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성경 내용 요약

24. 가인을 죽이려 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w.j.lee 2014. 7. 8. 11:29

 

 

24. 가인을 죽이려 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가인은 자기 동생을 살해한 인류 최초의 범죄자였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임을 당했던 동생 아벨의 억울한 피는

하나님께 그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호소를 들으시고 가인에게 저주를 내리셨다.

가인은 그 저주의 결과 땅을 경작해도 소용이 없게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때 너무도 극심한 죄책감을 느낀 가인은 하나님께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4)라고 호소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가인이지만 긍휼히 여기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어 만나는 누구에게서든지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주셨다(창 4:15).

 

창세기 1장부터 가인의 범죄 사실이 기록된 창세기 4장까지에는

단 4사람(아담, 하와, 가인, 아벨)만 등장할 뿐이다.

그렇다면 가인이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했던 사람은 누구이며,

그가 받았던 표는 무엇이었는가.

 

1. 아담의 가족구성과 가인의 범죄시기

 

창세기 4장 1, 2절은 가인과 아벨의 출생 기록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이 짧은 문장 속에 상당한 시간적 흐름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와는 가인을 낳은 후, “또”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절에는 그들의 직업이 소개되어 있다.

가인과 아벨이 직업을 가질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청년의 나이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이 역시 적지 않은 시간적 간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두 형제는 각각 “땅의 소산”과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것은 “세월이 지난 후”(3절)의 일이었다.

“세월이 지난 후”란, 문자적으로 하면 ‘날들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이 말이 창 40:1에서는 “그 후엽로, 민 9:2에서는

“정기(定期)엽로 번역된 경우를 참고해 볼 때,

여러 해 이상의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 때문에

몹시 화가 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말았다.

이 사건은 제사를 드리던 당시가 아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었을 때”(8절) 일어났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아벨 대신 셋을 낳게 해주셨다(25절)

그것은 아담의 나이 130세 되던 때이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에도 800년을 더 살면서 자녀를 낳았고,

930세에 세상을 떠났다(창 5:4,5).

또 가인이나 셋에게는 분명히 자녀들을 낳아 주었던 아내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아담의 딸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들의 이름이나 숫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성경은 사람의 모든 역사와 관심사를 다 기록한 책이 아니다.

오직 구원에 관한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의 자녀들 중에서 가인과 아벨,

그리고 아벨 대신에 낳은 “다른 씨”(25절), 즉 구원의 계보인 셋만을 소개한다.

이 사실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족보와, 5장에 나오는 셋의 족보,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도 확인이 되는 현상이다.

성경의 족보들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을 제외하고는,

두 사람 이상의 자녀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들을 종합해 보면, 아담과 하와 사이에는

가인과 아벨 이외에도 다른 아들들과 딸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많은 손자와 손녀들이 있었으며,

따라서 가인은 자기 형제자매들 그리고

그 형제자매들의 자녀들과 함께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인이 동생을 죽인 시기는

스스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나이,

그리고 혼자서도 동생을 쳐 죽일만한 힘을 가질 수 있었을 나이였다.

가인의 나이가 그 정도에 이르렀을 때에는

분명히 다른 형제나 자매도 있었을 것이다.

 

2. 가인이 두려워했던 사람

 

사람이 많지 않았던 인류 초기에는, 족장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복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내용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래서 족장들은 평균 세 아들과 세 딸을 낳았다.

족장들은 평균적으로 400년을 살았고, 80세에 자녀를 낳기 시작했다.

이런 평균치에 따라 가정을 해본다면, 가인은 80년이 넘기 전에

10만 명 정도의 인구와 더불어 살았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인은 당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느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기 자신의 족보에 속한 사람들로부터는

살인과 같은 심각한 위협을 받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인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대상은 자기의 가문이 아닌 다른 사람들

특히 아벨, 또는 아벨 대신에 언약의 대를 이었던 씨인

셋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히브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무고하게 부모를 죽인 사람에 대해서는

그 후손들이 그를 만나면 언제 어디서든지

복수를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민 35:19~21).

이런 사상은 ‘고엘’ 사상이라고 불렸다.

그들에게 가나안 정복 후 땅의 분배과정에서 도피성 제도가 마련된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이 빛과 함께할 수 없고 빛이 들어가면 어둠은 물러가고 말듯이,

어느 시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죄인은 아무런 강요가 없어도

항상 다른 사람, 특히 선한 사람들과 대립적인 관계를 가지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죽음 이후에까지도 이어져,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3. 가인이 받았던 표(標)

 

하나님께서는 중한 죄벌로 견딜 수 없어 하는 가인을 안심시키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어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해주셨다.(15절)

그러면 가인이 받았던 표는 무엇이었을까.

 

“표”라는 말은 본래 기념비, 증거물, 깃발, 표시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에스겔서(겔 9:6)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마에 인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보는 것처럼(계 7:3, 9:4, 20:4)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이마나 신체의 다른 부위에

일종의 문신과 같은 특별한 표를 새겨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몸에 무늬를 새기지 말라”(레 19:28)는

계명을 주셨던 사실을 고려해보면,

이러한 추측은 별로 좋은 생각이라고 하기 어렵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에 대한 성취를 확신시키려고 하실 때,

특별한 외형적 증표들을 사용하신 일이 있다.

예를 들어, 노아에게 다시는 홍수로 인류를 멸하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시키실 때에는 무지개를 그 증표로 삼으셨고(창 9:13),

히스기야에게 생명이 15년이나 연장될 것을 확신시키실 때는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10도나 물러가게 하셨다(왕하 20:8~1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인에게도

가인 자신에게는 스스로의 확인을 통하여 안도감을 가질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보고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는

특별한 외형적 증표를 주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외형적 증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신뢰의 마음이 무디어지면 외형적 증표는

더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사람에게 외형적인 증표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내적인 확신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께서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돌비가 아닌 마음의 비석에

하나님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편지를 새기라고 가르치셨다(고후 3: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가인의 마음속에

어느 누구를 만나도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내적 확신을 주셨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공포심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이 마음속으로 갖는 강력한 느낌은

표정이나 태도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가인은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동생을 살해한 죄 값으로 내리신

하나님의 저주에 대한 공포심어린 회한과 함께

하나님의 보호하실 것임에 대한

확신으로 인한 깊은 안도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의 얼굴에 표출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졌고,

그것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를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의 증표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셨던 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다만 나름대로의 근거를 토대로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죄를 저지른 가인에게까지도 표를 주셔서

죽임을 면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했을 때에도,

에덴동산에서 내쫒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행사하실 때에도 사랑을 잊지 않으시는

자신의 마음을 에스겔 선지자의 입을 통해 확인해 주시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겔 33:11)고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는

집나간 탕자라도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사랑과 은혜의 아버지 모습으로 소개되었다(눅 15장).

 

우리는 가인의 범죄 전후 기록을 읽을 때,

하나님 편에서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경을 문자적인 기록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그 기록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범한 가인의 죄를 밝혀

그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죄인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줄거리를 바로 파악하고 성경을 읽는 방법이다.

이런 자세로 성경을 대하면, 가인이 두려워했던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가인이 받았던 표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등의 문제는 너무나도 손쉽게 풀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