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오늘의 말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있습니다

w.j.lee 2018. 9. 8. 13:45
2018. 9. 8. 토요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있습니다


찬  송: 262장 - 날 구원하신 예수님



성  경: 요한1서 3:14~16
(요일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갈5:21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  절 :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언젠가 을지로 지하보도를 걷다가 앞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외었습니다.

여고 동창들의 소식을 전하던 한 사람이 "개는 첫 사랑하고 결혼했잖니."하고 말했습니다. 듣고 있던 친구들은 "그래? 너무 근사하다."며 부러운 듯 반응했습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근데 지금은 서로 원수처럼 지낸다더라."

첫사랑과 결혼해도 원수가 되고, 열열한 연애를 하다 결혼해도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사랑했느냐는 듯 싸늘해 지는 게 일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행동 뒤에는 이기적인 동기와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고, 이타적인 사랑을 못하거나 한다해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매우 높은 차원의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옮겨갔고, 사랑하지 않느 사람은 죽음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자와 같으며 그에게는 영생이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으로 인해 사랑을 알게 되었으니, 그처럼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목숨 버리는 것을 고려해 보라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아예 단정적으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성육신(成肉身)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사건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인도하시던 하나님은 눈에 보이며 손으로 만저지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참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행해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기 보다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지금 우리의 영혼을 타고 흐르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서 지금 사랑하는 자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의 사랑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기심과 욕심 뒤에 감춘, 언젠가는 바닥이 드러나는 사랑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온전한 사랑의 능력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 능력을 사용하는 오늘이 되기 바랍니다.




어떠한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사랑을 보이고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
우리의 사랑이 일상 속에서 자주 드러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의 신앙이 인간관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내 안에 있는 사랑을
행동으로 보이며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채재관 목사 •  반석교회



출처 : 2018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