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떨기나무

진짜 시내산 구별하기

w.j.lee 2024. 2. 26. 16:47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진짜 시내산이 아닌 9가지 이유

 

시내산에 있어야 할 것들

# 엘리야 동굴 : 열왕기상 19:9
# 산 주위 지경 : 출애굽기 19:12
# 성악 친 장소 : 출애굽기 26장
# 12돌 기념 기둥 : 출애굽기 24:4
# 하나님이 지나가신 바위들 : 출애굽기 33:22. 시편 94:22. 열왕기상 19:11
# 광야 산에 흐르는 물 : 신명기 9:21
# 이론의 금송아지 단 : 출애굽기 32장
# 300명 무덤터 : 출애굽기 3228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진짜 시내산이 아닌 9가지 이유


1. 시나이반도는 당시에 애굽의 땅이었다.
시나이반도는 이스라엘에 의해 1967년 침공 당하기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이나 점령을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 애굽 땅이었다.
애굽에서 탈출하고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굽 영토인 그곳으로 돌아가서 11개월을 살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홍해는 시나이반도를 중심으로 양팔을 벌리고 있는 듯하다.
왼팔 끝은 수에즈로 연결되고 오른팔 끝은 아카바(엘라트)이다.
만약 전승되어 온 것처럼 시나이반도에 있는 무사산이 시내산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미디안 땅에 왔다가 다시 홍해를 건너오든지
아니면 아카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억지 가설을 만들어야 한다.

2.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시나이반도의 모양은 역삼각형으로 반도 북쪽으로는 지중해이며
서쪽 윗부분은 수에즈만과 수에즈 운하, 그리고 아프리카를 연결하고
동쪽 윗부분은 아카바만을 사이에 두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를 연결한다.
시나이반도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시나이반도는 6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이나 점령을 한번도 당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석유 수입 경로를 차단한 이집트를 1967년 침공해서 6일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이후 1982년 4월까지 15년 동안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를 다스렸다.
하지만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이 땅은 다시 이집트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그 15년 동안 시나이반도에서 여러 가지 지질조사와 군사 훈련을 펼쳤으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는 조상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바둑판쪼개듯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더욱이 그들은 무사산을 시내산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에 이른다 (The Jewish Encyclopedia) vol.14.
만약에 시나이반도의 무사산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의 흔적을 발견했더라면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나이반도를 절대로 이집트에게 돌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3.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반도를 지나기 3천여 년 전부터 '신=시나'라 불렸다.
시나이의 어원은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디아 말 '신(sin)'에서 유래되었는데, 
지금으로 부터 약 5,000년(기원전 3000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달신을 섬긴 데서 전승되어 온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의 성경 고고학자 알프레드 하워드(Allied J. Howonh)의 저서 (고고학과 구약성경 Archaeology and the Old Testment)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의 주신은 아누(Anu)'이고, 차등에 해당하는 '달신'은 아브라함 당시에 '우르' 지역 에서 '신(sin)'이라고 했다.
그 이전에는 '난나(Nana)'라 하여 어둠, 달, 음력을 주관하는 신이었다.
이 달신인 '신'은 아라비아 전 지역과 시나이반도로 급속히 전파되어 갔다.
'마루둑'은 태양과 마술의 신으로 추앙받다가 메소포타미아의 주신으로 등극한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시나이반도를 지나기 3,000여 년 전부터 시나이반도는 '신(=시나)'라 불렸다.

