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2-7. 달이란 밤하늘에 떠 있는 치즈 덩어리다

w.j.lee 2024. 4. 18. 13:21

 

 

7. 달이란 밤하늘에 떠 있는 치즈 덩어리다

 

캄캄한 밤하늘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달, 

그 모양이 날짜에 따라 시시 각각 변하며 때로는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하는 달은 

예로부터 인류에게 신비스러움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달은 성적 상징성에 의한 고대인들의 노골적인 생산 숭배 신앙에서부터 어린아이들이 즐겨 듣던 토끼가 방아 찧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인류의 종교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달은 과연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을까?

 

973g의 무게를 지닌 월석 10017은 아폴로 11호가 달표면에서 채취한 암석 중 가장 부피가 큰 샘플이다. 

다양한 성분으로 구성된 월석 10017에 대해 충격파 속도를 측정한 결과 1.84km/sec 이라는 측정값을 얻었다. 

지구 상에 있는 다른 물질들에 대해서도 충격파 속도를 측정해보았다.

 

미국 산 뮌스터 치즈의 경우는 충격파 속도가 1.65km/sec라는 값이 나왔다.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스위스의 에멘탈 치즈는 1.72km/sec, 딱딱한 영국의 체다 치즈는 1.75km/sec, 말캉말캉한 이탈리아의 프로볼로네 치즈는 1.75km/sec라는 값이 측정됐다.

염소젖을 발효시킨 달달한 노르웨이 산 예토스트 치즈의 탄성파는 1.83km/sec로 측정됐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과학적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달의 성분은 다양한 치즈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에서 노르웨이산 예토스트 치즈가 다량으로 함유되 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달의 성분이 다양한 치즈이고, 그중에서도 노르웨이산 예토스트 치즈가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주장은 충격파 속도 측정 결과에는 부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달-치즈 이론이 과연 맞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달치즈 이론으로는 달의 다른 특징들을 전혀 설명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치즈처럼 으스러지지 않고 수많은 운석과의 충돌을 견디어낸 흔적이 있는 달의 표면 상태,

그리고 입당 m당 3.3t에 이르는 달의 밀도는 치즈의 밀도에 비하면 3배 이상 크다.

또한 달의 공전 특성, 자기장, 태양 빛 반사 특성 등은 달이 결코 치즈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간접 분석 외에 직접 월석 10017을 상대로 화학적 조성 분석을 해본 결과,

윌석 10017은 휘석 및 사장석 그리고 티탄 철석을 주성분으로 하는 현무암 계열의 암석, 즉 돌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이러한 결론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동그란 형태의 치즈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 을 명명백백하게 알려준다.

 

올바른 과학 이론은 특정한 한두 가지 현상만 간신히 설명하면 안 된다.

관찰되는 모든 현상을 일관성 있게 설명해야만 과학 이론으로서 가치가 있다.


그랜드 캐니언 탐사는 내가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창조과학회의 현장 답사 프로그램이다. 

미국에 사는 교포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지난 5-6백만 년에 걸친 침식작용에 의해서 드러난, 지구 역사의 삼분지 일을 훌쩍 넘는 18억 4천만 년 전부터 2억 7천만 년 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이 빚어 낸 지층들을 낱낱이 보여주는 그랜드 캐니언은 심원한 지구 역사를 통해 빚어진 가장 웅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랜드 캐니언이 4천 년 전 노아 홍수 때 한순간에 만들어졌으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증명할 수 있는 지형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그랜드 캐니언을 구성하는 지질학적 특성 중 한두 가지 정도는 노아 홍수 모델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 홍수 모델은 그랜드 캐니언의 모든 지질학적 특성을 종합적이고 일관성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특정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노아 홍수 모델이 전세계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지층과 지형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암석은 화성암, 변성암, 퇴적암 단 세 종류뿐이다. 

이 중 창조과학회에서 유별나게 집착하는 것은 퇴적암이다. 

