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2-3. 롤러코스터와 황룡사 9층 목탑

w.j.lee 2024. 4. 18. 13:22

 

3. 롤러코스터와 황룡사 9층 목탑

 

내가 첫 해외 여행을 한 것은 1992년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당시 외삼촌이 살고 계시는 로스앤젤레스를 약 2주간 방문했었다.

그때만 해도 십수 년 후에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해외 여행인지라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았다.

그 당시 젊은 토목 공학도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어놓은 풍광은 캘리포니아 주의 고속도로망이었다.

도로의 노면 상태는 시공된 지 오래되어 좋지 않았지만 그 방대한 고속도로망과 다양한 종류의 교량들은 참으로 경이롭게 보였다.

 

또 하나 당시 놀이 공원을 방문하고 크게 놀랐다.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위치한 발렌시아(Valencia)란 도시에 있는 매직 마운틴(Magic Mountain) 이란 놀이 공원을 찾아갔었는데, 그곳에는 나를 압도하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콜로서스(Colossus)라는, 이 놀이 공원을 대표하는 롤러코스터 (Roller Coaster)가 있었는데 레일 구조물이 전부 나무로 짜여 있었다.

습도가 낮고 건조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나무만으로도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콜로서스를 보면서 신라 시대에 축조되었던 황룡사 9층 목탑을 떠올렸다.

신라 선덕 여왕 때 주변 아홉 개 국가를 제압하여 외세의 침략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숭고한 불심(佛心)을 가지고 축조되었 던 황룡사 9층 목탑은 한층 한층이 신라의 이웃 나라를 상징했다고 한다.

이 목탑은 총 높이가 약 80m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목조 구조물이었다.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선덕 여왕님, 통이 참 작으셨네. 이왕 지으실 거 면 한 90층 높이는 지어야지 겨우 9층이 뭔가!

한 층당 한 나라씩이 아니라 10층마다 한 나라를 상징하도록 화끈하게 짓지 말이야.

높이가 더 높아질수록 부처님의 법력이 발광(發光)하는 영역 또한 당연히 넓어지지 않겠어."

 

어떻게 생각하는가? 90층짜리 목재 구조물이 가능할까? 물론 신라 시대에는 90층짜리 구조물을 축조할 수 있는 토목 기술이 없었다.

그럼 오늘날은 어떨까?

과연 가능할까?

유감스럽지만 지금도 불가능하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의 문제 때문이다.

나무만으로는 90층의 구조물을 감당할 수 있는 강도와 내구성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콜로서스 롤러코스터로 다시 돌아가 예를 들어본다면, 백여 명의 사람을 태우고 시속 60마일(시속 약 100km)로 달리는 소박한 사이즈의 롤러코스터라면 나무 구조물이 감당해낼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량으로 편성되어 천여 명이 넘는 승객을 싣고 시속 300km로 달리는 육중한 고속 전철(KTX)이 가하는 하중을 나무 구조물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나무로 된 철도 교량, 한강을 가로지르는 하상 교량,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장대 경간의 연육교 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창조과학회에서는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를 견딜만큼 안전하다는 주장을 한다.

그 증거로 노아의 방주가 복원력이 가장 뛰어난 선박이라는 것을 "해사 연구소"에서 규명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 출연 연구 기관에서 그와 같은 실험을 해서 논문을 냈을리는 없고 몇몇 연구원들끼리 모의 실험을 해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박의 복원 안정성이야 선박의 높이가 낮아서 무게 중심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복원 안정성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그러한 구조 자체가 성립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길이 삼백 규빗, 즉 135미터 의 거대한 목조 선박의 제조가 과연 가능한가라는 것이다.

 

유원지에서 조야(粗野)하게 만든 나룻배를 타고 연인과 데이트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룻배의 밑바닥에는 항상 물이 조금씩 고여 있다. 

그것은 유원지의 물이 너울져서 배로 넘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배 밑바닥 에서 새는 물이다. 

배의 아랫부분이 물 속에 잠기게 되면서 수압에 의해 나룻배의 나무 이음새 사이로 조금씩 물이 누수되는 것이다.

 

길이 135m, 폭 23m, 높이 14m에 해당하는 노아의 방주가 물 속으로 진수된다면 어떻게 될까? 

물 위에 선박을 띄워놓았을 때 물속에 잠기는 깊이를 흘수(吃水)라고 한다. 

조야한 나룻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량이 많이 나가는 거대한 노아의 방주가 물에 닿는다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물 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엄청난 면적에 엄청난 수압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지된 물에 작용하는 정수압(흐름이 없는 물이 갖는 압력 을 의미한다. 흐르는 물에 의해 작용되는 압력은 "동수압이라고 한다)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P = rh

 

여기서 P는 압력을 뜻하고 r은 물의 단위 중량을 뜻하며 h는 수심을 뜻한다. 

높이 14m인 노아의 방주의 흘수를 높이의 절반인 7m로 가정한 다면(노아의 방주가 정지된 물위에 떠 있을 때 물속에 잠기는 부분이 7m가 된다는 가정이다) 방주의 밑면에 작용하는 정수압은 다음과 같다.

