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 첫째 주일 : 사랑하는 이, 사랑 받는 이

w.j.lee 2024. 2. 8. 10:00

사랑하는 이, 사랑받는 이

사순 첫째 주일 2024년 2월 18일 

마가복음 1:9-15

(막 1: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막 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막 1: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막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막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하버드 대학의 영성신학 교수를 역임한 헨리 나웬은 많은 저술, 강연, 헌신을 통해 복음의 은혜와 깊이를 나눴습니다.

손님과 대화하다가도 정한 기도 시간이 되면 "저와 함께 기도하실래요? 아니면 다음에 다시 오시겠어요?"라고 말할 만큼 신실함과 친절함을 함께 갖춘 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자 애쓴 그였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자주 느꼈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겐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지만 스스로는 기쁨을 누리지 했습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떠나 중증장애인 공동체 '데이브레이 봉사자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중에 그의 마음에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감사와 평안 그리고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나웬에겐 없지만 그들에게 있는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받아들여 주고 '너는 내 사랑받는 자(the Beloved)'라 여겨주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그들의 믿음을 보고서 나웬도 그 믿음에 사로잡혔습니다.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만 하나님께 용납되 는게 아니라 '존재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며 용납한다는 깨달음이야 말로 복음이요, 은총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얻은 은총으로 흔들리지 않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받는 자(the Beloved)'라는 하나님의 용납이 기독교 신앙의 바탕입니다. 

이것은 공로와 행위로 맞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순전하고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와 사랑의 용납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모든 행위가 가능하게 됩니다.

순종과 희생도, 헌신과 사명의 감당, 선한 행위와 사랑의 응답까지도 오로지 이 은혜로 말미암은 거지요.

이 바탕이 없다면 믿는 이의 모든 행위는 자기 공로가 되고, 신앙의 행실은 구원을 위한 거래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세례의 순간에 '너는 내 사랑받는 이, 기뻐하는 아들'이 란 음성을 듣고 공생애를 시작하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구원의 역사가 완성된 후 들려진 평가나 칭찬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무엇을 하기 전 이미 그를 사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감격 가운데 행하게 되는 예수님의 사역은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의 기꺼운 응답이 되었습니다. 

요한의 진술처럼 아버지께서 일(사랑)하시니 나도 일(사랑)한다' 고 말씀하실 수밖에 없고,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선언하는 거지요.

한걸음 더 나아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 도한 것은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받는 이'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사순의 시간은 고통스런 순종, 어쩔 수 없는 희생의 여정이 아니라 사랑받는 이(the Beloved)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사 랑하는 아버지'와 '사랑받는 아들'의 '온전히 하나 되는 여정'에 초대되 었습니다.

이 초대는 사랑으로만 응답할 수 있습니다.

성과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짓눌린 이와 연약한 이에게 다가가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임을 일깨워 주고, 우리가 받은 사랑을 나누는 거지요.

스스로 루저(Loser 패배자)라고 여기는 이에게 그리스도의 복음 '당신은 사랑받는 이요,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용납된 이임을 일러주어야지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납과 사랑'은 나눌수록 실재가 되고, 확장 되고, 힘이 됩니다.

그저 내 안에 간직하기만 한다면 '유효 시간이 지난 만나'처럼 무용한 것이 되고 맙니다.

 

기도

주님,

이 하루를 사는 동안 '너는 내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에 젖어 지내게 하십시오. 

제 생각과 말과 행위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자 기꺼운 순종이 되길 원합니다. 

혹 사랑의 음성을 들어야 할 이웃을 만나면 그에게 다가가 손물 잡음으로 주님의 음성이 전해지게 해주십시오.

아멘


출처 : 사순절 묵상여정- 곁에 머물며(송대선, 지강유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