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 5 부 : 05. 영화 [콘텍트]로 읽는 과학과 신앙

w.j.lee 2024. 5. 31. 10:01

제 5 부 : 과학과 영성 사이에서

 

05. 영화 [콘텍트]로 읽는 과학과 신앙

 

"당신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외계문명과의 접촉을 다룬 영화 <콘택트>에 나오는 대사다.

외계문명 탐사에 모든 것을 바쳐온 주인공 엘리(조디 포스터 분)는 오랜 고생 끝에 마침내 외계문명으로부터 보내온 신호를 포착한다.

과학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발견을 이룩한 그녀는 지구인을 대표하여 외계문명을 방문할 우주비행사로 선발되기 위한 인터뷰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게 된다.

더구나 이 질문은 그녀의 절친으로서 대통령의 종교담당 고문을 맡고 있는 신학자 자스(매튜 매커너히 분)로부터 받은 질문이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영화 <콘택트>

 

“과학자로서 저는 경험적 증거에 의존합니다만, 신의 존재를 입증할 데이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우주비행사 선발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거죠?"

엘리의 솔직한 답변에 대해 다른 심사위원이 지적한다.

"인류의 95퍼센트는 어떤 형태로든지 절대자의 존재 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인류의 대표 사절을 선발하는 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엘리의 무신론적 태도와 달리 그녀의 경쟁자 드럼린 박사는 "인류가 수천 세대를 걸쳐 지켜온 유산(종교)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우주비행사로 선발된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교활한 경쟁자에게 패배하여 실의에 빠진 엘리에게 자스는 말한다.

"신학자로서, 인류의 95퍼센트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믿는 후보를 선발할 수는 없었노라고"

 

미항공우주국 NASA의 과학자 칼 세이건의 공상과학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콘택트>는 과학과 종교가 지닌 각각의 속성과 관계를 가장 공평하면서도 깊이 있게 묘사한 수작이다.

칼 세이건은 천문 과학자로서, 그가 진행을 맡아 해설한 <코스모스>라는 TV프로그램은 1980년대에 전 세계 60여 나라에서 6억 명 이상이 시청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과학자로서 그는 비록 특정 종교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앙을 망상으로 매도하거나 종교적 가치를 폄하하지 않았 다.

그가 핵전쟁이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던 핵 무기 감축 활동 등은 종교인들의 호응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

칼 세이건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신앙을 가리켜 '망상'에 불과하다며 무신론 캠페인을 벌이는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는 구별된다.

 

객관적 진리로서의 과학에 대한 신념과 주관적 경험으로서의 종교에 대한 존중을 동시에 간직했던 세이건의 진지함은 <콘택트>라 는 작품 속에서 과학자 엘리와 신학자 자스라는 캐릭터로 나타난다. 

이 영화의 백미는 후반부에 엘리가 청문회에서 절규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외계문명을 방문하고 지구로 돌아왔으나 그 것을 입증할 과학적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자 청문회에 불려 나와 외계에 다녀왔다는 것을 부인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에 맞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이 진실하다는 것을 간절히 고백한다.

 

"전 경험했습니다.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도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것이 사실이었 다는 것을 압니다.

전 제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증언은 그야말로 종교적 체험의 고백이다.

일평생 과학적 데이터에 입각해서만 사실을 인정했던 과학자 엘리가 마치 회심을 체험한 복음 전도자와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실천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과학만능 주의가 세계와 인생의 궁극적 답이 될 수는 없다.

예컨대 과학의 힘으로 인류의 식량생산량은 크게 늘었지만 기아로 굶주리는 인구는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다.

사이버 토론 사이트를 둘러보면 특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넘쳐 흐른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전도와 성장에만 치중했던 한국 교회의 성장제일주의에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보여 주신 기독교의 본질이 과학에 의해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면 종교 근본주의의 입장에서 과학을 부인하는 것도 어리석 은 짓이다. 

성서는 진리의 말씀이되, 과학 교과서는 아니다. 

성서가 진리의 말씀인 것은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의 의미에 관해서이지 물리적, 생물학적 영역에서 교과서라는 뜻은 아니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주님이심을 알려주는 점에서는 만고불변의 진리이지만, 그 방법과 시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차이를 깨달으면 낮은 단계의 신앙에서 한 단계 성장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어린이와 같은 신앙을 고집하면서 문자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문자적으로 성서를 읽으면 성서는 허위와 상충되는 구절들로 가득하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성서를 읽고 또 이를 타인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들에게 반대의 근거를 제공하고 그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것이다.

 

과학과 신앙이 반드시 서로 상충할 필요는 없다. 

믿음이 좋은 신자라 해서 과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뛰어난 과학자라고 해서 신앙을 멀리할 필요가 없다.

어쩌다가 이름 있는 과학자가 교회에 나 온다고 해서 마치 사상적 전향자라도 된 듯 그를 내세워 과학을 부정 하게 하고 신앙의 우위를 선전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과학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이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과학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현대과학의 눈부신 업적으로 세계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자세하게 알게 되었으니 과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 중 하나인 것이다. 

 

이제는 과학과 종교가 힘을 합쳐야만 인류 앞에 놓여 있는 도전을 해결할 수 있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