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1-7. 창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

w.j.lee 2024. 4. 18. 13:27

 

7. 창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이 연출한 "아바타"(Avatar)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다. 

아바타에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자연주의적 신관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판도라 행성에 있는 모든 식물과 동물들은 초자연적인 주술적 능력이 있는 신적 존재들이다.

에이와(Eywa)라고 불리는 나무씨, 온갖 식물, 그리고 동물 하나하나에 전부 주술적 신성이 깃들어 있으며 이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Navi) 족은 자신들 주변의 모든 식물 및 동물들과 더불어 이 주술적인 힘에 의해 자연의 일부로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장면이 영화 전편에 걸쳐 묘사되고 있다.

고대 인류가 가지고 있던 주술적 자연관이 역설적으로 현대 첨단 과학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소개된 셈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외계 행성의 나비족 원주민들이 그러했듯이, 고대의 원시인들은 모든 자연은 초자연적인 힘(mana)을 가진 신적 존재들로서, 이러한 신적 존재인 자연물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흉(凶)한 일과 화(禍)를 막아주며 길(吉)한 일과 복(福)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고대원시인들은 하늘, 땅, 태양, 달, 별, 강 등 무수히 많은 신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런 신들은 자연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고대 인류의 주술적 신관에서 신들은 인간과 다름없는 자연의 일부일 따름이었다

 

고대 유대인들은 우주와 자연에 대한 이해를 그들 주위의 민족들을 통해 배웠다. 

성경이 쓰일 당시 고대 근동 지방의 천문학적 지식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고대 근동 지방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지 않고 편평 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편평한 땅을, 유리처럼 투명하고 딱딱한 돔 (Dome) 같은 반원형의 구조물이 둘러싸고 있다고 여기고 그 돔 같은 구조물을 궁창이라고 불렀다.

투명한 궁창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그 위에 막대한 물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이유는 궁창 위에 저장된 물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태양과 달과 별 같은 천체들은 딱딱한 궁창 아래 공간에서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이동했다가 땅 아래를 지나서 다음 날에 또 다시 동쪽에서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창세기의 천지 창조의 배경을 이루는 유대인의 우주론의 근간은 그들의 주변 민족들에게서 취해진 것이지만 그들은 자연 속에 뒤섞여 있는 자연신들이 아닌 자연 밖에서 자연을 창조한 하나님을 최초로 찾아 낸 민족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열조가 만났던 하나님,

즉 아브라함이 만났던 하나님, 이삭이 만났던 하나님,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씨름했던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통해서 

하늘, 땅, 태양, 달, 별, 강 같은 모든 자연물은

신적인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자연은 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 자연을 잘 이용하고 돌봐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창세기 1:28 을 통해서 아담에게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매우 화려한 고대 문명을 수립했지만 주술적인 자연관에 매여 각종 피조물을 신으로 섬겼던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같은 강대국들에게 이러한 창세기의 선포는 경천동지할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창세기는 자연이 인간의 운명을 결코 지배할 수 없고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며,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는 강력한 선포를

아름다운 시적 언어를 통해 장엄하고 웅장한 문장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물소리 같은 장엄한 언어로 주변 민족들이 섬기는 자연은 참신이 아니라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천지 창조가 웅장하고 자세하게 선포되고 있는 창세기의 배경은

왜 현대의 첨단 우주론이 아닌 고대의 비과학적인 우주론에 기초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성서학자 피터 엔즈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하나님은 역사 속으로 들어오기를 거부하지 않는 존재다. 

오히려 특정인들의 사고 체계에 따라 묘사되도록 그 자신이 낮아질지언정 허용하고 드러냈다.

 

"하나님의 계시로 쓰인 성경이 비과학적인 우주론을 반영할 리가 없다.

성경에 기록된 우주의 모습은 현재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과학적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라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종종 현대 우주론을 뜯어고쳐서 고대 근동의 우주론에 끼워 맞추 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젊은 지구론을 필두로 한 창조과학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하나님의 위대한 천지창조의 경륜을 고대 근동의 비과학적인 우주론에 제한하는 것이며,

창세기가 저술된 이후 3,500 년 동안 인류가 이룩했던 지적 성취를 다시 비과학적 우주론으로 되돌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를 통해 자연은 신이 아닌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선포되었다.

창세기를 통해 자연주의적이고 주술적인 신관이 부서졌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될 수 있었다.

유아적인 자연주의 신관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자연관을 정립하고 자연을 다스리는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의 어른됨""을 일깨워주는 하나님의 선포가 창세기를 통해 인류 역사에 울려 퍼지게 된 것이다.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