물론 퇴적암이야 홍수의 퇴적 작용으로 형성되는 암석이므로 창조과학회는 노아 홍수 모델을 증명하는 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퇴적암에 큰 관심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화성암과 변성암에 대한 창조과학회의 언급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 이유는 화성암과 변성암은 지구 역사가 창조과학회에서 주장하는 수천 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오래됐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사선 연대 측정법을 비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창조과학회에서 화성암과 변성암을 언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그랜드캐니언 답사 프로그램 이외에 거대한 화성암으로 이루 어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서 노아 홍수 이후 빙하 시대의 흔적을 찾는다고 하는 창조과학회의 빙하시대 답사 프로그램도 있다.

그렇지만 잘못 된 설명으로 퇴적암의 생성 연대를 왜곡한다면 당연히 화성암과 변성암의 생성 연대도 터무니 없이 젊게 왜곡 못할리는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창조과학회에서 논점을 더 집중해서 관심을 보이는 암석은 노아 홍수에 의해서 생성되었다고 주장하는 퇴적암이고, 

그랜드 캐니언의 경우도 노아 홍수에 의한 퇴적암층의 형성 과정에 논제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협곡 가장 아래쪽에서 기반을 이루는 화성암과 변성암층에 대해서는

"창조 때의 땅인 기반암은 이미 단단해진 상태"라고만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지,

이 기반암층의 형성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즉 창조과학회가 주창하는 "성서 지질학"에 의하면 이 땅은 홍수 이전 땅이므로 화석이 존재할 수 없다.

 

화석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1,000도가 넘는 마그마에 의해서 형성된 화성암에는 식물이나 동물의 사체가 들어갔다 한들 모조리 타버리고 말지 화석화 현상이 진행될 턱이 없다.

또한 퇴적암이나 화성암이 고온과 고압의 변성작용에 의해 생성된 변성암 속에서도 화석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변성작용을 받기 전 모암이 화석을 포함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암석의 성질이 바뀌는 변성 작용 동안 암석에 포함된 화석은 파괴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랜드 캐니언의 기반암층에서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창조과학회나 주류 지질학회나 동일하다.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학적 해석은 서로 다르다.

주류 지질학계는 화성암과 변성암의 생성 특징을 통해 화석이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은 앞서 언급했던 자연주의적 방법을 사용한다.

자연주의적 방법은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을 배제하고 자연계에 존재하고 있는 인과 관계에 의해서 자연을 해석한다.

한편 창조과학회의 자연 해석에는 초월자인 하나님이 개입되어 있다.

창조과 학회 측은 순수히 자연계에 존재하는 인과 관계로만 자연을 해석하지 않는다.

 

과학 활동을 하면서 초월자의 존재를 배제하는 것은 과학이 무신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과학 활동을 수행하는 과학자들도 얼마든지 신앙을 가질 수가 있고 또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신실한 과학자들 이 과학계에서 많은 족적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독실한 과학자들조차 과학적 탐구 활동을 진행하는 동안 하나님의 기적이나 섭리를 배제하는 이유는 과학 규칙 자체가 자연에 존재하는 인과 관계를 찾아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나 세계관적인 신념에 의해서 그 인과 관계의 근원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던지,

아니면 신은 없다고 여기던지, 이러한 부분들은 과학을 규정하는 경계 밖에 존재하는 것이지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노아 홍수 콘서트』 라는 극단적인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다.

 

동일한 땅을 바라보며 과거를 해석하려는 두 종류의 지질학자가 있다.

한 사람은 혼자서 어떻게든 알아보려고 하는 지질학자다. 

그들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현상을 보고 시생대, 원생대, 현생대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하지만 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거기에 계셨던 증인을 만났고 그분에게 물어본다.

그분이 계시하신 책을 갖고 있으며 그 책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는 너무나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첫째 날의 땅, 셋째 날의 땅, 홍수 때의 땅!

