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새 예루살렘 성으로
꿈에서 보니, 순례자들은 마법의 땅을 지나 쁄라 지방으로 들어갔다.
대기는 부드럽고 상쾌했다.
길이 곧바로 동네를 관통하고 있었으므로 여행하는 내내 편안하고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사 62:4)
새들은 지지배배 사방에서 지저귀었다.
가는 곳마다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간간이 멧비둘기 우는 소리 도 들렸다.(아 2:10-12)
밤낮없이 햇살이 환하게 비쳤다.
쁄라는 죽 음의 그늘 골짜기 너머, 절망거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으며 의심의 성 따위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순례자들이 가려고 하는 거룩한 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주민들 몇몇을 만나기도 했다.
여기는 하늘 나라와 맞닿아 있는 지역이었으므로 빛나는 옷을 입은 천사들이 예사롭게 돌아다니곤 했다.
이곳은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이, 네 하나님께서 너를 반기실 것"(사 62:5)이라는 신랑과 신부 사이의 계약이 새로워지는 자리기도 했다.
빵과 포도주가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순례여행을 하는 동안 줄곧 아쉬워하던 것들이 여기선 차고 넘쳤다.(사 62:8)
크리스천과 소망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음성을 들었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세우고 오신다."(사 62:11) 뿔라의 주민들은 두 순례자를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 찾은 바 된자(사 62:12) 라고 불렀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이 지방을 지나가면서 여행을 하며 거친 그 어느 동네서보다도 크게 기뻐했다.
새 예루살렘으로 다가갈수록 성 전체가 진주와 귀한 보석으로 지어졌으며 모든 길이 금으로 포장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본래 금빛 찬란한 데다가 영광의 햇빛까지 비치니 한시바삐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크리스천은 그만 몸살이 나고 말았다.
소망도 한바탕 병치레를 했다.
증상이 너무 심해서 여정을 중단하고 갈망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러대야 했다.
"너희가 내 님을 만나거든, 내가 사랑 때문에 병들었다고 말하여다오(아5:18) 라는 말씀이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한참을 끙끙거린 뒤에야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마침내 다시 새 예루살렘을 향해 떠난 크리스천과 소망은 과수원과 포도원을 거쳐 큰길 쪽으로 활짝 열려 있는 정원에 이르렀다.
때마침 정원 가 나와서 길가에 서 있었다.
순례자들이 물었다.
"이 멋진 포도원과 정원들은 어떤 분의 소유입니까?"
정원사가 대답했다.
"모두 임금님의 것입니다. 스스로 즐기시기 위해, 그리고 순례자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심으신 것들입 니다."
그러면서 잠시 들어와서 쉬다 가라고 초대했다.(신 23:24)
그뿐 아니라 임금님이 가장 좋아하는 산책로와 정자들도 보여주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잠깐 앉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서 보니, 순례자들은 잠을 자면서 그동안 여행하면서 나눈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포도원에서 나는 열매 들은 너무나 달콤해서 먹기만 하면 자면서도 말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난 두 순례자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하지만 정금으로 만들어진 성이(계 21:18) 햇살을 받아 너무나 장엄해진 덕에 특별히 만든 도구를 써서 눈을 가리지 않고는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고후 3:18)
그렇게 걷고 또 걷던 크리스천과 소망은 금빛 옷을 입고 얼굴에서 해처럼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두 남자를 만났다.
남자들은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기에 대답을 해주었더니 그동안 어디서 묵었으며, 어떤 어려움과 위기를 겪었고, 무슨 위로와 즐거움을 얻었느냐고 캐물었다.
자초지종을 시시콜콜 설명하자 두 남자가 말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기까지 이제 고작 두 가지 난관이 남았을 뿐입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다. 두 남자는 그렇게 하자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거룩한 성에는 각자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혼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들 성문이 보이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한 줄기 강물이 성문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강물은 깊고 건너갈 다리는 없었다.
순례자들은 강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새로 일행이 된 남자들이 말했다.
"새 예루살렘 성문으 로 가자면 반드시 강을 건너야 합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혹시 성문으로 가는 다른 길은 없느냐고 물었다.
두 남자는 지체없이 대답했다.
"있기는 하죠. 하지만 세상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엘리야와 에녹, 단 두 명만 그 길을 지나가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밖에는 마지막 나팔소리가 들리는 날까지 누구도 그 길을 지나갈 수 없어요."(고전 15:51-52)
순례자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크리스천은 깊이 낙담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지만 달리 강을 건널 길은 보이지 않았다.
