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默想, meditation) 13 : 신앙의 화수분

w.j.lee 2022. 3. 1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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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화수분

2022년 3월 16일(수)

말씀(시편 105:1-15)

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5.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6.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2.  그 때에 그들의 사람 수가 적어 그 땅의 나그네가 되었고
13.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떠돌아 다녔도다
14.  그러나 그는 사람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왕들을 꾸짖어
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손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들을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요절(要節)

그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가 행하 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시 105:5)

 

 

 

깊고 강렬한 내면적 체험은 겪는 이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화석처럼 굳어버리지 않지요.

때로 처음보다 더 생생하게 떠올라 새로운 깨달음과 변화를 더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박해자였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체험은

사도행전에서 세 번(행 9:1-19, 22:1-16, 26:12-18)에 걸쳐 반복되는데

그때마다 바울의 새로운 깨달음이 더해집니다.

이야기를 억지로 덧대는 것이 아니라 바울의깨달음이 더 깊어져

그 체험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전히 새 힘과 눈매를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지요.

 

이스라엘 신앙의 근본이 되는 출애굽도 그와 같습니다.

강대한 애굽에서 벗어나 광야를 경험하고 가나안에 정착한 사건은

이스라엘 신앙의 화수분이며 언제나 그들의 신앙상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착 후에도

예언자들과 사제들을 통해 광야를 기억하길 거듭 요청받았습니다.

왕국의 승리와 감격스런 사건에서도,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가던 시간에도

그들은 광야를 기억하며 조상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손길을 돌아보도록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기억은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지요.

감사의 시간에 광야는 하나님의 한없는 돌보심의 연장이지만

포로로 끌려가거나 무너진 성전 앞에서는

그리도 순종 않던 조상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자신들을 보게 합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자비 가득한 감격의 장이기도 했고

조상들의 죄로 가득한 불순종과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출애굽이라는 거울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주고 진단하는 거울이었습니다.

남편을 저버린 여인으로 이스라엘이 비유(호세아) 되기도 하고

정의만을 원하시는 하나 님으로 선포(아모스)되기도 했습니다.

 

시편 105편은 또 다른 거울을 보여줍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하나님이 기억하셔서

이를 위해 준비된 사람 요셉을 먼저 보내셔서 일으키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그 아들, 성조(聖祖) 시대부터 출애굽을 준비하신 분이실 정도록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심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는 범주 너머에 계시는 분, 우리 신앙의 상상력을 더 확장해주시는 분입니다.

요셉을 통해 준비했던 하나님의 주도면밀하심을 통해

시인은 하나님을 더 깊이 의뢰하며 감사할것을 요청합니다.

새로운 발견과 눈뜸은 우리 신앙을 넓혀줍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2,000년 전의 십자가의 길 또한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과거의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여전히 오늘 여기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는 힘이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거울입니다.

미처 보지 못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자비와 능력을 다시금 발견하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그저 과거의 사건으로 읽고 기억하면 십자가는 불편한 것입니다.

교리적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고자 짊어지신 십자가로만 읽는다면 신앙은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과 광야로 돌아가길 요청받

이 사순의 여정에 우리는 다시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매만지며

새롭게 솟구치는 생명의 능력을 누려야겠습니다.

 

 

기도

주님,

제게 이미 영원한 생명의 화수분을 주셨는데

그걸 잊고는 엉뚱한 걸 붙 잡으려고 헤매는 것은 아닌지요?

이 사순의 여정에 십자가의 비밀과 신비와 능력을

다시금 맛보는 은총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화수분

중국 진시황때에 있었다는 하수분(河水盆)에서 비롯한 말이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 장성을 쌓을 때 군사 십만 명을 시켜 황하수(黃河水)를 길어다 큰 구리로 만든 동이를 채우게 했다.

그 물동이가 얼마나 컸던 지 한번 채우면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다고 한다.

황하수 물을 채운 동이라는 뜻으로 '하수분'이라고 하던 것이

나중에 그 안에 온갖 물건을 넣어 두면 자꾸만 불어나 끝없이 나온다는 보배의 그릇을 뜻하게 되었다.

원래는 '황하수를 담은 항아리(분)'란 뜻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변하여 '화수분'이 되었습니다.
재물이 쓰면 쓴 만큼 생겨나서 줄지 않을 때 쓰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