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 고아원 미사
예수의 사순절을 기념하는 목적이 나만의 영성 심화를 넘어서
우리 이웃을 둘러 보는 실천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한스 큉에 의할 때 모차르트는 "독실한 척하는 교회 인사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았고,
가식적이고 위선적 행동을 증오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쫓아낸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콜로레도와 같은 인간이 대표적일 겁니다.
그 사건이 워낙 유명했기에 잘츠부르크는 물론 빈의 성직자들이나 보수적 신앙인들에게
모차르트는 비판적 가톨릭 교도로 찍혔습니다.
가톨릭 교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한술 더 떠서 1786년에 체제 전복적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발표하고 난 다음엔
성직자들에 이어 귀족들까지 멀리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모차르트가 무신론자나 타종교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건 아닙니다.
그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 여행을 하거나 친분을 오래 유지하 지 않았습니다.
모차르트가 교제를 원했던 사람은 진심으로 그 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1768년 12월 7일,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참석한 가운데
빈 3구에 위치한 렌베그 고아원 성당 헌당 기념 미사에서
자신이 작곡한 <바이젠하우스(고아원) 미사' K. 139>를 초연했습니다.
당시 12살 꼬맹이었지만 러닝 타임 40분 넘는 분량의
관현악 반주가 딸린 대 미사를 작곡해냈을 뿐 아니라 지휘까지 맡았습니다.
지금도 그 교회 입구에는 모차르트가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고아원 미사를 연주했음을 기념하는 명판이 붙어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초기 미사를 들으며 모차르트의 신앙을 생각합니다.
이 곡을 지휘한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종교 전문 지휘자가 아니고,
모차르트의 종교 음악을 모두 음반으로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바도는 모차르트가 겨우 12살에 작곡한 곡을 녹음으로 남겼습니다.
어린 모차르트의 첫 장엄미사란 역사적 의의에 더해
음반으로 남겨 둘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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