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 둘째 주일 : 나의 뜻, 주님의 뜻

w.j.lee 2024. 2. 14. 11:49

나의 뜻, 주님의 뜻

둘째 주일 2월 25일 일

마가복음 8:31-38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의 첫 수난 예고로 인해 제자들은 분분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꿈꾸던 하나님 나라를 예수께서 어떻게 실현하실지 기대하며, 많은 것을 포기하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죽임을 당할 것이 라니요?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담대하게 결단했던 삶과 신앙 전체가 부정당할 것 같은 위기감이 몰려옵니다.

제자들을 대변하는 베드로의 반박이 이해됩니다.

얼마나 당황하고 절박했으면 예수님을 움켜잡고 무슨 말씀이냐며 대듭니다.

그럴 수는 없다고 펄쩍 뜁니다.

이 순간, 베드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른 길이 있지 않겠느냐고 선생님을 설득하는 중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며 꾸짖습니다. 

네가 지금 하는 일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의 생각일 뿐이라며
"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라고 일러주십니다.

 

예수를 따르는 십자가의 길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습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모든 것이 헝클어지고, 신앙은 길을 잃고 맙니다.

첫걸음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제 생각이 좋고, 제 견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고약한 방해물'이 됩니다.

이를 인정하는 거지요.

예수님도 감람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조차 '아버지의 뜻' 과는 다른 '자신의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 '내뜻'이 있지만 아버지께서 원하시니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예수님을 따랐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자기 뜻과 생각, 자기 나름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방식, 스승이신 예수님을 잘 모시는 좋은 방식을 품고 있었던 거지요.

자신의 방식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싶었는데 주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당신의 길을 예고하니 예수님의 길을 부인하려 한 것입니다.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되 자기 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이고, 수난 예고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뜯어말려야 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만 거지요.

베드로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또 한 자기 뜻을 가지고 주님을 설득하려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신의 방식이 주께 영광 돌리는 가장 좋은 길이라 주장합니다. 

주님을 따른다면서 따르는 이들끼리 다투고 자신의 방식이 성서적으로 옳고 거룩하다고 논쟁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유익과 영광, 권력, 명예를 추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자기를 내세우는 이들끼리 주님을 가운데 두고 다투겠지요. 

더 나아가 내 십자가는 무겁고 괴로운 짐인데 상대의 십자가는 가볍고 작아 보입니다. 

다른 십자가, 내가 생각하는 내게 더 어울리는 십자가를 달라고 따지겠지요. 

비교하는 '자기'가 버젓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가 죽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주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 오셔서 자아(ego)를 부인하는 길이야말로 죽음이 아니라 생명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부인의 자리에서 십자가는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구원이 이뤄지는 사랑의 통로가 됩니다.

자기 부인의 그 자리를 하나님이 차지하고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기도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어느새 주님을 제 뜻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퍼렇게 산 자아가 겸손한 듯 가장하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고약한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제가 저를 어떻게 이기고 부인하겠습니까?

당신의 지혜로 눈을 열어주시고

당신의 격려로 힘을 얻어 제가 저의 뜻을 부인하는 길을 걷게 하십시오.

아멘!


출처 : 사순절 묵상여정- 곁에 머물며(송대선, 지강유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