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천로역정 2 (天路歷程 2 )

두 번째 이야기를 내놓는 지은이의 뜻

w.j.lee 2024. 8. 19. 10:37

 

 

두 번째 이야기를 내놓는 지은이의 뜻

이제 가게, 내 작은 책이여,

첫 순례자가 낮을 비쳤던 곳이면 어디든 그곳을 향하여.

문을 두드리게. 어쩌면 안에서 물을지도 모르지,  게뉘시오?

그럼 답하게. 크리스티아나Christiana가 여기 있소.

안으로 들기를 청하거든, 들어가게,

아들들을 다 데리고. 그러고는 힘닿는 대로 들려주게.

그 아이들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는지.

척 보고, 혹은 이름만 들어도 그이들 혹여나 알아채려는지.

만일 그러지 못하거든, 그이들에게 재우쳐 묻게나,

예전에 어느 크리스천을 한 순례자를 대접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랬노라 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웠노라 말하면,

그 순례자와 어떤 사이인지 알려주게.

그의 아내와 아들들이 바로 여기 있다고 말일세.

 

그이들에게 말하게,

아이들이 제 집과 고향을 떠나 순례자가 되었으며,

장차 올 세상을 좇고 있노라고.

도중에 여러 험한 일들을 만났고,

밤낮으로 온갖 고초에 시달렸노라고.
독사들을 밟아 뭉갰고 마귀들과 싸웠으며,
숱한 악들을 이겨냈노라고.

 

그래, 또한 들려주게.
뒷배를 봐주는 분,
이 순례여행을 갸륵히 여겨 그 길을 지키는 분,
굳세고 용감한 수호자가 늘 함께 계셨음을.
아울러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어떻게 세상을 거부하고 있는지 가서 말해주게.
순례길이 순례자에게 선사할 온갖 고상한 것들을 또한 일러주게.
어떻게 이들이 임금님의 은총을 입고,

그분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는지를.

 

얼마나 근사한 저택을 베풀어주셨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게. 

거친 비바람과 삼킬 듯이 밀려오는 파도를 만날지라도, 

언제나 주를 향하고 그 길을 단단히 붙잡는 이들에게는 

마침내 얼마나 담대한 평안이 임하게 되는지를.

 

아마도 그이들은 온 마음을 담아 안아줄 걸세, 그대를.
나의 맏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대와 동행들을 갈채와 성원으로 드높이며 

순례자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드러내 보이리니.

반론 1

하지만 그이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어쩌죠?

내가 진정 당신의 책이라는 걸 말예요.

<천로역정>과 순례자의 이름을 딴 가짜들이 

진짜배기랑 똑같이 보이려 안간힘을 쓰는 터에 

누군지도 모를 이들의 손으로, 집으로

스며들었으니 말입니다, 아주 음흉한 수법으로

 

답변

요즘 들어, 어떤 이들이 <천로역정>을 베끼다시피 위조해, 

제 이름과 제목을 마음대로 붙여온 건 어김없는 사실이지. 

그래, 또 다른 자들은 이름, 그리고 제목까지 제 책에 기워 붙여 그럴듯하게 꾸며내기도 한다네.

하지만 그런 책들은 그 꼴만 보아도 내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소산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지.

 

혹시라도 그런 이들을 만난다면

그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그대만의 언어로,

지금껏 아무도 쓰지 않았고, 쉬이 꾸며낼 수도 없는 말로, 

그들 앞에서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뿐.

 

그래도 여전히 미심쩍어하거든,

다시 말해 그대들이 마치 집시들처럼 너저분하게

온 나라를 어지르고 돌아다닌다고 여기든지,

보증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요리조리

착한 이들을 구슬리려 든다고 여기거든, 나를 부르라.

그대들이 순례자임을 내가 증명하리라.

오직 그대들만이<천로역정>이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반론 2
하지만 누군가에게 시시콜콜 캐묻게 될지도 모르죠,
그이의 삶과 육신이 모두 저주받기를 바라는 자들에 관해서요. 

