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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회개, 반복되는 완악함
2021년 4월 26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 (출애굽기 9:27~35)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28 여호와께 구하여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서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우렛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아니할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31 그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33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우렛소리와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35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오늘의 말씀요약
바로는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우박을 그치게 해 주면 백성을 보내겠다고 약속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향해 손을 펴자 우박과 비와 우렛소리가 그칩니다.
그러나 바로와 신하들은 다시 마음이 완악해지고, 바로는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다.
우박 재앙은 밀과 쌀보리가 자라지 않은 때에 임했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바로의 거짓 회개 (9:27~30)
하나님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거짓 회개에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바로는 전대미문의 재앙 앞에 처음으로 자신과 백성이 악했음을 시인합니다.
하지만 바로의 고백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첫째, 재앙이 멈추는 것을 보자 그가 곧바로 마음을 완악하게 했기 때문입니다(34절).
둘째, ‘이번은’(27절)이라는 말을 덧붙여 잘못의 범위에 한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죄를 가지고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에서 완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종 모세는 바로의 회개가 거짓임을 압니다.
진심 어린 회개 없이는 선한 응답도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각 사람의 행실대로 보응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렘 17:10).
- 바로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된 이유와 그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버려야 할 거짓된 회개는 무엇인가요?
우박이 그치니 다시 완악해진 바로 (9:31~35)
돌이킬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치자 바로는 마음을 돌이켜 다시 완악한 마음을 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그가 다시 악한 길로 돌이킬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30절).
여섯 번째 재앙에서처럼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9:12)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완악한 마음을 품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자기 뜻대로 완악한 마음을 품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하지만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따르며 스스로 진노를 쌓는 자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롬 2:5).
- 우박이 그치자 바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기회를 붙잡지 못하도록 스스로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담담히 말하는 모세에게서 악의 속성을 꿰뚫은 자의 여유를 봅니다.
거듭되는 기적 앞에서도 반복적으로 대적하는 악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함으로 최후 승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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