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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僞善)이 몸에 밴
2022년 3월 12일(토)
말씀(마태복음 23:37-39)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요절(要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 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 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 도다 (마 23:37)
오늘 주어진 말씀은 마태복음 23장 전체를 요약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들의 위선과 거짓이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의 선한 뜻마저 비틀고 오역(誤譯)을 일삼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들은 선생으로, 아버지로, 지도자로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만이 참된 스승이요 아버지라고 일러주십니다.
남들 위에 서는 것으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몸으로 살아내는 것에 마음을 두라고 하십니다.
전자는 비교하며 남을 아래에 두고 위에 서서 하나님을 잊게되고,
후자는 말씀을 살아내는 중에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외식(外飾), 겉만 꾸미는 위선자들을 향한 책망은 신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훼방꾼이며 약한 이들을 등쳐 먹으며 말씀을 왜곡하는 자들입니다.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은 위선으로 일관된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자신의 불선(不善)을 고백하면 용서의 기회가 주어지련만
선으로 가장해 하나님을 거역하며 백성을 속입니다.
위선(爲善)이 위태한 것은 점차 익숙해지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기억조차 못합니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이라도 있었지만 익숙해지면 그마저 없어지지요.
그러니 거짓의 가면을 쓴 것은 잊고 혹여 누가 잘못을 지적하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누가 나를 정죄하겠느냐며 큰소리치게 됩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거짓을 꾸미다가 거짓의 길에익숙해지고는 거짓이 삶의 방식이 되어버립니다.
오만은 그의 숨결이 됩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형편에 맞게 왜곡하고는 말씀의 바른 해석자로 자처합니다.
말씀으로 자기를 비추어 허물을 씻는 거울 삼아야 하건만
말씀을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무기로 삼아 죄인을 만듭니다.
하늘의 말씀대로 어떻게 사느냐며 땅의 편의대로 해석하고는 다 른 사람들마저 그리로 이끌어갑니다.
그러니 그들은 말씀의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밝히는 이들을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돌을 던져 묻어 과거로 삼고는 박제된 이름으로 추모합니다.
말씀은 묻어두고 그 이름만 예언자로 떠받듭니다.
혹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그렇게 받드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어쩌면 오늘 예수님이 우리 곁에 오신다면 그를 따르기보다는
바리새인처럼 돌을 던지는 자리에 서지 않을까?" 라며
자신을 돌아본 필립 얀시의 말은 우리의 새김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진리가 면면이 이어지는 것,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를 일깨우는 것은 어둠 가운데서도 낙심치 않으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이들,
거룩한 말씀의 포로가 된 종들로 인해서지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인생은 하나님을 거듭 거절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허물을 덮어두시고 사랑으로 다시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길, 사순절의 길,
위선을 내려놓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그대로 내어놓는 걸음으로 초대하십니다.
위선을 벗는 길은 우리 자신을 있는그대로 내어놓는 것입니다.
기도
주님,
당신 앞에서만은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한 제 가장 비참한 모습을 꺼내 게 해주십시오.
점점 진실과 거짓의 간격이 벌어져 저도 어쩔 수 없다면 얼마 나 불행하겠습니까?
그러니 주님 앞에서 언제나 저 자신을 내어놓는 은총을 허락해주시길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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