4.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은 기원후 527년 순례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조 된 성지일 뿐이다.
로마가 그리스도인을 살육하는 등 박해가 심해지자,
황제 클레오티안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직업을 박탈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자굴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게 되자
주로 이집트 주위의 예수 믿는 자들은 그 박해를 피해 뿔이 흩어 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으로 피했다.
2세기 초부터 일부 그리스도인과 은둔자와 수도승들이 숨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두인과 이교도의 습격이 예상되자
이들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
헬레나는 아들을 통해 지원군을 보내어 이 수도사들을 보호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의 박해를 중지시키고 기독교의 신앙을 공인했다.
지하에서 숨죽이며 신앙 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얻자 성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강림하시고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신 성스러운 산인 시내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성경고고학의 대가였던 요세푸스는 성경 말씀에 근거(출애굽기 2:15-16, 3:1,4:19,18:1 민수기 10:29. 22:4, 7 25:6)해서
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에 시내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로마교황청은 시내산을 순례하고자하는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못이겨
기원 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무사산의 북서쪽 언덕배기에 캐더린 성당을 세운다(Thea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거기를 성지로 정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시내산으로 명명하여 공포해 버린 것이다.
순례객들의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급조된 조치였다.
그때 이후로 줄곧 역사가 왜곡되어 온 것이다.
주후 5세기 이전에는 그 어느 기록에도 거기를
시내산이라 부르거나 기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5. 출애굽해서 십계명을 받기까지 11개월 5일 동안 애굽 땅에 있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밤에 출애급해서 홍해를 건너고 엘림과 신광야를 지나 시내 광야에 들어와서 
십계명 받고 떠날 때까지의 기간은 정확히 11개월 5일이다. 
애굽 군사들이 뒤쫓아오는 상황에서 11개월 5일 동안을 애굽 땅에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6. 애굽 왕자로서 애굽 땅을 잘 아는 모세가 애굽 군인들이 많은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갔을리는 없다.
모세는 애굽 왕자로서 40년을 살았다. 
그래서 애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시나이 반도의 무사산에는 지금도 구리와 터키석을 비롯한 광산이 있다. 
예로부터 광산이 있는 곳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애굽 군인들의 추적을 따돌려야 하는 모세가
일부러 무사산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갔을리는 없다.

7. 시나이반도는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가 48km나 떨어져 있어 성경과 다르다.
르비딤에 당도한 후 마실 물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 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렙산 반석을 치라고 하셨다(출애굽기 176).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르비딤과 호렙산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나이반도의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는 48km나 떨어져 있어서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8. 시나이반도의 무사산 앞에는 250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앉을 만한 광야가 없다.
하나님이 성산에 임재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며 떨었다(출애굽기 19:16~20).
그렇다면 성산 앞에는 250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들어앉을 수 있는 광야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나이반도의 성산 앞은 온통 협곡들로 가득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만명조차 들어가 앉을 광야는 없다.

9. 기존의 출애굽경로에 의하면 홍해를 건널 필요가 없다.
고센에서 무사산까지는 육로로 올 수 있는 길이다. 
홍해를 건널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홍해를 건넌 사건이 거짓이란말인가.


 

 

진짜 시내산이 미디안 광야에 있는 8가지 이유  

1.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땅은 예로부터 미디안 땅이라고 불려왔다. 
미디안 땅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미디안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고지도에도 명시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음미 족속이며"(창세기 25:1~3)
즉 미디안은 아브라함 후처인 그두라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미디안 형제 가운데 한 명인 욕산이 드단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에 알 올라라는 고대 도시가 드단이다.
알 올라에 있는 박물관과 그 지역에서 발행하는 잡지에는 알 올라의 옛 이름이 드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는 지금도 수천 년 전의 나바테아인의 유적이 수도 없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나바테아인은 아브라함이 애굽 여인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의 장자 이름이고 한국어 성경에 '느바웃'이라 표기되어 있다(25:13)  

2. 하나님은 구약 시대부터 이미 아라비아와 미디안에 관해서는 명명백백 하게 구분해 말씀하신다.
구약 성경이든 신약 성경이든 오래 전부터 이미 아라비아나 미디안, 

그리고 애굽을 분명하게 표기하고 있다(아라비아 : 열왕기상 10:15, 미디안 : 창세기 25:2, 출애굽기 2:15)  

3. 애굽 왕자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간 곳이 성경에 시나이가 아닌, 미디안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모세가 도망간 곳이 시나이가 아닌 미디안이라고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세가 도망하여 40년 동안 미디안 땅에서 살았다는 구절은 있어도

 시나이반도에서 살았다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출애굽기 2:11, 3:1-12)  

4.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가 살고 있는 미디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애굽기 3:12)
미디안 땅은 아라비아에 있는 것이 확실하며 시나이반도에 있을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시나이가 한 번도 아라비아에 포함됐거나 미디안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이 말씀을 새겨 볼 때 시내산은 바로 미디안 땅에 있는 산인 것이다.  