두 순례자는 뒤늦게 합류한 길벗들에게 강물의 깊이가 어디나다 사시장철 똑같으냐고 물었다.
더러 수심이 얕아질 때가 있지만 특별히 언제라고 지목하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심이 얼마나 깊고 얕으냐는 그곳의 임금님을 믿는 신앙의 깊이에 달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둘은 강에 뛰어들었다.
들어가자마자 크리스천은 물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순례자는 길 벗 소망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발붙일 곳이 없는 깊고 깊은 수 렁에 빠졌네. 물속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갔으니, 큰 물결이 나를 휩쓸어가는구려!" (시 69:2)
소망은 다급하게 대꾸했다.
“기운을 내세요! 발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어요. 괜찮아요!"
크리스천은 울부짖었다.
"형제님! '죽음의 덫'이 나를 덮친 게 틀림없으니(시 18:5) 아무래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못 볼 것 같소!"
순간, 짙은 어둠과 공포가 크리스천을 덮쳐서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크리스천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옛 기억들도 도움이 되지 않 았다.
순례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즐겁고 행복한 일들을 일깨워 줘도 조리 있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입만 열면 두렵다는 말만 했다.
성문에 가기는커녕 강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지는 않을까 잔뜩 겁에 질린 눈치였다.
순례에 나서기 전에, 그리고 여행 도중에 저지른 죄를 떠올리며 몹시 괴로워했다.
잡다한 귀신과 악령들에 시달리는 듯, 끊임없이 헛소리를 해댔다.
소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형제의 머리가 물에 잠기지 않도 록 떠받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붙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천은 물속에 완전히 빠져들었다가 반쯤 죽어 떠오르기 일쑤였다.
소망은 쉴 새 없이 말을 걸며 크리스천을 다독였다.
"형제님, 성문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맞으러 나와서 기다리네요."
하지만 크리스천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건 내가 아니라 형제 일 거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네는 줄곧 소망을 잃지 않았으니..."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소망은 불쌍한 순례자에게 소리쳤다.
"형제님도 마찬가지잖 아요!"
크리스천은 힘없이 말했다.
"똑바로 살았더라면 지금쯤 주님 이 도와주셨겠지만, 죄를 지은 탓에 올무에 걸리게 하시고 이렇게 버려둔 채 떠나신 거야."
소망은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다.
"형제님, '악인들은 죽을 때 에도 고통이 없으며, 몸은 멀쩡하고 윤기까지 흐른다.
사람들이 흔히들 당하는 그런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으며,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아예 가까이 가지 않는다' (시 73:4-5)는 말씀을 벌써 잊으신 겁니까?
강물에 빠져 이처럼 고통과 괴로움 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하나님이 형제님을 잊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이건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한 가르침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주신 시험입니다.
심한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을 의지하는지 살펴보고 싶으신 겁니다."
꿈속에서 보니, 크리스천은 잠시 정신을 잃었다.
소망은 곤경에 빠진 형제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해주실 거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기운을 내라고 격려했다.
한동안 씨름을 벌인 끝에 크리스천은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오, 주님이 다시 보여!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사 43:2)이라고 말씀하시네!"
그리하여 두 순례자는 용기를 내서 강을 건넜다.
원수들은 돌 처럼 굳어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크리스천은 금방 단 단한 바닥을 찾아 두 발로 굳게 섰고 강물도 몰라보게 얕아졌다.
마침내 순례자들은 강을 건너 반대편 기슭에 이르렀다.
물에서 나오자 밝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다시 눈앞에 나타나서 반갑게 인사하며 말했다.
"우리들은 구원의 상속자가 될 사람들을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들입니다."(히 1:14)
일행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성문을 향해 걸었다.
거룩한 성은 까마득히 높은 산 위에 있어서 바닥이 구름보다 더 높을 정도지만, 천사들이 팔을 붙들어 부축하고 이끌어준 덕분에 순례자들은 큰 힘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올라갔다.
또한 썩어 없어질 육신의 옷은 강물에 떠내려 보냈다.
옷을 입은 채로 강물에 들어갔다가 벗어버리고 나온 것이다.
순례자들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무사히 강을 건넜을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동료들의 도움까지 받고 있었으므로 마음이 더없이 편안했다.
순례자들은 빛나는 옷을 입은 이들과 하늘나라의 영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천사들은 그곳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노라고 했다.
"시온 산과 하늘의 예루살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들,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거기에 있습니다.(히 12:22-24)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으로 가서 생명나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영원토록 변치 않는 열매를 먹게 될 겁니다.