그런 이의 집 문을 두드리고 순례에 나서길 권했다가
그자들에게 전보다 훨씬 더 큰 노여움을 사면 저는 어찌합니까?

 

답변

지레 겁먹지 말게, 내 책이여,

그런 공포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순례자의 책이 바다와 뭍을 두루 다녔으나,

가난하든 부요하든, 그 어떤 나라에서도

무시를 당하거나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구나.

프랑스와 플랑드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그곳에서조차

<천로역정>을 친구로, 형제로 존중한다는구나.

 

듣자하니, 네덜란드에서도 더러는 이렇게 평한다더라.

<천로역정>은 금보다 귀하다고 말이다.

하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 역시

<천로역정>을 잘 안다고 입을 모은다지?

제법 발전한 뉴잉글랜드에서도 마찬가지라더라.

거기선 더없이 사랑스러운 매무새로 꾸민다더구나. 

말끔하게 다듬고, 새 옷을 입히고, 보석으로 가꾸니

이목구비와 팔다리가 얼마나 잘 드러나던지. 

<천로역정>이 너무도 어여뻐 보이는 까닭에

많은 이들이 날마다 순례자를 노래하고 입에 올리는구나.

 

고향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보면, 나의 <천로역정>에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느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음을 알 걸세.

온 나라와 도시들이 순례자를 반겨 맞으리니,

내 순례자가 그저 곁에 있기만 해도,

어떤 무리든 그들에게 얼굴만 내밀어도,

그들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억누르지 못한다네.

 

용맹한 전사들도 <천로역정>을 끌어안고 사랑하여,

두꺼운 책에 담긴 이야기보다 더 존중하고 또 귀하게 여기며, 

기쁨에 차올라 한마디 건네지.

내 종달새 다리 한 짝이 솔개보다 한참 윗길이라고 말이야.

 

젊은 숙녀들과 교양 있는 여인들마저

<천로역정>에 이만저만 호의를 보이는 게 아니어서

패물상자에, 가슴에, 심장에 내 순례자를 품고 산다네. 

근사한 수수께끼를 그토록 건전한 가락에 실어 전하며

읽는 수고의 곱절이나 되는 유익을 안겨주는 까닭이지.

아무렴, 내 생각엔 장담해도 좋을 것 같구나.

어떤 이들은 <천로역정>을 금보다 훨씬 귀하게 여긴다고 말이야.

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까지

거룩한 순례자를 만나면, 고개 숙여 인사하지.

그리고 복을 빌며 말한다오.

'그대는 이 시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젊은이'라고,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저 들은 바에 기대어 흠모하며
언젠가 순례자의 동무가 되어,
이미 오래전부터 꿰고 있는 이야기를
그 입에서 직접 듣게 되길 그들은 바란다네.

 

두고 보게나. 처음에는 순례자를 좋아하지 않고, 

얼간이라고 부르던 이들마저도,

순례자를 직접 만나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순례자를 추천하게 될 테니.

 

그러므로 <천로역정>, 이 두 번째 이야기를,

그대는 겁낼 필요가 없다네.

세상에 얼굴 드러내는 걸 말이야. 아무도 그대를 해하지 못할 걸세. 

다들 앞서 간 친구가 잘되길 바랐던 이들이거든.

그 뒤를 잇는 두 번째도

나이가 젊든, 들든, 휘청거리든, 반듯하든 누구에게나 하나같이 근사하고, 풍성하며, 유익한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

 

반론 3

하지만 더러는 순례자를 일컬어 너무 크게 웃는다고들 합니다. 

또 누군가는 그이의 머리가 구름 속에 있는 것만 같다고 합니다. 

개중에는 그 말과 이야기가 너무 난해하다는 이들도 있죠. 

아무리 궁리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고요.

 

답변

여보게, 내 생각엔 누구든 순례자의 물기 어린 두 눈만 봐도, 

그이의 웃음과 울음을 짐작하고 남을 성싶네만.

본질적으로 마음은 아픈데도 어쩔 수 없이
빙그레 복잡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들이 있지.
야곱도 양떼와 함께 있는 라헬을 보자마자

입 맞추며 동시에 울지 않았나.

