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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의 탄식, 태어남을 저주함
2021년 10월 5일 화요일
오늘의 말씀 (욥기 3:1~10)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오늘의 말씀요약
욥이 자기 생일을 저주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날이 멸망했더라면,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셨더라면,
흑암에 덮였더라면, 날수와 달수에 들지 않고 동이 트지 않는 저주를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토로합니다.
모태의 문을 닫지 않아 자기 눈으로 환난을 보게 했다며 한탄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입을 열어 탄식하는 욥 (3:1~2)
욥의 탄식 속에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 후에’(1절)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많은 것의 변화를 시사합니다.
욥이 ‘입을 열었다’는 것은(1~2절) ‘침묵하는 자’에서 ‘말하는 자’로,
‘인내하는 자’(1~2장)에서 ‘탄식하는 자’로 바뀐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연약한 인간이 보여 주는 신앙의 두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합니다. ‘생일’로 번역된 히브리어 ‘욤’은 ‘인간의 생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7:1; 10:5; 14:1, 5~6; 21:13). 여기서는 욥의 전 존재, 곧 그가 지금까지 겪은 행복한 날들과 고통스러운 날들, 그리고 그의 비참한 운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 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 고통 가운데서 나는 ‘침묵하는 자’인가요, ‘말하는 자’인가요?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욥 (3:3~10)
욥은 고난의 현실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자신이 존재하게 된 ‘태어난 날’과 ‘잉태된 밤’을 저주합니다.
욥의 진술에서 중요한 것은 ‘창조 모티브’입니다.
“그날이 캄캄하였더라면”(4절, 직역하면 “그날은 어둠이 되라”)은
“빛이 있으라”(창 1:3) 하신 하나님의 창조 명령과 반대됩니다.
욥은 자신의 상황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10 등)라고 표현된
창조 세계와 반대되기에 창조 명령을 되돌리는 발언을 합니다.
그의 말이 하나님을 겨냥한 것임은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10절)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납니다.
욥의 모태의 문을 닫지 않은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존재 이유가 되시는 분입니다.
이제 욥은 자신을 출생하게 하신 하나님으로부터 고통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합니다.
- 욥이 자신이 ‘태어난 날’과 ‘잉태된 밤’을 저주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오랜 고통 속에서 내 출생의 의미와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오늘의 기도
하루를 살아 내는 것이 너무 벅차고,
내일이 고통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날에도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하소서.
제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굳게 붙들고
오직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게 하소서.
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을 오늘도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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