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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의 두려운 위엄만 부각하는 반쪽 신앙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오늘의 말씀 (욥기 37:14~24)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15.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16.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17.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18.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19.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20.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21.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22.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23.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오늘의 말씀요약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명령으로 움직이는 번개와 구름의 경이로움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전능자를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의 권능은 크시며, 그분은 공의를 굽히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깨달으라 (37:14~20)
인간은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극히 일부만 알 뿐입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요청합니다(14절).
그는 ‘아느냐’와 ‘할 수 있느냐’라는 수사학적 질문을 던집니다(15~18절).
이는 욥이 답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엘리후의 진술은 하나님의 발언(38~41장),
곧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무능을 극명하게 강조하는 내용과 유사하기에 이를 예비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엘리후는 무능하고 무지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어떤 말로도 대항할 수 없으며,
섣불리 말하다가 삼킴을 당한다고 경고합니다.
엘리후는 사람이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속성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은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을 찾아오시고, 만나 주십니다.
- 하나님의 ‘엄위하심’만을 강조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 내게 하나님은 언제든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인가요, 섣불리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인가요?
하나님을 경외하라 (37:21~24)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앞에 인간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밝은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21절),
북쪽의 빛과 두려운 위엄은 빛의 현현과 함께 드러나는 하나님의 위엄을(22절) 말해 줍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위엄 앞에서 사람이 취할 태도는 ‘하나님 경외’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께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경외’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말씀해 주십니다(38:1).
엘리후의 발언은 “하나님의 권능이 크고 정의로우신데,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합니다.
욥과 같이 고난당하는 이에게 진정한 답변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 발언을 마무리하면서 엘리후가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사랑으로 경외하는 것과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오늘의 기도
저 높고 넓은 하늘에 구름을 겹겹이 쌓으시는
창조주의 손길이 얼마나 오묘한지요!
구름이 물러나 햇빛이 찬란히 드러나게 하시듯,
주님이 제 삶의 먹구름도 걷어 주실 줄 믿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살아 계신 주님의 존재를 느끼며,
완전한 지식으로 일하시는 주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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