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루어졌다
찬 송 : 96장 - 예수님은 누구신가
성 경 : 누가복음 4:16~21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눅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 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요 절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오늘 내 삶의 현장에게 이루어지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하나님, 간구하오니 가난한 자들이 천국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고, 묶인 자들이 진리로 자유하게 되며, 눈 먼 자들이 돌이켜 다시 보게 되는 복음의 은혜가 오늘 우리 삶의 한 가운데서 성취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명성 목사 ㅣ 팔미교회
(눅 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눅 4: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눅 4: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요 절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의 사역이 갈릴리에서 시작되었고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은, 공관 복음서들이 일관성 있게 말하는 바입니다. 특별히 누가는, 안식일에 예수께서 나사렛의 한 회당에서 성서(이사야의 두루마리)를 읽으셨다는 것을 갈릴리 사역의 첫 머리에 둡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아, 그리스도)임을 선언하십니다.(18) 뒤이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무슨일을 하실 것인지 밝힙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해방을 선포하고", "눈 뜸을 선포하고", "풀어주고(풀려남을 선포하고)", "은혜를 선포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예수의 일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선포란 이미 확정되어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앞으로(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고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선포하는 순간,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효력을 지니고 발생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선포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오늘'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21). 오늘이란,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의 '오늘'입니다. 말씀을 듣는(따르는) 사람에게, 그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소식이 기쁨이 되는 것이나, 묶임에 해방되는 것이나, 못보는 눈을 뜨는 것이나, 갇힘에서 풀려나는 것 모두 오늘 지금 여기에서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복음, 해방, 눈 뜸, 자유 등은 추상적이지 않고 인간의 구체적 현장과 연결됩니다. 가난, 포로 됨, 눈 멈, 억눌림이 존재하는 현장는 복음이 직접적으로 활동하는 무대입니다. 흔히 '영적 구원'이라는 말로 삶의 현장을 모호하게 얼버무린다면, 이는 복음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억압과 모순을 바꾸고 변화시킬수 있어야 복음이고 구원입니다. 영적이라는 말은, 이 세상의 고통과 신음을 외면하기 위한 변명의 구실이 아니라 그 현장 속으로 구려움 없이 뛰어드는 내적인 힘을 일컫는 말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의 요구에 따라, 오늘 변화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선포되는 복음의 사건이 오늘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 교회입니다.
복음은 곧 아침이 오리라는 소식이 아니라 이미 아침이 왔으니 두려움 없이 살아가라는 선언입니다. 아침인 것처럼 살면, 이미 아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오늘이 그날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날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아, 그리스도)임을 선언하십니다.(18) 뒤이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무슨일을 하실 것인지 밝힙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해방을 선포하고", "눈 뜸을 선포하고", "풀어주고(풀려남을 선포하고)", "은혜를 선포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예수의 일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선포란 이미 확정되어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앞으로(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고가 아니라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선포하는 순간,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효력을 지니고 발생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선포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오늘'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21). 오늘이란,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의 '오늘'입니다. 말씀을 듣는(따르는) 사람에게, 그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소식이 기쁨이 되는 것이나, 묶임에 해방되는 것이나, 못보는 눈을 뜨는 것이나, 갇힘에서 풀려나는 것 모두 오늘 지금 여기에서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복음, 해방, 눈 뜸, 자유 등은 추상적이지 않고 인간의 구체적 현장과 연결됩니다. 가난, 포로 됨, 눈 멈, 억눌림이 존재하는 현장는 복음이 직접적으로 활동하는 무대입니다. 흔히 '영적 구원'이라는 말로 삶의 현장을 모호하게 얼버무린다면, 이는 복음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억압과 모순을 바꾸고 변화시킬수 있어야 복음이고 구원입니다. 영적이라는 말은, 이 세상의 고통과 신음을 외면하기 위한 변명의 구실이 아니라 그 현장 속으로 구려움 없이 뛰어드는 내적인 힘을 일컫는 말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의 요구에 따라, 오늘 변화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선포되는 복음의 사건이 오늘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 교회입니다.
복음은 곧 아침이 오리라는 소식이 아니라 이미 아침이 왔으니 두려움 없이 살아가라는 선언입니다. 아침인 것처럼 살면, 이미 아침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오늘이 그날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날입니다.
오늘 내 삶의 현장에게 이루어지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하나님, 간구하오니 가난한 자들이 천국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리고, 묶인 자들이 진리로 자유하게 되며, 눈 먼 자들이 돌이켜 다시 보게 되는 복음의 은혜가 오늘 우리 삶의 한 가운데서 성취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명성 목사 ㅣ 팔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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