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 22일 : 솔직한 니고데모

w.j.lee 2024. 3. 5. 04:18

솔직한 니고데모

2024년 3월 9일 · 토

요한복음 3:1-13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오래전 '천국이 내가 익히 알고 상상하던 정도의 곳이라면 나는 결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는 어느 신학자의 글을 대하곤 한참 생각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무척 불경스럽다고 느꼈지만 곰삭이다 보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향한 더 깊은 신뢰의 고백임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자신의 상상이나 생각의 한계 내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내 생각과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분입니다.

마치 자기의 고난에 대해 하소연하는 욥에게 하나님이 하늘에 별을 달 때, 얼룩말의 무늬를 지을 때 넌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한계에 갇힌 욥을 이끌어 하나님의 세계에 눈뜨게 합니다.

그 세계는 자기 한계 내에 갇혀서는 도무지 사량(思量)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천국 에 대한 신학자의 소망 또한 전지전능한 하나님, 인간의 생각과 상상을 한없이 뛰어넘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우리 사유의 좁은 틀 안에 그렸던 하나님에서 벗어날 때 '무한한 하나님'을 마주하고 그 안으로 성큼 뛰어들게 되지요.

 

한밤중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낸 분임을 믿고 찾아왔습니다. 

산헤드린의 의원이자 이스라엘의 선생이지만 귀 기울이는 마음이 있습니다. 

윗사람이 되어 누군가를 직접 찾아가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 닙니다.

예수께서 이를 귀하게 여기셨나 봅니다.

주님은 거두절미하고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십니다.

당황하는 니고데모가 느껴집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을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다는 것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말씀, 진리는 듣는 이를 당황하게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참 좋은 말씀이네'라고 말 한다면 그것은 우리 생각과 한계 안에 있는 말입니다.

어떻게 진리가 우리를 뒤흔들지 않고 우리 영혼에 자리할 수 있을까요?

생명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 균열을 내고 그 틈새를 비집어 흔들며 뿌리를 내립니다.

 

니고데모는 속마음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 자기 믿음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노라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안다'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무지의 고백 사이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야 한다는 이 말에 당황하지 말라,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영으로 난 이는 그러하다.” 

그제야 니고데모가 이해의 실마리를 잡습니다. '

아~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믿음이라야 육이 아니라 영으로 나겠는지요?" 

니고데모의 말에 주님은 인자가 들려야 하 며 그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라 일러주십 니다. 

이제 들은 이에게는 '믿고 따를 일'만 남았습니다.

 

지식을 소유하듯 믿음을 소유했던 니고데모였습니다. 

믿음은 지식의 소유와 같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이며, 주님이 이끄는 대로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 안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 입니다.

이때 경험하는 것은 추락이 아니라 황홀한 비상(飛 날 비, 翔 날 상)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또한 이해하고, 깨달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황할 정도로 우리가 만든 틀을 흔들어 균열을 내어 뿌리내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말씀으로 한계가 녹아내리고, 새로운 경계가 열립니다.

 

 

기도
주님, 

주님의 말씀이 생명이며 늘 새로운 것인데 제가 다 알고 이해하는 양 맘대로 해석할 때가 있습니다.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도록 도우십시오.

니고데모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 앞에 머물게 하시고 당신의 지혜를 듣게 해주십시오.

판단하지 않고 우리를 넘어서는 디딤돌로 삼게 하십시오.

아멘


출처 : 사순절 묵상여정- 곁에 머물며(송대선, 지강유철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