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 5 부 : 07. 우주와 인간

w.j.lee 2024. 5. 31. 09:53

제 5 부 : 과학과 영성 사이에서

 

07. 우주와 인간

 

근대과학은 우리에게 이 우주가 얼마나 크고 오래되었는지 알려주었다.

공간적으로 볼 때 우주의 크기는 인간의 언어로 도저히 표 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그 속에서 인간은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다.

지구에 비해 지름이 약 백배이며 태양계의 질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태양조차도 우주 안에서는 극히 보잘것없다.

왜냐하면 태양은 수 천억개의 은하들이 각각 수천억개씩 품고 있는 별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봐도 약 138억년에 달하는 우주의 역사에 비해 인간의 역사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그렇다면 우주는 인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우주는 그 자체로 너무 크고 긴 역사를 지녔으므로 티끌보다도 작은 존재인 인간이 있든 말든 아무런 관계가 없는가?

 

옛날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었다.

인간이 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해와 달과 천체들이 회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의 주인공은 바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아닌가?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조심스럽게 "어쩌면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천체들의 회전운동의 중심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제안하였다.

 

이로부터 시 작된 근대과학의 우주론은 천체의 중심이라 믿었던 태양조차도 그저 우리 은하의 한구석으로 밀어 내버렸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양은 지름이 약 10만 광년의 크기인 우리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약 3만 5천 광년 떨어진 나선 팔에 위치하며 대략 2억년에 한 바퀴씩 은하를 중심으로 공전한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 비추어 영국의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과학의 역사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 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온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상 오래 전부터 인류는 신과 인간을 중심에 놓고 세계관을 구성하였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이 주로 종교에 의해 표현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티븐 호킹의 이 말 속에는 넌지시 종교적 세계관의 종식을 고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맞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광대한 우주의 기원과 역사, 규모와 특징을 알아낸 존재가 인간 외에 또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간은 우주 내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다.

 

설령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지닌 지성이 우주의 진화 과정을 거쳐 출현했으며, 인간의 지성이야말로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속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성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지적 생명체는 여전히 매우 특별한 존재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우주를 연구하면서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우주가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 가능하다는 사실"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언뜻 보기에 물질로 이루어진 물리적 우주는 인간과 무관해 보이지만, 어쩌면 인간과 우주 사이에 불가분의 상호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발상의 전환은 '우주론적 인류원리'라 는 용어로 표현되었다.

 

'우주론적 인류원리'라는 용어는 1974년 브란든 카터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그는 우리 우주의 특성과 구조를 결정하는 여러 가지 물리량들이 결과적으로 인간의 출현을 허용하도록 놀라울 만큼 부합된다는 측면을 발견하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 하고 또한 그 안에 탄소복합분자를 근간으로 하는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여러 가지 제한된 조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빅뱅우주론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우주가 저절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까다로운 물리적 조건에 부합되어야만 존속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물리적 조건이란 우주의 특성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상수들로서 우주의 팽창률, 중력, 전자기력의 값이 매우 정교하게 조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놀라운 것은 이 우주가 자체적으로 마치 이러한 조건들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아니면 아주 주도면밀한 조물주에 의해 우주가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이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의 우주는 아슬아슬한 임계 팽창률을 유지함으로써 존속하고 있는데,

만일 우주의 팽창률이 수억 분의 일만 컸다면 우주 내의 밀도가 너무 작아 지금쯤 물질들은 온 우주에 가스로 널리 퍼져 버리고 그 내부에 은하나 별들이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며,

반대로 팽창률이 수억 분의 일만 작았어도 우주는 중력에 의해 한 점 으로 수축되었을 것이다.

 

원자 내의 양성자와 전자의 전하 값이 극도 로 미세한 수치만큼만 현재와 달랐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물질은 전혀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질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생명의 진화 및 인류의 출현은 아예 불가능한 일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우주의 특성은 우주에 내재된 '미세 조정' 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과학자들에 의해 관측된 여러 가지 '미세 조정'의 증거들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과 그리고 신학자들 사이에서 소위 '인류원리' 라 불리는 우주론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카와 레스는 1979년 「네이처」를 통해 이렇게 주장 하였다.

"우주 안에서 진화해온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은 몇 가지 물리적 상수의 값에 의존한다.

그리고 생명체의 가능성은 이 숫자 값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만큼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인류원리의 핵심적인 문제제기는 "우리가 우주를 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표현된다.

인류원리는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시공간 안에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은 몇몇 아주 제한된 시공의 한계 안에서만 만족된다고 설명한다.

어쩌면 무수히 많은 수의 우주가 존재했지만 우리 우주를 제외한 다른 우주는 생명체의 진화를 허용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우화로 비유될 수 있다.

"우주의 놀라운 조화도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수백만 마리의 원숭이가 수백만 년 동안 타자기 공장에서 버려진 타자기를 두드릴 경우 그중 하나가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첫 구절을 타이핑하는 일이 일어 날 수 있는 것을 상상한다면 말이다.”

 

빅뱅으로 탄생한 무수한 우주 중에서 오로지 특정한 조건을 충족한 우리 우주에서만 생명과 인간이 출현하였고, 그 인간들이 수 만 년 동안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상상으로 꾸며낸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더니 마침내 우주의 기원과 역사에 관해 정확한 과학적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우주는 시공간의 사이즈로서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존재이지만 인간과 상통한다. 

왜냐하면 물질에너지 덩어리로 시작된 우주가 그 안에 생명과 인간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우주가 인간에 의해 이해되고 설명되는 결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주의 법칙에 생명과 인간의 출현을 허용하는 조건이 만족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을 낳아준 우주에 대한 보답으로서 상상의 날개를 펼쳐 종교와 과학의 이야기를 우주에게 들려주었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