 

한편에선 수군댄다지? 순례자의 머리엔 구름이 가득하다고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지혜가 외투를 뒤집어쓰고 있음을,

그리고 진심으로 찾고 싶은 무언가를 잘 탐색하기 위해,

제 마음을 채찍질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줄 따름일세.

난해한 말들 뒤에 숨은 듯 보이는

실상은 경건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금언들이 품고 있는, 아주 흐릿한 가락으로 들려주는 사실에

더욱 몰두하게 만드는 법이라네.

또한 난 알고 있지. 모호한 비유가 도리어 호기심 어린 상상에 

더 깊이 파고들뿐더러 마음과 머리에 단단히 달라붙는다네. 

직유가 불러일으키는 것들보다 훨씬 더 강하게 말일세.

 

그러니, 내 책이여, 조심하게,

그 어떤 좌절도 그대의 여행을 휘두르지 못하게

보게나, 그대는 적이 아니라 친구에게 보내지는 것일세.

그대와 그대의 순례자들을, 그대의 이야기를 품어줄 벗들에게.

 

더 나아가, 첫 번째 책이 숨겨두고 떠난 것들까지,

그대, 이 멋진 <천로역정> 두 번째 이야기가 드러내리니,

크리스천이 길을 나서며 잠가둔 것들을 사랑스런 크리스티아나가 제 열쇠로 열어젖히리라.

 

반론 4

그런데 어떤 이들은 첫 번째 책의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찮은 모험담쯤으로 치부하고 가볍게 치워버리죠.

그런 이들을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이들이 이 이야기를 무시하듯 나도 똑같이 무시해버릴까요?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만일 그런 이들을 만나거든, 그대 크리스티아나는, 

부디 온갖 애정 담은 지혜를 동원해 그이들을 맞이하게나.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게.

그이들이 인상을 쓰더라도 부디 미소로 그들을 대해주게. 

성품이 원래 그러하거나, 무언가 나쁜 소문을 들은 탓에 

그대를 멸시하거나 함부로 쏘아붙이는 것이려니 여기시게.

어떤 이들은 생선을 싫어하고,

또 어떤 이들은 치즈를 좋아하지 않으며,

누군가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제 집과 가정마저 멀리하며,

한편에선 돼지라면 진저리를 치는데

다른 이들은 닭고기를 외면하고,

개중에는 가금류는 마다하면서

뻐꾸기나 올빼미 고기는 좋아한다오.

그러니, 크리스티아나여,

그런 일들일랑은 저마다의 선택에 맡기고,

그대를 보고 크게 기뻐할 법한 이들을 찾아가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다투지 말고 더없이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그대가 지닌 순례자의 면모를 그이들에게 보여주오.

 

그럼 내 작은 책이여, 가게나.

반갑게 맞이하며 그대를 대접하는 이들에게 가서 보여주게. 

다른 이들에게는 단단히 빗장을 채우고 보이지 않을 것들을 

그대가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들은

그이들에게 영원한 축복이 되며, 순례자의 길을 택하게 만들 걸세.

그대나 나를 뛰어넘어 훨씬 훌륭한 순례자가 될 길 말일세.

자, 가시게 많은 이들에게 그대가 누구인지 말하게.

나는 크리스티아나라고 이야기하게.

이제 네 아들들과 더불어 그대가 할 일은,

순례자가 된다는 게 무얼 뜻하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일러주게.

 

또한 가서 들려주게.

지금 그대와 함께 동행하는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하나씩 알려주게. 

그이들에게 말하게.

여기 곁에 선 양반은 '자비Mercy' 님으로,

함께 여정에 나선 지 아주 오래됐다오.

다들 와서 이 여인의 순결한 낯빛을 보고

게으름뱅이와 순례자를 가려내는 법을 배우시오.

젊은 아가씨들을 그에게 맡겨서

다가올 세상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기필코 익히게 하시오. 

