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다물기만해도
2023년 3월 31일 금요일
욥 13:13-19
(욥 13:13) 너희는 잠잠하고 나를 버려두어 말하게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지 내가 당하리라
(욥 13: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욥 13:15) 1)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욥 13:16) 경건하지 않은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욥 13:17)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
(욥 13:18) 보라 내가 내 사정을 진술하였거니와 내가 정의롭다 함을 얻을 줄 아노라
(욥 13:19)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요절
너희들은 내 말을 분명히 들으라 내가 너희 귀에 알려 줄 것이 있느니라(욥 13:17)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대부분은 제어가 가능하지요.
시간이나 노력을 요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품을 들이면 됩니다.
그러나 삶에는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예고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덮쳐오는 파고 앞에서 아뜩해질 수밖에요.
존재의 기반이 와르르 무너지고 차곡차곡 쌓였던 삶의 의미들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무게에 짓눌려 숨 쉴 수조차 없습니다.
도무지 길이 없어 보이고 캄캄한 어둠뿐입니다.
본문의 욥은 그런 한계상황 아래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욥의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욥의 모습을 보고 아연하여 말을 잃습니다.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이 탄식하며 무고를 주장하자 며칠의 침묵을 깨고 합리적인 주장을 펼치며 욥의 문제들을 들추어내려 합니다.
한동안 판단과 충고, 탄식과 변호가 이어지고 나서 욥은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내 말에 잘못이 있어도 내가 당할 것이고, 이렇게 죽을 몸이라면 내 속의 아우성을 털어놓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하나님 앞에 서고 싶은 심정이며 그것만이 지금 자신에게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 님께서 자기 허물을 지적하시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 도욥은 친구들에게 귀를 기울여달라고 말합니다.
그는 귀 기울여 줄 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픔을 겪는 이 고난을 받는 이에게 줄 수 있는 위로이자 선물은 그 곁에 가만히 머무르며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고난받는이의 신음 가운데 함께 머무는 거지요.
신음과 침묵의 무게가 불편하여 서둘러 위로하거나 답을 제시하려는 것은 더 큰 아픔을 줄 뿐입니다.
교사의 교사라고 불리는 파커 팔머는 꽤 오래 우울증에 빠져있었 습니다.
그를 둘러싼 어떤 것도 힘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를 우울증에서 벗어나도록 도운 이는 몇 달 동안 매일 저녁 자신을 찾아와
아무 말없이 따뜻한 물로 발을 씻겨주었던 이웃이었다고 말합니다.
연약한 자신만큼이나 가련한 모습으로 곁에 있어 준 믿음의 이웃이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주님을 찾아와 마치 하나님의 변호인이라도 되는 양
공박한 이들은 스스로를 신실한 사람이라 여겼지요.
그들은 죄를 찾아내고 밝혀내는 사람이었지만 주님은 죄인의 곁에 가서 그들과 머물며 용서하셨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하나님을 변호하면서 욥을 정죄합니다.
하나님의 변호인인 양 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폭력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자기 생각을 우기고 상대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 지경에선 신앙과 고집은 구분되지 않습니다.
욥의 간청이자 항변은 '하나님의 뜻'이란 말로 저지르는 폭력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님을 죽음에 몰아넣었고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여기는 이들로 인해 역사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이 새겨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 다.
더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선으로 인도하심을 경험합니다.
기도
주님,
마치 하나님의 뜻을 아는 양 함부로 판단한 저임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 마음의 귀를 여셔서 이웃의 아픔을 들으며 그 곁에 머물며 그 아픔을 나누게 해주십시오.
사실 저도 그런 사랑과 수용 덕분에 오늘 여기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또 그래야 주님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겠습니까?
제 귀를 열어주십시오. 아멘
출처 : 동행하는 길(송대선, 지강유철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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