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1-8. 양식과 상식, 그리고 사이비 과학과 종말론

w.j.lee 2024. 4. 18. 13:27

 

8. 양식과 상식, 그리고 사이비 과학과 종말론

 

만일 "모든 종류의 암을 100% 완치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항암제가 개발됐다”는 소문이

SNS를 통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의학계나 약학계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이 조용하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은 과연 이 소문을 신뢰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기적의 항암제를 둘러싼 정황들에 대해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당연히 이 소문이 아무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인 행동일 것이다.

 

언젠가 나는 "대한민국에는 가톨릭과 '카톡교가 있다"란 말을 들은 적이있다.

이 말은 근거 없는 루머들이 카카오톡과 같은 SNS를 통해 개신교 내에서 급속도로 퍼지는 현상을 풍자한 말이다.

SNS를 통해 전파되는 소문 중에는 과학과 관련된 것들도 상당히 많다.

"예수님의 수의에 있는 혈흔에 대한 DNA 검사 결과 마리아에게서 물려받은 DNA만 검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엄청난 이야기들이 진실이라면 해당 과학계에서 잠자코 있을리가 없을 것이다.

과학계는 발칵 뒤집 힐 것이고, 그런 과학계의 분위기가 실시간 뉴스를 통해서 전 세계로 중계될 것이다.

 

몇 해 전에는 자칭 예언자라는 한 여성이 2014년 12월에 북한이 남 한을 침공하고 그 결과 굶주린 국민들은 인육을 먹어가면서까지 생존하는 비극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 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은 전쟁 상태다. 북한군은 이미 땅굴을 통해서 서울 곳곳의 지하에 잠입했다"라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믿고

대파국의 종말을 피해 사랑하는 가족과 집을 버리고 동남아로 흘러들어가 자신 들만의 구원의 방주를 만든 사람들도 있다는 소식도 뉴스를 통해 들었다.

"전쟁 상태인데도 모른다"라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믿은 사람들이 실재 하는 것을 통해 미혹의 영에게 인간의 이성이나 상식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 자칭 예언자 여성은 자신이 천국과 지옥을 1,300여 차례나 다녀왔다고 주장했다.

1,300회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숫자인지 감이 오는가?

혹 독자들께서는 일 년에 몇 차례나 해외 여행을 하는가?

비행기를 타고 열 몇 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하는 해외 여행의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여행한다고 치고서,

일 년에 12차례 방문하는 것도 무척 벅차리라고 생각된다.

그런 여행보다 더 먼 천국과 지옥을 일 년에 한 번씩 가서 1,300회를 채우 려면 자그만치 1,300년이나 걸린다.

만약 한 달에 한 번씩 천국과 지옥 여행을 해서 1,300회를 채우려면 108년이 걸린다.

매주 한 번씩 일년에 52 회에 걸쳐 천국과 지옥 여행을 해서 1,300회를 채우는 데는 25년이 걸린다.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나의 경우 몇 해 전 조지아 주에서 발주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어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조지아 주에 갔다가, 금요일 저녁에 캘리포니아로 돌아오는 일정을 약 6개월 동안 소화한 적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불과 2,00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고작 4시간 남짓한 비행과 2시간의 시차가 있는 조지아 주를 6개월 동안 매주 출장을 다녀오는 일정을 소화한 결과 그 피로감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찾아 왔다.

그런데 캘리포니아에서 조지아보다도 더 먼 천국과 지옥을 매주 한 번씩 25년 동안 다녀오면 몸이 배겨날 수가 있을까?

황홀한 천국의 아름다움을 맛보는 것은 고사하고 지옥의 참혹함을 한두번도 아니고 매주 한 번씩 25년 동안 지속적으로 경험한다면 심신이 피폐해져서 견뎌내지 못 할 것이다.

사도 바울조차도 고린도후서를 쓰기 14년 전에 한 번 밖에 경험하지 못한 천국을(고후 12:2) 이 여성은 1,300여 회나 경험했다고 하니,

그럼에도 이런 허황된 주장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보면 미혹하는 영의 역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 자칭 예언자 여성은 북한에서 판 땅굴이 15개씩이나 서울 한복판에 실재한다는 주장도 했다.

그 여성의 주장의 진위를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해보자.

서울의 지하철은 1호선부터 9호선까지 총 9개 노선이 있다.

이 9개 노선의 총연장은 327km라고 한다.

북한에서 판 땅굴이 휴전선을 넘어 문산, 파주, 송추를 거쳐 북한산 밑을 지나서 청와대에 이르려면 어림잡아 약 50km 정도일 텐데,

이러한 땅굴이 수도 서울의 지하에 15개나 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북한이 서울 지하까지 판 땅굴의 총연장은 750km (15개 땅굴×50km)에 달할 것이다.