그곳에 가면 흰옷을 받아 입고 날마다, 그리고 영원토록 임금님과 걸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계 2:7; 3:4; 22:5)
낮고 낮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보았던 슬픔, 질병, 고통, 죽음 따위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계 21:4) 아울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선지자들과 장차 닥칠 재앙을 피하여 부름받아 자기 침상 위에서 편히 쉬고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들 하나님의 의로움 속에 행복하게 살고 있죠.(사57:1-2; 65:17)
크리스천과 소망이 물었다. "거룩한 땅에 들어가면 무얼 해야 합니까?"
빛나는 옷을 입은 이들이 말했다.
"그동안 수고한 데 대해 위로를 받고 슬픔 대신 기쁨을 누립니다.
임금님의 나라까지 오면서 뿌린 씨앗, 그러니까 기도와 눈물, 고통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황금 면류관을 쓰고 거룩하신 분을 언제나 뵙고 꿈꾸는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그분을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 3:2)
세상에 머물 때 는 주님을 제대로 섬기고 싶어도 육신이 연약해서 찬양하고, 외치고, 감사하면서 마음껏 섬기지 못했지만 거기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그분의 상쾌한 음성을 듣고 감격할 것입니다.
두 분보다 앞서 간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한편, 뒤따라 거룩한 땅에 도착하는 이들을 영접하게 됩니다.
영광과 존귀의 옷을 입고 영광의 왕과 더불어 마차에 오릅니다.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서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바람 날개를 타고 세상에 내려오실 때 여러분도 동행합니다.
주님이 심판 보좌에 오르실 때 두 분도 그 곁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천사든 인간이든, 불의한 일꾼들을 재판하실 때 여러분도 함께 판결을 내립니다.
저들은 주님의 원수인 동시에 여러분의 적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4:13-17: 유 1:14: 단 7:9-10: 고전 6:2-3)
아울러 왕의 왕께서 나팔소리와 더불어 거룩한 성으로 돌아오실 때 두 분도 같이 복귀해서 영원히 그분 곁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성문으로 다가가자 수많은 하늘나라 백성들이 마중을 나왔다.
순례자들과 동행했던 빛나는 옷을 입은 천사들이 무리를 향해 말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을 사랑했으며 그 거룩한 이름을 위해 모든 걸 버린 이들입니다.
그분은 이 순례자들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기쁨으로 구속자의 얼굴을 뵙기를 꿈꾸던 바로 그곳으로 안내해온 것입니다."
설명을 들은 하늘나라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9:9)
때마침 그 자리에는 임금님의 악대도 희고 빛나는 예복을 입고 순례자들을 맞으러 나와 있었다.
나팔수들은 하늘나라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웅장하고도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했다.
연주자들은 커다란 함성과 나팔소리로 크리스천과 소망에게 극진한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고는 순례자들을 사방에서 에워쌌다.
마치 중요한 인물을 호위하듯 전후좌우에 둘러서서 더 높은 곳으로 이끌었다.
행진 하는 동안에도 줄곧 장엄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서 두 사람의 도착을 알렸다.
누구라도 그 장면을 보았더라면 하늘나라 전체가 크리스천과 소망을 반가이 맞이하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걸어가는 동안 나란히 선 나팔수들은 즐거운 음악과 더불어 표정과 몸짓으로 두 순례자들에게 한 식구가 된 걸 말할 수 없이 환영한다는 신호를 보냈으며 마중을 나오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는 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하늘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내내 크리스천과 소망은 천사들의 멋진 모습과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일행은 새 예루살렘 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도착했다.
바로 그때, 성안의 종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두 순례자를 반기는 의미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훈훈하고 즐거운 건 그처럼 멋진 이들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되었다는 사실 이었다.
크리스천과 소망의 기쁨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둘은 성문을 향해 나갔다.
문 앞에 이르자 금으로 아로새긴 글귀가 보였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차지하려고, 그리고 성문으로 해서 도성에 들어 가려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계 22:14)
꿈에서 보니, 환하게 빛나는 옷을 입은 이들이 크리스천과 소망에게 문을 두드리라고 했다.
순례자들이 그 말에 따르자 에녹과 모세, 엘리야가 문간에 나타났다.
천사들이 두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들에게 말했다.
"하늘나라 임금님 섬기기를 좋아해서 멸망의 도시를 떠나 여기까지 찾아온 순례자들입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출발할 때부터 몸에 지니고 있던 증명서를 내보였다.