 

마태복음 7:24-27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반석과 모래 위에 지은 집에 관한 비유가 나와 있다.

이 비유에는 반석 위에 지은 집은 견고하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와 창수와 바람에 쉽게 무너지고 만다는 준엄한 경고가 담겨 있다.

그 당시 모래 위에 지은 집이란 최악의 기초 조건 위에 지은 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목 공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모래 지반은 토목 엔지니어들이 구조물을 축조하는 데 별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 는 조건이 되었다.

모래지반은 비교적 개량이 용이하고, 빠른 시간에 개량할 수가 있으며, 또한 지지 말뚝뿐만 아니라 마찰 말뚝을 이용해서도 구조물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강가나 바닷가의 갯벌같이 미세한 흙 입자가 물을 잔뜩 머금은 진흙으로 조성된 지반은 현대의 첨단 토목 공학 기술로도 구조물을 축조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해저 20m 깊이의 수심에 이르는 바닷속 진흙 지반을 매립해서 건설된 현대 토목 기술의 총화인 일본의 간사이 공항 역시 개항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계속되는 침하로 인해 유지 보수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성경의 무오성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신실한 토목 공학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께서 전지전능하시며 따라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계시는 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는 마태복음을 통독하던 중 7장에 있는 예수님의 "반석 위에 지은 집, 모 래 위에 지은 집" 비유에서 눈길이 멎는다.

특히 7:26의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생각한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왜 진흙이 아닌 모래 위에 집 짓는 것을 어리석다고 하셨을까? 

왜 사해의 질척질척한 머드(진흙, mud)가 아닌 모래를 예로 드신 걸까? 

필경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모르는 것도 없으셨을 테고,

더더군다나 직업도 목수셨으니 나와는 동종 업계 분인 만큼

집이나 구조물 기초에 대해서도 잘 아시고 계셨을 텐데...

 

그는 곰곰이 본문을 묵상하는 중에 예수께서 진흙을 예로 드시지 않고 모래를 예로 드신 것은

분명히 진흙보다 모래가 더 나쁜 기초 조건임 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가 "성서 토목 공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토목 공학을 주창하고

기존의 토목 공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진 흙이 최악의 기초 조건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고

모래가 진흙보다 더 나 쁘다며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수천수만 건의 프로젝트 시공을 통해서

확고하게 증명되는 이론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는 과연 학계와 건설업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게 될까?

 

앞서 인용했던 『노아 홍수 콘서 트』를 패러디해본다.

동일한 지반을 바라보며 기초를 해석하려는 두 종류의 토목 공학자가 있다. 

한 사람은 혼자서 어떻게든 알아보려고 하는 토목 공학자다. 

그들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지반을 분류하려고, 통일 분류법, AASHTO 분류법, 삼각 분류법이라는 것을 고안했다.

하지만 그는 왜 모래가 진흙보다 나쁜 기초 지반 인지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전지전능한 분을 만났고 그분에게 물어본다.

그는 그분이 계시하신 책을 갖고 있고 그 책에 대한 믿 음이 있다.

그는 너무나 선명하게 알 수 있다.

예수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마 7:27)라고 말씀하셨 지... 역시 모래가 최악의 기초 지반이군!

 

혹시 독자들 가운데 집을 건축할 계획이 있다면 과연 이런 엔지니어에게 설계를 맡길 수 있겠는가? 

“성서 토목 공학"이 난센스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성서 지질학"이란 말도 당연히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지질학자이건, 

불교 신앙을 가진 지질학자이건, 

힌두교 신앙을 가진 지질학자이건, 

이슬람 지질학자 이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무신론 지질학자 이건 

그들 모두가 동일한 학문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다면 

지각의 구조와 형성 과정을 해석해내는 객관적인 설명의 깊이와 폭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종교적 신앙이나 신념에 의해 과학적 해석이 얼토 당토않게 달라진다면 우리는 "성서 지질학", "반야심경 지질학", "힌두 우파니샤드 지질학", "코란 지질학", "무신론 지질학" 등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과학이 고유한 경계를 넘어서 개개인의 신앙과 신념에 의해 이리저리 굴절돼버린다면 인류는 결코 자연의 객관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창조과학회의 바람대로 이런 세상이 도래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에 기록된 "땅을 정복 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

