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과학과 신학의 대화

Q29 기독교의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w.j.lee 2025. 1. 25. 01:03

 

기독교의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진화 과학은 많은 종교는 물론 무신론과도 일치합니다.

과학만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미세조정' 같은 몇몇 과학적 증거는 창조주를 가리키지만, 이것이 기독교를 다른 종교에 비해 더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대략적으로 양립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비합리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은 역사, 철학 및 다른 이들의 간증에서 비롯된 다양한 비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궁극적으로 성령은 각 사람의 삶에서 예수님과의 관계 안으로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일치

 

기독교 교리는 우리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대략적으로 양립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우리에게 빅뱅 이론을 상기시키는 방법으로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빅뱅 이론이 창세기 기자  가졌던 세계관의 일부는 분명히 아니었을 것입니다.

 

과학은 우리에게 전능하심, 사랑하심 및 완전하심과 같은 기독교 하나님의 특징 중 많은 것들을 반영하는 우주를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완전하심은 자연 법칙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이 성장하도록 정교하게 조정되고 있습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우주의 이러한 특징은 놀라운 것이며, 더 자세한 설명을 보장합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생명에 상웅하는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기독교의 내러티브에 비추어 볼 때, 우주의 미세조정은 말이 됩니다.

 

또한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창 1:26-27).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의미 있는 관계에 참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존재와 일치합니다.

급진적 이타주의는 진화론적 설명에는 도전이 되지만, 기독교에는 아주 잘 어울립니다.

예를 들어, 왜 콜카타의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그녀의 인생을 보냈을까요?

왜 군인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생명을 희생할까요?

이러한 예들은 자신의 창조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하나님의 이야기와 우리가 지니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들어맞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말을 생각해 봅시다.

"세상의 영원한 미스터리는 세상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적인 발견을 하고 그것을 시험할 수 있는 지능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전능하신 하나 님이 우리를 그분의 형상에 따라 만드셨기에 우리가 우리 주변 세상에 대해 과학적 감각을 가질 수 있고 열망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현실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은 우리가 자연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며, 그리스도인이 제공해야 하는 더 큰 그림과 일치하는 미세조정 같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의문을 품거나 이상하게 여길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유일신 전통의 근본적인 주제 중 다수가 공유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선과 정의는 많은 신앙에서 가치를 지닙니다. 

기독교와 다른 신앙 사이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예수 그리스도 삶의 목적과 의미, 그 분의 부활에 대한 진리입니다. 

진화 과학과 예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기독교 삼위일체 같은 핵심 교리가 충돌할 일은 없습니다.

 

합리성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비합리 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은 역사, 철학 및 다른 사람 들의 간증에서 비롯된 다양한 비과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궁극적으로 성령은 각 사람의 삶에서 예수님과의 관계 안으로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출처 : 과학과 신학의 대화(우종학 지음, 정모세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