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 16일 : 그의 말을 들으라

w.j.lee 2024. 2. 28. 08:45


그의 말을 들으라

2024년 3월 2일. 

마가복음 9:2-8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오른 예수님은 변모되셨습니다. 

수난 예고에 이어지는 사건이자, 예루살렘을 향한 십자가의 길을 예고하는 시작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거룩하게 변화했고 율법의 수여자인 모세와 예언자의 상징인 엘리야와 대화했습니다.

이 놀라운 신비 앞에서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짓기를 제안합니다.

성서는 그가 겁에 질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고 부연해 설명합니다.

 

삶은 예측 가능한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고, 인식 범주를 넘어서는 사건을 만나기도 합니다.

삶의 경험과 신앙의 연륜을 통해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알면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삶은 그런 일들로만 채워지지 않지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건이나 문제 앞에 설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일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와 모세, 엘리야와의 대화는 베드로의 믿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베드로의 최선은 일단 초막 셋을 지어 세 분을 모시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입니다.

아쉬운 것은, 잠시 멈추고 이 현상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기보다는 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덧붙이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을 때 베드로는 이곳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 영광이 사라지지 않도록 간직하고자 하는 거지요.

주의 영광이 인한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언제든 기억되고 재현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은 한 자 리에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 다음 걸음을 내딛고 나아가게 합니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싸였던 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소명을 받았고 힘차게 다음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가 그러했고 엘리야와 다윗, 이사야가 그러했습니다.

 

하늘의 소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음성은 다음 걸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드러냅니다.

어떻게 영광을 취하고 머물까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입니다.

듣기 위해서는 침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어떤 사건을 내 뜻대로 해석하고 짐작할 것이 아니라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듣고자 기도로 귀 기울이며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하나님께서 일으키는 사건 앞에서 곰곰이 살피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거지요.

꿈에서 천사의 기이한 예고를 듣고 말없이 하나님의 구세 사업에 침묵으로 협력한 요셉처럼 말이지요.

'기다림'과 '들음'으로 믿음의 선진은 바른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도구가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매해 이 절기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십자가의 길'이 우리 신앙의 범주를 넘어서는 하 늘의 역사이며 구원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이로운 신비를 지난 기억과 경험으로 예단해서는 안 되지요.

안다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침묵하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 시간 속의 십자가 이해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새롭게 다가오는 십자가 신비를 만나야 합니다.

 

기도
예수님, 

여러 해 사순절을 지내다 보니 익히 알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말씀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이 앎이 고약한 방식으로 저를 지배하지 않도록 깨워주십시오.

주님을 알고 있다는 위험한 생각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과 걸음 안에 담긴 거룩한 뜻을 새로이 만나게 해주십시오.

아멘


출처 : 사순절 묵상여정- 곁에 머물며(송대선, 지강유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