과학은 인류가 땅, 즉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는 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현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성서 토목 공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토목 공학이 있을 뿐이다. 성서 지질학도 없다. 단지 지질학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 조하실 때 장치해두신 법칙에 의한 인과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범위 안에 있는 자연의 모습을 

단지 성경의 문자적인 표현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경륜을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가 되어버릴 것이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성경의 문자적 표현에 천착해서 자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만이 창조과학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전부가 아니다. 

자정능력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이제부터 소개하는 요소가 더 심각한 문제점이 될 수 있다.

대륙 이동설을 처음 제창했던 독일의 기상학자 알프레드 베 게너(Alfred Wegener)의 예를 통해서 창조과학이 가진 더욱 중차대한 문제 점을 살펴보자.

 

1912년 기상학자인 베게너가 대륙 이동을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베게너는 대륙의 해안선들이 서로 일치한다는 점, 

그 해안선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대륙에 퍼져 있는 동일한 화석을 통해서 현재 지구상에 존재 하는 대륙들이 과거에는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었었다고 주장했다. 

과연 세간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베게너는 어마어마한 비웃음을 듣게 된다.

어떤 지질학자도 그의 이론을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해서 1915년 「대륙과 해양의 기원」(Die Entstehung der Kontinente und Ozeane, 나남 역간) 이라는 저서를 출간한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거대한 대륙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사람들에게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베게너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질학계에서 새로운 이론이 태동할 때마다 그 이론이 자신의 대륙 이동 가설과 어떻게 연관 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는 「대륙과 해양의 기원」 1919년, 1928년, 그리고 1929년의 개정판에서 최신 지질학 성과를 통해 대륙 이동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 개정판을 출간한 이듬해인 1930년 에 그린랜드 탐사를 떠난 베게너는 조난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

그는 결국 자신의 학설인 대륙 이동설이 지질학계에서 인정받는 것을 생전에 목도할 수 없었다.

 

현재는 베게너가 최초로 제안했던 대륙 이동이 사실임이 증명되었고 학계에서 확고하게 인정받고 있다. 

베게너는 자신의 이론이 배척받는 중에도 결코 지질학계와의 대화를 중단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지질학계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논문과 연구 성과를 공부해서 자신의 이론의 부족 한 점을 보완하려고 했고,

그렇게 해서 더욱 다듬어진 이론은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지질학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했다.

 

베게너가 일생 동안 극심한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이론에 대한 바람몰이를 하는 것과 같은 편법을 부리지 않고 항상 학문적 절차를 고수했다는 점은 학자로서 그의 성실함과 위대함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공인된 학문적 절차에 의한 과학 활동을 하지 않고 교회에서 각종 세미나 및 강좌, 때로는 현장 탐사 여행을 통한 여론몰이에만 몰두하는 창조과학회는 이 점을 반성해야 한다.

창조과학회 측에서는 기존의 정상 과학이 자신들의 주장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논문을 제출해도 과학 저널에 게재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1981년 미국 아칸소 주에서 있었던 창조 대 진화 재판 당시 보고된 바에 의하면

주요 과학저널 68개에 3년 동안 게재를 신청한 논문 13만 5천여 편 중에서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원고의 수는 불과 18편에 불과했으며

그 18편의 논문 중 13 편은 순수 과학이 아닌 과학 교육 저널에 기고된 원고였기 때문에

순수 과학 분야에서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논문은 단지 5편에 불과했다.

 

18편 의 논문은 전부 게재가 거부되었는데 그 이유는 기존 과학계의 편파적 시각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 논문들은 학문적 가치가 부족해서 저널에 게재되지 못했다.

