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묻거든
2024년 2월 20일 · 화
베드로전서 3장 8~18a
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도 언어도 특별 한 삶의 형태도, 그들에게만 따로 허용된 도시도 없고, 그들만 말하는 언어도 없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문명화된 도시에 살거나 야만인의 도시에 삽니다. 그들 각자의 운명이 정해주는 대로 말입니다. 의복이든 음식이든 그 밖에 어떤 것을 사 용하든 살고있는 나라의 풍습을 따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눈에 하나의 기적처럼 보이는 경이로운 삶을 영위합니다...
그들은 땅 위에 살지만 그 들의 도성은 하늘에 있으며, 그들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2세기에 쓰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입니다.
오늘 묵상할 베드로의 권면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떨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베드로의 편지와 위의 인용 글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세상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도의 마지막 권면을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꿔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손해 보는 것에 있으니 이 세상에서 손해를 보고 사십시오' 정도일 겁니다.
악을 악으로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복을 빌어주려 면,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말의 손해'가 있습니다.
잘못을 보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하고, 침묵으로 덮어주며 선대하는 것입니다.
'몸의 손해'도 있습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에 나서는 것으로, 더럽혀지고 귀찮은 일에 기꺼이 나서는 거지요.
그런다고 죽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
물질의 손해'도 있습니다.
같은 값이면 덜 좋은 것을 집어 들고, 건네야 할 때는 더 얹어 주기도 해야 합니다.
이는 제 유익을 추구하는 세상에 익숙한 우리 생각과 몸을 이끌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연약한 몸에 새기는 길이지도 하지요.
이 훈련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 을 배우고 그분의 마음에 젖어들 수 있습니다.
'예! 주님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며 마음으로 승복하며 따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방식이 통용되는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셈법과 기쁨을 배우게 됩니다.
지고도, 손해 보고도 즐거워하는 우리에게 세상은 묻게 될 것입니 다.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느냐고, 왜 손해를 보고, 허물을 덮어주냐고.
믿는 이는 그제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넉넉히 먼저 그리하셨고 여전히 그 힘과 은총을 덧입고 있다고 온유하게, 간절함을 품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순간, 믿는 이는 그리스도의 순전한 통로요 사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소망이 고백한 이를 통해 묻는 이에게, 들은 이를 통해 또 누군가에게 전해질 터이니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게 되 지요.
내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하지요.
선을 행하고 병자를 고치며 자비와 용서를 베풀고도 손가락질을 받고 십자가로 내몰리신 주님을 떠올려 봅니다.
주께서 하늘의 소망을 일러주신 것은 눈앞의 손해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신뢰가 더 실재 였기 때문입니다.
디오그네투스의 편지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인처럼 땅 에 속하나 하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 땅의 운명에 흔들리지 않는 걸음은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소망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기도
주님,
조금의 손해라도 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인생이요, 남의 허물을 얼른 옮기고 싶어하는 고약한 성정임을 고백합니다.
이런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오늘 하루 제 입술을 지키십시오.
좀 더러워지고 귀찮아도 수고를 감당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는 기적을 누리게 하십시오.
혹여 누군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제 안에 계신 당신이 제 입술을 통해 나오십시오.
아멘
출처 : 사순절 묵상여정- 곁에 머물며(송대선, 지강유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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