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 5 부 : 06. 가이아로서의 지구

w.j.lee 2024. 5. 31. 10:01

제 5 부 : 과학과 영성 사이에서

 

06. 가이아로서의 지구

 

인간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은 세계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이 질문 속에는 '인간 - 자연 - 신'의 관계가 담겨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인간은 위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눈부신 과학기술을 손에 넣은 오늘 날에도 지진이나 태풍, 산사태나 쓰나미 등 때때로 발생하는 대규모 자연재해와 직면하게 되면 인간은 스스로가 지극히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자연을 통제할 수단을 전혀 갖지 못했 던 옛날에는 얼마나 자연이 위대하게 느껴졌겠는가?

종교학적으로 볼 때 인간이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 느꼈던 경외감이나 공포감은 자연종교의 신상(神像)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힌두교와 같은 범신론적 종교에서는 이러한 자연의 위대한 힘이 신적 존재로 풍부하게 형상화되었다.

그에 비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유일신교에서는 형상이 없는 하나의 신이 모든 자연물을 만든 창조주가 된다.

 

종교가 자연을 신성화한 반면 과학은 자연에 깃든 신성성(神聖性)을 해체시켰다. 

근대과학은 자연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정교한 법칙과 이론을 밝혀냄으로써, 자연은 더 이상 신성한 힘을 지닌 신비한 존재로 숭배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의 일반적 경향과 정반대로 자연을 재신성화하는 데 기여한 과학적 통찰이 있다. 

그것은 제임스 러브록에 의해 제안된 '가이아가설'Gaia Hypothesis 이다. 

영국의 화학자, 의학자, 생물물리학자이며 대기과학자이기도 한 그는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유기체)로 보아 한다"는 가이아 가설을 주장하였다. 

그의 생각은 1979년에 출간 한 저서 「가이아 : 지구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에서 주창되었다.

그가 가이아 가설을 품게 된 계기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대기를 분석할 때 사용하는 장비인 전자포획검출기 Electron Capture Detector의 발명자로서 유명했던 제임스 러브록 박사는 1960년대 초 나사로부터 대기 분석을 통해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탐지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을 고안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구 환경이 생명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되고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러브록 박사는 화성이나 금성의 대기를 지구의 대기 성분과 비교 분석한 결과, 화성이나 금성에는 지구와 같은 생명체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화성이나 금성의 대기는 95퍼센트이상의 이산화탄소와 3-4퍼센트의 질소 그리고 미량의 산소, 아르곤, 메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화학적으로 완전한 평형상태인데 비하여, 지구의 대기는 77퍼센트의 질소와 21퍼센트의 산소 그리고 미량의 이산화탄소, 메탄 등이 존재하며 화학적으로 비평형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도대체 이러한 극적인 차이는 무엇 때문인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금성과 화성, 지구는 서로 비슷한 조건에서 생성되어 수십억 년을 거쳐온 이웃 행성 들이다.

그런데 왜 대기 성분이 이토록 서로 달라졌는가? 이러한 의문, 즉 "무엇이 지구를 독특한 행성으로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름 아닌 '생명'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협동하여 지구를 생명이 거주하기에 친화적인 장소로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구 생명과 환경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작동하며 자기 항상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존재와 같다.

 

러브록은 이를 '가이아'라고 명명하였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이다.

가이아에 의해 지구 생명이 태어나고 번식하였다.

가이아 신화는 지구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인간의 원초적 의식을 반영한다.

영화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은 나무나 바위, 강과 바다가 생명을 지닌 존재라고 느끼는 우리의 원초적 의식을 잘 보여준다.

가이아 가설은 모든 생물들뿐만 아니라 대기, 바다, 땅을 포함하여 전 지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구기후 및 환경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이 생명에 의해 일정한 상태로 조절되는 하나의 시스템과 같다고 주장한다.

 

러브록은 생명체의 존재 유무에 따라 지구의 대기 조성비율과 온도가 이웃 행성과 비교하여 어떻게 변화할지 다음과 같은 표로 제시하였다.

생명체에 따른 지구의 대기와 온도, 압력의 변화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에 생명체가 없을 경우 지구의 대기와 온도는 이웃한 행성인 금성이나 화성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경우 지구의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혹독하여 오늘날 지구 생명체 대부분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지구의 온도가 평균 섭씨 290도에서 50도 상하로 오르내린다면 미생물 외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미생물들이 지구를 산소가 풍부한 행성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대기 구성비율의 변화를 통해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 적당한 온도로 유지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지구 환경은 처음부터 이런 상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이 출현하여 변화시킨 결과이며, 생태계는 지구라는 행성과 결합되어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살아 있는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 30억 년 전 지구에 출현한 박테리아나 남조류 등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호흡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과정을 통해서 원시 지구의 대기를 변화시켜 산소호흡을 하는 각종 유기 생명체가 번성할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어주었다.

이후 등장한 다양한 생명체들은 보다 강력하고 안정적인 자기조절능력을 지닌 생명시스템을 형성하였다.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남조류로부터 커다란 고래나 참나무 숲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서로 협동하면서 지구를 살아 있 는 시스템으로 유지시키고 있다.

 

이를 기독교 신학으로 성찰해보면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이 세상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선포한다.

그런데 가이아 가설에 따르면 미생물을 포함한 다양한 지구생명체들이 지금의 지구를 만들어내었다. 

이 두 가지 언술을 하나로 연결시키면 지구의 생명들은 '피조된 공동창조자 Created Co-creator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주인공들이다. 

 

이러한 신학적 세계관은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자연을 대상화시키고 비주체화시킨 서구의 유일신론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을 신성시하는 범신론적 세계관과 대화할 여지를 넓혀준다. 

 

또한 가이아 가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정복을 반성하게 하는 한편 인간의 착취로 인해 파괴된 자연과 인간, 자연과 신의 관계를 화해시키고 회복하게 하는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가이아의 여신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