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그저 맑은 봄날의 낮,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도 마음은 비 오는 가을 밤인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바로 어제가 그랬습니다.
아주 오래 전 조선닷컴에서 ‘기자카페’를 운영하던 시절 독자 몇 분이 이 한시 한 수를 올려놓고 서로 해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812~858)의 ‘야우기북(夜雨寄北)’입니다.
夜雨寄北(야우기북)
밤비 내릴 적에 북쪽으로 보내노라
[기북(寄北), 즉 북쪽으로 부친다는 뜻입니다.]
君問歸期未有期(군문귀기미유기)
그대 ‘언제 돌아오시나요’ 물었지만 기약이 없네요
[만약 ‘문군(問君)’이라 돼 있었다면 ‘그대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라는 뜻이 되겠지만 ‘군문(君問)’입니다.
즉 물어보는 사람의 주체는 화자가 아닌 군(君)이라는 말이겠지요.
군(君)이란 우리말의 ‘님’으로 번역해도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님’이란 반드시 여인인 화자가 남편을 호칭하는 것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즉 남자가 자신의 아내나 연인을 부르는 말로도 볼 수 있습니다.
작자가 아무래도 남자이고, 시적 설정이 비교적 구체적인 것을 고려하면, 남자인 시인 자신이 북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를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巴山夜雨漲秋池(파산야우창추지)
파산에 내리는 밤비는 가을 못을 가득 채우는데
[파(巴)란 사천성 동쪽 지역을 말합니다.
그래서 파촉(巴蜀)이란 말도 있죠.
파산(巴山)이란 구체적으로는 이 지역에 이어진 산맥을 말합니다만, 여기선 그저 사천성, 좀더 시적으로 말하자면 정감의 거리가 상당한,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창(漲)’이란 가득 찬다는 말입니다.]
何當共剪西창(片+悤)燭(하당공전서창촉)
언제쯤이면 둘이서 서촉 창가 등불심지 자르며
[위에 쓴 ‘창’이라는 글자는 ‘窓’과 같은 뜻입니다.
서창이란 부부의 침실을 지칭하는 말이랍니다.
‘하당(何當)’은 ‘언제를 당하여’란 말이므로 ‘하시(何時)’로 바꾸어 생각해도 의미상의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각(谷+卯의 오른쪽)話巴山夜雨時(각화파산야우시)
파산에서 밤비 내리던 때를 돌이켜 이야기할 수 있을는지...
[‘각’이란 ‘시간적으로 과거의 일을 생각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뒤의 ‘파산야우시’ 다섯 글자가 목적어가 되고, ‘각’은 부사, ‘화(話)’는 동사입니다.
윗줄 처음의 ‘하(何)’라는 글자가 여기까지 걸려 의문문을 만들어 줍니다.
화자는 옛적 정들었던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는 아주 멀리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서울 장안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 구름으로 덮인 산중.
그녀는 편지를 보내옵니다.
“언제쯤 돌아오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모릅니다.
나도, 그녀도 알 수 없습니다.
운우지정(雲雨之情), 그건 그저 꿈속의 일인 듯 합니다.
여기서, 도대체 어딘지 가늠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서 편지를 보낸 옛 정인(情人)은, 이제 날이 밝으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지나간 시절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노력한 만큼 성취하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꿈을 이룰 수 있던 시절,
최소한의 정의(正義)가 근근하게나마 작동되던 시절,
권선징악과 신상필벌의 원칙이 뼈대만이라도 남아있던 시절,
꼭 미덥지만은 않은 형량이더라도 악인이 어느 정도의 벌은 받던 시절,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던 이 시절은 이제 오늘로서 수명을 다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또 여전히 발을 딛고 숨을 쉬어야 할 그 다음 지극히 불의(不義)한 세상 역시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거칠고 뻔뻔스런 역사의 수레바퀴에 결코 짓눌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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