 얼마나 혹독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상상이 잘 안 갈 것이다.

 

모든 과 학 이론이나 법칙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치며, 사실상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경륜과 섭리에 대한 인류의 지혜와 통찰을 담고 있다.

나아가 만유인력의 법칙과 상대성 이론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 이론들은 훨씬 더 자연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나 법칙이 나 타나면 그 자리를 넘겨주고 과학사의 뒷장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특정한 과학 이론이나 법칙이 영원히 변치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해 더 나은 이해가 나타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제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창조론은 결코 과학 이론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우주 창조는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우리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론은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성격을 갖는 과학 이론이 될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의 초월적인 창조를 정량적인 과학의 법칙과 이론에 담아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창조과학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과학적 창조론은,

현대 과학이 성경의 문자적인 표현과 다른 자연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현대 과학을 비틀어서 억지로라도 성경의 문자적 표현에 부합하게 만들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는 매우 신앙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성경과 복음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성경과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결여된 빈 자리를 이러한 퇴행적인 사이비 과학이 파고드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 닐 수 없다.

즉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 성경 그 자체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힘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경전성을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서 확보하려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