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默想, meditation) 11 : 믿음!

w.j.lee 2022. 3. 1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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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2022년 3월 14일(월)

말씀(로마서 4:1-12)요절(要節)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요절(要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롬 4:3)

 

 

 

이스라엘 민족에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의 후손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제국 이집트를 꺾으시고 노예 백성을 구원하신 것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신 결과였으며

여러 민족이 우거하던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신 것도 아브라함과의 약속의 이행이었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부정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 정체성만은 결코 내려놓을 수 없었고

그 자부심만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정체성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흘러 근본 정신이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기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신 깊은 뜻을 잃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그럴 만한 자격이나 공로, 행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 즉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사람이라 - 여겨주셨음을 상기시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시작된 은총의 관계를 마치 이스라엘이 당연하고 그럴 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양 여기는 것은 착각임을 일깨웁니다.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 그럴 만한 공이 있거나 자격이 있다면 의롭게 여김을 받는 것은 당연한 거지요.

러나 그런 자격과 공이 없음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여기시고 택하시고 그와 영원한 약속을 맺 으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 은총이지요.

이스라엘이 자부심으로 여기는 다윗 왕조차도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서라는

일방적 은총으로 복된 사람이 되었다고 일깨워줍니다.

 

믿음이라는 이 여정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정인지라 그 시작은 아름답습니다.

어리석은 인생이 죄의 심중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용서받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믿음을 제 공로로 착각하고,

은총으로 감당한 것을 아주 잠시 감사한 후에 제 능력인 양 여깁니다.

더 나아가 그 수고와 공로를 내세우면서 다른 이의 부족함을 힐난하는 어리석음으로 내디딥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여정은 갈수록 더 깨어 있는 여정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점점 나는 작아지고 은총의 주님이 커지십니다.

선한 것이 있다면 주님 주신 은총의 열매이며 혹여 허물이 있다면 그것만이 우리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격없는 인생임에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믿음의 사람을 표상하는 것인데

민족이나 혈통, 할례받은 행위로 자격을 갖추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여기는 것은 잘 못 끼워진 단추입니다.

 

선택받은 민족을 강조하게 되면 타민족을 이방인이라고 경멸합니다.

할례라는 표식만을 강조하면 선하고 바른 삶조차도 무할례자로 심판해 버립니다.

율법을 모르면 아무리 양심에 따라 거짓을 멀리하고 선함과 경건을 추구해도 멸망받을 자라 저주합니다.

그러니 강해지는 것은 선민이라는 자의식입니다.

믿음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은총 을 잊으면 그 착각의 끝을 알 수 없게 됩니다.

 

 

기도

은총과 감사로 시작된 이 신앙의 여정에서

저를 앞세우는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일깨워주십시오.

여기까지 온 것도

오직 죄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가리워주신

은총의 열매임을 알게 하셔서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