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고백의 언어들

서문

w.j.lee 2024. 10. 7. 09:18

서문(序文) 

 

우리 삶의 의미는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에 의해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비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우리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결코 충만한 실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토머스 머튼

 

 

내 앞에서 모든 문이 닫힌 것 같은 답답함에 스스로의 무게를 주체할 수 없었던 청년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저녁 햇살을 받은 한강물 위로 윤슬이 반짝일 때, 어디서도 설 자리를 찾지 못한 내 삶에 대한 비애감이 한껏 고조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듯 아뜩할 때, 멀리서 아스라이 교회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어떤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개시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뿌리를 헤아릴 수 없는 그리움이 커졌다.

마침 내 옆을 지나가고 계시던 어머니의 뒤를 따라 생전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것은 나의 인생 여정 가운데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그날 내게 들려온 종소리는 만해 한용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과 같았다.

내게 설 땅이 되어 주는 이들이 있는 곳, 그곳이 좋았다. 

한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다음 순간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의 위선에 분노했다. 

그 부조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신학을 하기로 작정한 것은 그 부조화의 뿌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학을 공부한다고는 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내게 미지의 존재였고, 캄캄한 어둠 속에 계신 분이었다. 

어둠 속을 더듬더듬 걷다가 어느 순간 섬광처럼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경외감을 느낄 때도 있었고, 영혼의 어둔 밤을 지나야 했던 고독의 순간들도 많았다.

20대 이후 목회자로 살았지만 단 한 번도 하나님에 대해 확연하게 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 걸음 앞에서 나를 이끄셨다.

그분은 언제나 새로운 사건으로 다가오셨고, 그때마다 깊은 경외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아브라함 헤셸은 "하나님의 선율은 스타카토 식으로 전개되기에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목회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렀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욥의 고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읍 42:3).

잘 알지 못함이 하나님에 대한 회의를 뜻하는 것은 아 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의지를 다 파악할 수 없지만 그분을 깊이 신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알지 못해도 나를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 한지 모른다.

 

"이상한 존재는 많지만, 인간보다 더 이상한 존재는 없다"는 소포클레스의 말을 요즘처럼 실감하는 때가 없다. 

하늘을 잊은 채 사는 사람들, 경외해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이들이 질주하는 세상은 시장 바닥과 다를 바 없다.

이익 동기가 다른 모든 가치를 블랙 홀처럼 빨아들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기를 초극하는 것이 사람됨의 과제라지만 욕망의 중력이 우리를 확고하게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 중력이 느슨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 한계상황에 내몰릴 때다.

심연 앞에서 아뜩함을 느낄 때 은총이 우리를 위로 들어 올린다.

 

목회 은퇴를 앞두고 그동안 내가 만났고 지금도 여전히 만나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차분하게 돌아보고 싶었다.

사실 이런 무모한 용기를 낸 것은 함석헌 선생의 시 [하나님]이 그려 보이는 하나님 체험의 변화 양상이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고, 그 시의 흐름을 따라 하나님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아주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절대 타자로서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이 주는 기쁨과 든든함, 그리고 안다 싶은 순간 또다시 낯설어지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불붙은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출 3:6).

하나님은 개념으로 파악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 사이에서 빚어진다.

이 책이 개념을 통해 하나님을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 기를 부른다.

하나님을 깊이 이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좌절간에 사로잡힌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일부임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하나님을 파악 가능한 존재처럼 여기는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들의 견해가 대롱 으로 하늘을 보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출간하며 감사한 이들이 있다. 

이 책은 2023년 8월 28일부터 9월 1일까지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한 강의를 정리한 것이다.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최종원 교수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가 보여준 환대와 우정, 조용하지만 멈추지 않는 열정이 잊히지 않는다.

또한 출간을 주저하는 내게 끝없이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마련해 준 '복있 는 사람' 박종현 대표에게 감사드린다.

 

초고 원고를 꼼꼼히 읽고 완 성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모양으로 수고해 준 문준호 팀장에게도 감사드린다.

이 책이 나름대로 꼴을 갖춘 것은 전적으로 그의 덕분 이다.

특별히 아주 긴 시간 동안 내가 몸담아 온 청파교회 교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 싶다.

언제나 신뢰와 지지를 보내 준 교우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 책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준 내 인생의 고마운 동반자 김희우에게 감사를 전한다.

하나님과의 새로운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설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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