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 4일 : 온기를 더하는 음성

w.j.lee 2024. 2. 8. 09:08


온기를 더하는 음성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마태복음 9:2-13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마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마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마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주님이 중풍병자를 낫게 하신 후 세리 마태와 그의 동료들과 식사 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종교의식처럼 엄숙하고 장중한 분위기는 아닙 니다. 

주께서 병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낮추고 무릎을 굽힙니다. 

눈을 맞추고 손을 잡으며 따듯하게 말을 건넵니다. 

'아이야' 이 한마디 로 두려워하며 긴장하고 있던 병자의 마음이 위로를 얻습니다. 

병자의 두려움을 물리쳐 주고 주님이 친히 돌보며 감싸주겠다는 친밀한 사랑과 용서의 음성입니다.

 

율법학자들, 종교에 정통한 이들은 분노합니다. 

그들이 보기에 주님의 말씀은 신성모독입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데 감히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웅성대는 이들을 향해 주님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게 해주겠다'며 중풍
병자의 병을 고쳐 일으킵니다. 

짓눌려 일어나지 못하는 병자를 향한 주님의 음성과 죄와 의를 판단하는 율법학자들을 향한 음성에는 온도 차이 가 있습니다.

 

세리 마태를 부르는 장면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마태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했고, 마태는 그 말에 사로잡혀 그대로 따릅니다. 

설명도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은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세리 마태에게 가서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넸습니다.

마태는 주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그 영혼을 얼마나 떨리게 하고 용기를 부어주었는지 가늠하긴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음성 이후의 행동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들까지 주님 가까이로 초대합니다.

마태는 자신이 들은 음성을 통해 삶이 새로워졌음을, 인생의 대전환이 일어났음 그분의 용서하심이 자신을 온전케 했음을 확신한 거지요.

 

바리새인은 그 모습이 못마땅합니다. 

어찌 선생이 되어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느냐며 타박합니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의사는 병든 이들에게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은 일으키는 음성, 용서하므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음성인데,

저들의 소리는 판단하고 정죄함으로 내리 누르고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소리입니다.

 

저들의 소리는 성전과 회당에서 울려납니다.

율법 해석의 권위로 덧입혀지고 종교 전통과 예전에서 장중하게 울려 퍼집니다.

그 말은 두려움과 죄의식을 불러들이고, 죄인으로 규정된 이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냅니다.

예수님의 음성은 용서를 베풀기 위해 낮은 곳, 죄인의 자리로 찾아갑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용서의 음성을 들려주기 위해 성전과 회당, 율법서의 장중한 예식을 포기하고 낮은 곳으로 가서 그들과 눈을 맞추며 부드러이 말을 건넵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실익이라곤 전혀 없는 목자의 모습입니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맞으려 상거(相距)가 아직 먼데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용서와 사랑은 아픔이 있는 곳, 상처가 있는 곳, 차별이 있는 곳에 함께 앉는 것이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과 눈을 맞추는 것이며,

따듯하게 말을 건네는 것이며, 함께 용서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는 것입니다.

스스로 신실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이와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했습니다.

 

나의 신앙은 어떤 음성과 언어로 채워져 있는지, 우리 신앙공동체의 음조는 어떤지, 서로 용납되는 고마움과 기쁨, 서로 일으켜 주는 격려로 오늘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습니다.

 

기도
주님, 

제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깊이 묵상하고 싶습니다. 

판단과 정죄의 언어로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짓을 멈추고 싶습니다. 

주님과 눈을 맞추고 당신의 따듯하고 용기를 일 으키는 음성을 듣게 하십시오. 

그 음성으로 충분해지기까지 머물게 하십시오. 

그렇게 얻은 힘과 위로를 간직하고, 나눌 이를 찾아가도록 힘을 주십시오. 

아멘


출처 : 사순절 묵상여정- 곁에 머물며(송대선, 지강유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