5. 홍해를 건너 그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가 물을 찾아 사흘 길을 헤매다가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마시는 장면을 생각해 보라.
성경학자들은 수르광야를 시나이반도 북부 지역 블레셋 사람 땅의 길 조금 아래 지역에 위치한다고 주장한다. 
항상 우리는 말씀을 근거로 해석해야 하는데, 몇몇 단체나 학자들의 잘못된 주장은 우리를 미혹하게 하거나 혼동케 한다. 
아라비아 홍해 변에 수르라는 족장이 이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지역을 수르 광야라 하며 그는 미디안 사람이었고, 

미디안은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이었더라"(민수기 25:15)  

6.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분명히 아라비아 사람이요 미디안 땅에 산다고 했지, 시나이에 산다고 한 적이 없다.
이드로의 집터는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에 바드라고 불리는 곳에 있다. 
그런데 이스트 테네시 주립대학 도서실에서 놀랄만한 지도가 발견되었다. 
바로 바드 옆에 이드로(Jethro)라 표시된 지도였다.
또한 이슬람 경전에서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 라고 명시해 놓았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사본에도 바드라는 지역에 모세의 장인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바드에서 라오즈산까지는 와디 무사를 따라 3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와디 무사는 라오즈산에서 발원되어 바드 앞을 지나고 있다.  

7.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족과 전투를 벌였다고 했는데,아말렉족은 미디안 광야 인근에 살던 아라비아인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하나님이 처음 부르셨던 곳인 호렙산에 도착한 장소가 르비딤이다.
거기에서부터 아말렉 족들이 뒤처진 약한 자들과 아녀자들을 잡아 가자 아말렉과의 전투가 시작된다.
아론과 홀은 모세의 피곤한 팔을 잡아주고 여호수아가 나가서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로 이끈다.
그런데 아말렉은 어떤 민족인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에게서 아말렉을 낳았다고 하고(창세기 36:12) 

아말렉 족장은 에돔 땅에 있다(창세기 36:16)는 말씀을 보면 

이들은 분명 에서의 후손들이요 에돔 땅 인근에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에돔족들의 수도는 현재 요르단에 있는 세계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촬영 장소로도 널리 알려진 '페트라'이다.
'작은 페트라' 라고도 하는 미디안 땅의 '메다인 살레'에 에돔족들의 문화유산이 아직까지도 현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진출 방향이 애굽 땅이 아니라 아라비아 쪽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라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사사기 6:3-33).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에브라임 온 산자를 두루 행하고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쳤다(사사기 7:24)는 말씀을 보면

아말렉 사람들은 미디안 위쪽 북쪽 지역의 에브라임 지경(사사기 12:15)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아말렉은 아라비아인이요 미디안 광야 인근에서 살던 부족인데 

이들이 어떻게 또 그 막강한 애급 군사들이 진치고 있는 시나이반도에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움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스마엘 후손들이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앞 수르까지 이르러 살았고 (창세기 25:18),
에덴 동산에서 흐르는 비손강이 하윌라땅을 둘렀고(창세기 2:11)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급 앞 술까지 이르러 아말렉을 쳤다(사무엘상 15:7)는 기록을 보면 아말렉은 아라비아 북부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사도 바울은 시내산의 위치를 아라비아에 있는 산으로 정확하게 기록했다(갈라디아서 4:25)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사도행전 7:29)
분명히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명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내산이 미디안에 있다는 성경의 증거

 

1. 출애굽기 2:15.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2. 출애굽기 3-1.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3. 출애굽기 3:12.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4. 출애굽기 4:18.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5. 출애굽기 4: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6. 갈라디아서 4:25.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은 지금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오는 것들을 그대로 믿으려는 성경학자들과 로마교황청의 일방적인 말을 무작정 따르려는 학자들의 주장은 오히려 평범하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떤 학설이라도 하나님 말씀이 아닌 이론에 바탕을 두어서는 안 된다.

자기의 이론을 따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여 그것을 사실인 양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섭리하에 있지 않는 이론이나 학설은 마땅히 배제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은 아무리 분명한 것 같더라도 믿거나 따르지 말아야 한다


출처 : 떨기나무(저자 :김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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