어린 아기씨들이 사뿐사뿐 하나님을 뒤따라가는 날, 

낡고 썩은 죄인들을 그분의 회초리에 맡겨두고 따르는 그날, 

그때는 마치 헐고 묵은 무리들이 비웃고 조롱해도 

젊은이들은 '호산나!' 외쳐 불렀던 그 시절과 같을게요.

 

다음에는 나이 많은 '정직Honest'의 이야기를 전해주게.

흰머리 날리며 순례자의 땅을 걷던 그 노인네 말일세.

그래, 말해주게, 그이가 얼마나 솔직한지,

선하신 주님을 좇아 그이가 어떻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지.

어쩌면 머리 허연 늙은이들에게는 그게 먹혀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죄를 애통히 여기게 할 수도 있을 터.

 

'불안Master Fearing' 씨가 어떻게 순례길에 들어섰고,

두려움에 울부짖으며

그 길고 긴 외로운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그이들에게 들려주게.

아울러 끝내 기쁨을 상급으로 받게 되었던 일도 알려주게.

심령은 허약했을지언정 심성은 착했던 그이

그렇게 선했기에 생명을 물려받았지.

 

'심약Master Feeble-mind' 씨의 이야기도 들려주게.

비록 앞장서지는 못했음에도 꾸준히 따라가는 이분을 말일세. 

또한 그이가 어떻게 죽을 지경이 됐었고

어떻게 '담대 Great-Heart' 님을 만나 목숨을 건졌는지도 말해주게. 

은혜를 끼치는 일에는 조금 약했지만

그래도 진심을 품은 친구였네.

누구든 그 얼굴에서 참다운 경건을 읽어낼 수 있을 걸세.

 

'주저Master Ready-to-Halt' 씨에 대해서도 그리하게.

목발에 의지해야 했지만 용케도 넘어지는 법이 없던 사내,

'심약'과 그이가 어떻게 서로 좋아하게 되었는지

서로의 생각이 대부분 척척 맞아떨어졌던 것들을,

더불어 낱낱이 알려주게 승산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쪽이 노래를 하면 다른 한편은 그에 맞춰 춤을 추었노라고.

 

아주 어린 나이인데도 용기가 대단했던 젊은이,

'진리용사 Master Valiant-for-the-Truth' 님도 잊어선 안 되지. 

모두에게 알려주게, 그 영혼이 더없이 굳셌기에 

아무도 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네.

아울러 들려주게. 이 청년이 차마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어떻게

'아랑'과 함께 의심의 성을 무너뜨리고 '절망'을 처단했는지도.

 

'의기소침Master Despondency' 씨와

그이의 딸 '겁보 Much-afraid' 양도 빠트려선 안 되지.

비록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여기기에 (어떤 이들에게는)

정말 그래 보이는 행색을 했을지라도 말일세.

이들은 조심스러웠지만 흔들림이 없었지.

그리고 끝내 순례자들의 주님이 곧 제 친구임을 깨달았으니.

이 모든 일들을 세상에 들려주었으면,

내 책이여, 이제 돌아서서 이 현악기들을 연주하게. 

살짝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절름발이들도 거인들도 

몸을 흔들게 할 가락이 절로 흘러나올 걸세.

 

그대 가슴속에 쌓인 수수께끼들을

마음껏 끄집어내서 낱낱이 풀어내게

나머지 알쏭달쏭한 문장들은 그냥 남겨두어 

기발한 상상력을 지닌 친구들이 풀어내게 하세

 

이제, 바라건대 이 보잘것없는 글과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이 작은 책이 은총이 되기를. 

그리고 이 책을 사드는 이들에게

돈을 잃거나 내버렸다고 여길 빌미를 주지 않기를.

뿐만 아니라 이 <천로역정> 두 번째 이야기가

선한 순례자들이 저마다 품은 생각에 딱 들어맞는 결실이 되기를,

아울러 방황하는 이들을 다만 얼마라도 타이르게 되기를,

그리하여 그 걸음과 마음을 바른 길로 되돌리기를.

 

이것이 글쓴이 존버니언이

마음을 다해 드리는 기도이니.


천로역정 두번째 이야기(존 버니언 지음, 포이에마 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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