 

지하철 1호선이 준공된 것은 1971년이고 9호선이 개통된 것은 2009 년이므로 서울 지하철이 327km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총 38년이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긴, 총연장 439Km의 런던 지하철도 150여 년에 걸쳐 구축되었다.

북한이 판 750km짜리 땅굴은 서울 지하철 총연장과 런던 지하철 총연장을 합친 길이와 비슷하니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 는 것인가는 쉽게 알 수 있다.

게다가 지하철 공사는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수십 개의 건설 회사가 구간을 나눠 개착해서 건설을 하지만,

북한이 판 땅굴은 군사 분계선 이북에서부터 서울까지 한 방향으로만 팔 수밖에 없어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많은 이들이 터널은 파놓기만 하면 무너지지 않고 직립하리라고 생각하는데, 터널 공사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번 어린 시절에 모래 더미에서 두꺼비 집을 만들며 놀 때를 회고해보라.

손등만 모래에 집 어넣고 두꺼비 집을 만들면 잘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팔꿈치까지 모래 에 집어넣어 두꺼비 집을 만들고자 했다면 수월치 않았을 것이다.

모래 속에서 팔을 빼내는 순간 두꺼비 집이 맥없이 무너져내렸던 것을 모두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이렇듯 터널의 길이가 더 길어질수록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고 자립성을 유지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
총연장 750km에 달하는 난공사를,

그것도 북한을 항상 감시하는 첩보 위성의 감시망을 뚫고서 소리소문없이 수행해냈다고 한다면,

북한이 야말로 인류 최고의 지하 토목 기술을 가졌으며 또한 건설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가진 나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런 놀라운 수준의 토목 기술을 수출하는 것만으로도 넉넉한 외화벌이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전 세계의 젊고 유능한 토목 공학도들은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너도 나도 북한으로 유학을 갈 것이며,

그 결과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 공업대학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 토목 공학도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땅굴 이야기에 군 당국이 전혀 반응하지 않고 또한 토목 공학계가 일절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북한이 판 땅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식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속임수에 쉽게 휘둘려서 현혹되는 것일까?

행여 우리의 신앙 체질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 같은 사이비 과학이 그릇된 종말론과 결합될 때마다 그 파장과 후유증이 실로 엄청났던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경험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사이비 과학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얼마든지 판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이비 종말론은 우리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사이비 종말론은 특정한 "때"에 과도하게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종말이란 미래에 다가올 특정한 때라고만 생각한다. 

이러한 사이비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몇 월 며칠, 몇 시라는 구체적인 종말의 스케줄까지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종말을 특정한 "때"라고 인식하 는 것은 종말에 대한 대표적인 그릇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종말에 대한 바른 이해는 "때"가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 나라와 역사가 완성되어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지셨던 선한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 바로 종말인 것이다.

최종적으로 종말을 완성할 분은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종말과 관련해서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는 고린도전서 3:9의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종말을 위해 수고하는 동역자로 부름받았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완성 되는 것에 대한 소명감을 가지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가 속히 이루어 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역사적 소명감에 대해 스탠리 그렌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말론적 완성은 결국 일어날 것이다.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다. 

종말은 분명히 도래하지만,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는 어떤 의미에서 열려 있다.

역사는 부분적으로 불확정성을 지닌다.

역사는 위험 부담들을 수반한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마지막 날을 가져올 대학살이 벌어질 수도 있고,

우리가 환경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생태학적인 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다.

하나님 자신은 역사의 과정을 열어놓으신 장본인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에 참여하도록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히 실현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역사적 사역의 주체들이 되라고 초청하신다.

 

기독교 종말론에서 "때"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내세의 일만 가치가 있는 것이고 현세의 삶과 역사는 하찮은 것이라는 이원론에 빠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재 이 땅에서의 삶은 무가치하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이비 여성 예언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가족을 팽개치고 해외로 도피 행각을 벌였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소명을 얼마나 무가치하게 생각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한 가정의 어머니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어린 자식을 버리고 해외로 도피해버리는 것,

또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종말의 파국을 피하겠다고 가족을 등지고 나홀로 해외로 도피해버리는 것,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일반적인 양식과 감정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종말 신앙은 결코 인간의 지성과 양식을 저버린 몰 역사적인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종말론적 신앙이다.

 

한때 기독교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014년 12월 한반도 전쟁설은 사이비 종말론과 극단적인 반공사상, 그리고 비과학적 이성이 맞물려 만들어낸 해프닝이었다.

물론 이 해프닝은 그 자체로는 창조과학과 무관한 사건이다.

하지만 굳이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은 창조과학 역시 유사 과학으로 분류되는 퇴행적 사이비과학 활동이라는 점이다.

창조과학이 겉보기에는 복음을 변증하고 교회를 공고히 세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복음을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시키고 있다.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