서류는 곧장 임금님에게 올라갔다.
하늘나라의 왕은 문서를 잘 살펴보고 물었다.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문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대답했다.
임금님은 문을 열어주라고 명령했다.
"성문들을 열어라. 믿음 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하여라."(사26:2)
크리스천과 소망은 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섰다.
문턱을 넘는 순간, 두 사람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으며 어느새 금빛 찬 란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한쪽에는 하프와 면류관을 든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금은 찬양하는 데 쓸 악기였고 면류관은 임금님의 영예를 상징했다.
시내의 모든 종들이 다시금 일제히 울렸다.
기쁨의 종소리였다. 어디선가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하는 음성이 들렸다.
크리스천과 소망도 큰 소리로 노래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 하도록 받으십시오!"(계 5:13)
순례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문이 활짝 열리는 틈을 타서 안을 슬쩍 엿보았다.
해처럼 밝게 빛나는 도시가 한눈에 보였다.
면류관을 쓰고, 종려나무 가지를 쥐었으며, 정금 하프에 맞춰 찬양을 부르는 이들이 금으로 덮인 길을 거닐고 있었다.
날개가 달린 천사들도 섞여 있었는데 서로를 바라보며 쉴 새 없이 "거룩 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계 4:8)이라고 외쳤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성문이 닫혔다.
문안을 보고 나니 들어가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한없이 간절해졌다.
뚫어져라 안을 바라보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무지가 강가에 다가서는 게 보였다.
하지만 갖은 고생을 다 했던 크리스천이나 소망과는 달리 아무 어려움 없이 강을 건넜다.
뱃사공 '헛꿈' 이 노를 저어 건네준 덕분이었다.
건너편에 도착한 무지는 앞서 지나간 두 순례자처럼 산을 올라갔다. 마중을 나오거나 거룩한 성으로 가는 동안 응원해주는 이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성문 앞에 선 무지는 새겨진 글 귀를 읽었다.
그러고는 금방 들어갈 수 있겠거니 하면서 열심히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고 성문 위로 웬 사람들이 나타나서 물었다.
"어디서 왔소? 원하는 게 뭐요?"
무지가 대답했다.
"나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성안의 사람들은 증 명서가 있어야 문을 지나 임금님을 뵐 수 있다고 했다.
무지는 주머니란 주머니를 죄다 더듬어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성안에 질문이 날아왔다.
"증명서가 없단 말이오?"
무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새로운 순례자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왕은 내려가 보지 않았다.
대신, 크리스천과 소망을 안내했던 두 천사에게 나가서 무지를 단단히 결박하라고 명령했다.
빛나는 옷을 입은 이들은 무지를 데리고 허공을 가르며 지난날 산자락에서 보았던 문으로 날아가 그 속으로 집어던졌다.
가만히 보니, 멸망의 도시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문에도 곧장 지옥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
순간, 퍼뜩 잠에서 깼다. 모두가 한바탕 꿈이었다.
출처 : 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최종훈 옮김, 포이에마 출판 )
맺는 글
자, 독자들이여.
내 꿈 얘기를 그대들에게 들려주었으니
내게 또는 자신에게, 이웃에게
그 이야기를 풀이해줄 수 있는지 살펴보라.
부디 조심하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풀지 않도록
잘못 이해하면 스스로 상할 뿐만 아니라
악한 결과가 뒤따를 터이니.
또한 주의하라.
내 꿈의 껍질만 만지작거리며 극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인물이나 비유를 가지고 조롱하거나
입씨름을 벌이지 않도록.
그런 짓은 어린아이나 어리석은 인간들의 몫.
그대는 이야기의 본질에 매달리라.
커튼을 젖히고 장막 안쪽을 들여다보라.
비유들을 곰곰이 짚어 부디 실수하지 않기를.
찾고 또 찾으면 하나하나가
진실한 심령에 이로움을 깨닫게 되리니.
눈에 띄는 찌끼를 어찌할까?
서슴없이 던져버리되 금쪼가리는 한사코 지키기를.
금덩이가 암석에 단단히 싸였다면 또 어찌할까?
누구라서 속심이 딱딱하다고 사과를 버리냐?
쓸모없다 여기고 던져버린다면
어쩌랴. 다시 꿈을 꿀 수밖에.
'쉼터 > 천로역정 1 (天路歷程 1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로역정 1 표지 (0) | 2024.09.24 |
---|---|
천로역정 1 서문 (3) | 2024.09.24 |
이 책에 대한 변명 (0) | 2024.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