 

1,030kg/m3×7m = 7,210kg/m2


1,030kg/m'은 바닷물의 단위 중량이다. 

담수의 단위 중량은 1,000kg/ m인데 염분이 녹아 있는 바닷물은 담수보다 단위 중량이 조금 높다. 

노아의 방주가 범람한 바닷물 위에 떠 있다고 가정을 한 것이다.

여기에 7m 를 곱하면 방주의 밑부분에 작용하는 정수압이 도출된다.

곧 7,210kg/m2 의 압력이 방주의 밑부분에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가로, 세로 1m 의 면적에 7.2t의 압력이 작용한다는 뜻이다.

이는 흐르지 않고 정지된 물 위에 떠 있을 경우 받게 되는 압력이다.

그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압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방주의 밑면부터 길이 방향의 방주의 이음새가 터져나가면서 방주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게 될 것이다.

정수압일 때의 상황이 이렇다는 이야기다.

대홍수의 격랑 속에서 방주가 표류한다면 당연히 이보다 훨씬 큰 수압을 받게 될 것이다.

135미터의 노아의 방주는 성립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조선 구조물이다.

복원 안정성이 뛰 어나다? 애당초 성립될 수 없는 구조물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를 들어 어떤 축구팀 감독이 한 선수를 스카우트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선수는 전성기 시절 정교하고 파워 있는 킥으로 이름을 날리던 영국의 데이비드 베컴보다 더 정확한 킥력을 보유한 선수다.

감독은 이 선수 가 상대방 골대 근처에서 프리킥 찬스가 난다면 거의 100% 득점으로 연 결할 수 있는 킥력을 가졌기 때문에 스카우트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선수가 100m를 주파하는 데 한나절이 걸리는 느려터진 주력을 가졌다면 과연 그 선수가 축구 선수로서 가치가 있겠는가?

프리킥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중간에 축구 게임이 끝날 정도의 주력을 가지고 어떻게 경기에 임하겠는가.

구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데도 방주의 복원 안정성만을 강조 하는 논리는 이 비유와 비슷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혹자는 방주 내부에 역청을 발랐기 때문에 물이 새지 않고 견뎌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하철이나 지하차도 그리고 지하 터널 같은 지하 구조물들을 시공한 경험이 있는 토목 엔지니어들에게 가장 큰 과제는 방수(水)를 해결하는 것이다.

아무리 방수를 잘하려고 해도 어디에선가는 누수가 꼭 일어난다.

땅속에서 미세하게 흐르는 지하수조차도 현대 토목 기술로 철저하게 방수 시공된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뚫고 누수를 일으키는 일이 허다하다.

현대의 첨단 기술로도 땅속의 지하수를 완벽하게 방수하기 어려운데 과연 4,000년 전에 어떤 방수 기술이 사용됐기에 135m짜리 노아의 방주는 전 지구를 덮는 홍수의 격랑 속에서도 멀쩡했던 걸까?

 

공학적인 상식으로는 물위에 진수되자마자 방주의 밑면부터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같이 터지는 누수로 인해서 산산이 부서졌어야 됐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창조과학회의 설명이 맞다면 혹 노아 옹께서 사용하셨던 방수 기술만 복원할 수 있다면 전 세계 방수 산업의 지형을 바꿀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창조과학회의 주장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떼돈을 벌 수 있는 항목들이 참으로 무궁무진한 것 같다.

 

"15세기 명나라의 정화선단의 대호보선이란 선박은 길이가 135m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노아의 방주라고 불가능했겠느냐?"라고 항변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과거의 기록을 그렇게 확실하게 신뢰한 다면 같은 중국의 기록인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유비에 대한 "팔이 길어 서서 무릎까지 닿으며 귀는 거울 없이도 자신의 귀를 볼 만큼 컸다"라는 묘사도 액면 그대로 믿는가?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기 록 자체에 과장이 섞여 있다는 것을 쉽사리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진짜로 저런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영화 "ET"에 나오는 외계인의 모습이지 지구인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정화선단의 대호보선 도 마찬가지다.

선박의 길이가 135m는 과장된 기록이고 역사적인 고증에 의하면 약 60m 정도의 선박이라는 해석이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롤러코스터의 레일 구조물은 목재로 가능하다. 

하지만 고속 전철의 교량은 목재로는 불가능하다.

80m 높이의 황룡사 9층 목탑은 가능하다.

하지만 800m 높이의 90층 목탑은 불가능하다.

현재 지구에서 800m가 넘어가는 인공적인 구조물은 두바이에 있는 163층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가 유일하다.

목재로는 이런 구조물을 절대로 건설할 수 없다.

35m짜리 목선은 가능하다.

하지만 135m에 달하는 목선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축조하기에는 토목 재료로서 목재의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논점이 성경에 나오는 사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노아의 홍수나 방주에 얼마든지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어리석다는 것이다. 

20세기 신학의 거장인 칼 바르트는 인과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역사(Historie)와 인과 관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차원이 담겨 있는 역사(Geschichte)를 구별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인과 관계로 구성된 역사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건들을

철저하게 인과 관계만을 담아낼 수 있는 과학적인 언어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는 창조과학회의 노아의 방주에 대한 설명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