다소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지금도 창조과학회 측은 그때와 비교하여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을 통해 과학계 내에서 과학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세미나와 강좌를 통해 “세 불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베게너의 경우처럼 시초에는 큰 배척을 받았던 과학 이론이 꾸준한 연구와 정상적인 통로를 거쳐서 마침내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경우를 찾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지구에서 관측되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별빛은 대기를 통과해 지구 표면에 설치된 망원경 같은 관측 장비에 잡힌다. 

하지만 지상에 있는 관측 장비는 별빛을 온전히 잡아내지 못한다.

지구 대기를 통과하는 별빛의 X선, 감마선, 자외선 등이 대기 중에서 흡수되거나 산란당하기 때문에 단지 전파 영역과 가시광선 정도만이 관측 장비에 잡힌다.

게다가 이러한 관측조차 악천후나 먼지 같은 지구 일기에 의해 제한받는다.

 

그래서 나사(NASA)는 대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공간에 대형 망원경을 띄워놓고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나사의 대형 망원경 프로그램(Great Observatories Program)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지구 궤도 상에 총 4 개의 우주 망원경을 설치해서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영역인 가시광선을 관측하는 허블 우주 망원경,

적외선 즉 열을 관측하는 스피처 우주 망원경,

감마선을 관측하는 콤튼 우주 망원경,

그리고 X선을 관측하 는 찬드라 우주 망원경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중 찬드라 망원경은 천문학자인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 (Subrah-manyan Chandrasekhar)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인도 출신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찬드라세카르는 1930년 별이 어떻게 일생을 마감하는가에 대한 계산에 성공한다.

이 계산에 따르면 태양 질량의 1.44배 이하인 별은 중성자별이나 블랙홀로 나아가지 못하고 백색 왜성으로 일생을 마감 한다.

약관 20살의 젊은이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유학가기 위해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영국으로 향하는 18일 동안 해낸 이 위대한 계산은

현재는 찬드라세카르 한계(Chandrasekhar Limit)라 불리며 별의 질량과 최후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이론이지만 발표 당시에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 았다.

 

특히 1919년 개기 일식 때 빛이 중력에 의해서 휘어지는 현상을 관측 해낸 아서 에딩턴 같은 과학계의 거장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나서 20대 초반의 찬드라세카르는 크게 상심했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연구를 계속했고 그의 이론은 과학계의 지지를 점점 더 많이 받게 되었으며 1930년대 말에는 에딩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천문학계 종사자들이 그의 이론에 동의했다.

 

찬드라세카르는 미국 위스콘신 주에 있는 여키스(Yerkes) 천문대에서 근무할 당시 시카고 대학교(University of Chicago)로부터 물리학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맡아줄 것을 요청받았다.

단 두 명의 박사과정 학생만 수강 신청한 것을 파악한 시카고 대학교가 폐강할 것을 그에게 권 유했지만 찬드라세카르는 편도 160km 길을 손수 자동차를 몰고 오가며 두 명의 학생을 놓고 강의했다.

그 두 명의 학생이 바로 1957년 노벨 물리 학상 수상자인 "리정다오"와 "양첸닝"이라는 것은 물리학계에서 잘 알려 진 일화다.

찬드라세카르 자신도 마침내 "찬드라세카르 한계" 이론을 통해서 198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영예를 얻는다.

 

이처럼 정상적인 과학적 절차에 의거해 과학계 안에서 의사소통을 하며 자신의 이론을 검증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창조과학회는 결코 과학계 내에서 자신들의 이론을 검증받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축구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오직 경기가 벌어지는 그라운드밖에는 없다.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인정 받는 곳이 콘서트홀 외에 다른 어떤 곳이 있을까?

또한 런웨이가 아니라면 세계적인 패션 모델이 어디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과학도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과학이 그 세부 전공과 관련된 전문가 집단의 검증 없이 그 이론의 타당성을 확인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