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고백의 언어들

1-6. 나는 누구인가

w.j.lee 2024. 10. 8. 15:36

 

나는 누구인가

 

여러분도 잘 아는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합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그 논문을 보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 칼 바르트가 "신학적 기적"이라 평했다고 합니다.

대가가 천재를 알아본 것이지요.

20대 초반에 쓴 신학 논문을 신학적 기적이라고 할 정도면 그가 얼마나 탁월한 사유를 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회퍼의 생애를 들 여다보면 저는 조금 열등감이 느껴져서 질투어린 말을 하게 됩니 다.

'이런 집안에서 이런 사람이 나오는구나.'

그의 친가와 외가 모두 학문하는 집안입니다.

그는 독일 사람의 인문적, 음악적, 미술적 교양을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충분히 쌓았습니다.

시대만 잘 타고났더라면 그는 정말 세계 신학계에 더 큰 기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회퍼는 학문을 숭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1932년 나치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본회퍼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스스로를 '총통'이라고 칭합니다.

지도자나 영도자라는 뜻이 있지만, 그는 내심 자신을 신적 존재로 내세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본회퍼는 히틀러가 '유사-주'pseudo-lord로 떠받들려지고 있음 을 간파합니다.

대부분의 독일 교회가 총통을 지지하는 쪽으로 동원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히틀러의 정책에 반대하던 목회자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들은 사람들의 숨통을 죄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독일의 신자들이 종교세를 내는 것을 아십니까?

국가는 그것을 가지고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지급합니다.

히틀러 체제에 동조하는 제국교회는 나치에 협력하기를 거부하는 목회자들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다가오자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소신을 버리고 잠재적 동조자가 됩니다.

양심이 어떠하든지 간에 살기 위해서 비루해진 셈입니다.

 

본회퍼를 비롯한 의식 있는 신학자들은 그 시대가 위기의 상황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여 "지금 우리는 고백의 상황 속에 있다.  우리의 주님이 누구인지 분명한 고백을 해야 한다"는 공동 인식에 이르게 됩니다.

1934년에 일단의 신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종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계시 "임을 천명하는 바르멘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국교회에 맞서 세워진 고백교회의 시작입니다.

고백교회에는 칼 바르트, 마르틴 니 만리, 디트리히 본회퍼 등이 포함됩니다.


고백교회에 속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이자 신앙적 모험이었습니다.

본회퍼의 재능을 아끼던 사람들은 그를 미국 뉴욕으로 불러 교수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양심의 명령에 따라 위기에 처한 고국으로 돌아 갑니다.

이후 그는 히틀러 암살 작전에 가담하게 되고,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암살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가담자들이 모두 붙잡히고 니다.

본회퍼도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형당하기 직전까지도 자기가 큰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석방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기 불과 빛 달 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맙니다.

20세기 신학의 기적은 그렇게 스러졌습니다.

 

사후에 그가 감옥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썼던 편지를 엮은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옥중서신저항과 복종'이라는 책인데, 여기에는 본회퍼가 쓴 몇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쾌활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본회퍼는 타자들의 눈에 비추어진 자기 모습과 실제의 자기모습을 마주 세워 놓고 있습니다. 

제가 이 시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회자로 살아온 제 삶의 궤적과 조금은 유사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요동하고 있는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목회자들이 늘 친절하고 다정하고 활기차고 침착하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부응하는 동안 속이 다 뭉그러지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목회자들도 감정 노동자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감옥에서 본회퍼는 비로소 성찰적 거리를 가지고 자기 실존을 돌아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노출합니다.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따스한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

 

많은 목회자들이 이 대목에서 자기 모습을 볼 것입니다.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온 스스로의 모습에 기막혀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본회퍼의 자기반성은 통렬하게 이어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고독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흔들리고 있지만 그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확신은 "나는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부정을 통한 강력한 긍정입니다.

두려워 떠는 것도, 당당하고 의연한 것도 다 내 모습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네 참 모습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페르소나'persona는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이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 '인격'을 뜻하는 '퍼스널리티'personality 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극을 할 때 배우들이 가면을 썼습니다.

가면의 캐릭터가 되어 연기를 했다는 말입니다.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다 보면 내가 타자에게 보여주 려고 하는 나의 가면이 때때로 나의 성격적 특질이 되기도 합니다.
11사에게 보여주려 하거나 드러난 나의 모습이 위선적이라고 단정 인 민요는 없습니다. 물론 타자들이 알고 있는 내 모습과 내가 아는 내 모습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두 가지가 다 나의 인격을 구성합 니다.
평상시에는 모르지만 위기의 순간이 되면 내 속에 무엇이 있 :사에 따라서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과거에 통일부총리를 지내고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한완상 박사가 자기 삶의 경험을 들려 ※ 적이 있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진보적 인 지식인이었던 그는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남산 중앙정보부 조사 신로 끌려갔습니다. 한 박사는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 덕분이었는지 산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당하기는 했지만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다른 방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 가운데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종종 끌려 나가서 끔찍한 고문 을 당하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로서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여 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목사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 시고, 어떤 날은 교도관에게 몸을 의지한 채 발을 질질 끌며 돌아오 기도 했습니다. 마치 깊은 물속에 잠겨들어 가는 것 같은 암담한 상 황이었습니다. 그때 한 박사에게 신약성경이 한권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에게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성경도 없이 목사가 시련 을 이겨낼 수 있겠나?' 그래서 교도관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성경 을 저 목사님에게 전달해 주시오.” 그러자 그가 난처해하며 대답했 습니다. "위에서 지시가 없으면 그럴 수 없습니다." 며칠 후 한 박사 가 그 윗사람을 대면한 자리에서 성경을 목사에게 전달해도 되겠냐 고 물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돌아가서 교도 관에게 "내가 윗사람에게 얘기했다"고 말합니다. 거짓말은 아니지



출처 : 고백의 언어들(저자 '김기석', 출판 '복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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