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다

에필로그 : 인생의 공백들, 하나님으로 채우다

w.j.lee 2024. 11. 5. 08:30

 

에필로그 

 

인생의 공백들, 하나님으로 채우다

 

짐작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해돋이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일몰이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오렌지색 태양 이 바다 속으로 사라지면서 하늘이 서서히 컴컴해지는 광 경도 정말 아름답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담요 위에 앉아서 일몰을 구경했던 추억이 많다.

그래도 나는 해돋이가 더 좋다.

알다시피 내 성은 브로갑(문자적으로 '일찍'이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태양이 새벽안개를 뚫거나 산 위로 떠오르며 새로운 하루의 출발을 알리는 광경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첫 광선에는 뭔가 새롭고 희망적인 느낌이 있다.

조용한 아침, 커피 한 잔, 잔디 앞의 의자, 아침 햇살로 반짝이는 하늘보다 더 기분 좋은 것도 드물다.

 

오래전 새해에 그랜드캐니언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었다. 

애리조나주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던 중에 우리는 그랜드캐니언의 사우스림(South Rim)으로 가서 새해 전날 밤에 묵을 호텔을 예약했다.

나는 아침에 이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기 위해 몇 시쯤 호텔을 나서서 어디로 갈지 계획을 세웠다.

밤새 보기 드문 겨울 폭풍이 불어 그 지역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이 더욱 놀랍게 변했다. 

어서 아침이 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직 어두컴컴하고 밤새 내린 눈이 여전히 쌓여 있는 가운데 우리는 해가 뜨기 30분 전 해돋이 명소로 갔다. 

몇몇 사진 전문가들 외에는 우리가 유일한 여행객이었다.

우리는 최적의 장소를 차지하고서 함께 기다렸다.

그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평온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 뒤에서 관광버스 여러대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의 특별한 장소는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북적 거렸다.

많은 인파가 우리 시야를 가렸고, 어느 무례한 사진 전문가는 내 아내를 밀쳤다.

어린 딸은 신발이 눈에 젖자 발가락이 얼어붙는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딸아이 는 "차에 가면 안 돼요?"라고 사정했다.

딸아이가 덜덜 떨기 시작하자 아내가 말했다.

"여보, 미안하지만 애를 데려가서 몸을 따뜻하게 해야겠어요. 당신은 여기 있어도 돼요."

 

가족과 함께 해돋이를 보겠다는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랜드캐니언 위로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안이 부글거렸다.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몰려든 사람들과 신발을 잘못 고른 딸에 대한 짜증, 더 완벽한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등이 물밀듯 몰려왔다. 

그랜드캐니언에서의 내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차로 달려가 아내와 딸에게 다시 나오라고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어느새 태양은 떠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아침 햇살이 그랜드캐니언을 가득 채우는 순간은 실로 장관이었다. 

노란색과 붉은색과 오렌지색의 빛이 사우스림의 깊은 벽들을 비추니 겨울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햇빛이 점점 더 깊이 파고들면서 몇 분마다 그랜드캐니언의 색이 바뀌었다.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영광을 담은 광경을 보노라니 절로 예배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하마터면 기다림의 낭비로 이 경험을 놓칠 뻔 했다.

 

이 책을 쓰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에 관한 비유로 그때 그랜드캐니언에서의 순간을 자주 생각했다. 

나의 갈망이나 기대, 계획, 꿈에 집중한 나머지 아름다운 순간을 놓칠 뻔했던 상황이 수없이 생각난다.

실망감이나 좌절감에 내 기쁨을 빼앗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앞에서 영광스러운 기회가 솟아오는 순간에 삶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나 모르는 것만을 생각할 때가 많았다.

기대가 충족되 지 않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해돋이를 놓칠 수 있다.

 

인생은 계획에 없는 공백의 순간으로 가득하며, 그런 순간을 헛되게 보내기 쉽다.

 

 

기다림을 구속하다

 

이 책의 목표는 우리가 자신의 삶에 관해 모를 때 하나님에 관해 아는 진리에 따라 사는 법을 배움으로써 하나님을 잘 기다리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당신'을 '우리' 로 바꾸었다는 것을 눈치챘는가?

이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다. 나와 당신을 둘 다 염두에 두고서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기다림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이 여행에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느꼈기를 바란다.

이 책을 위한 나의 비전은 내 삶에 부족함을 절감하는 한 가지 중요한 성경적 개념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것이었다.

당신도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긴장으로 가득한 '공백의 땅'을 헤쳐 나가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절박감에 이 책을 펼쳤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탐구하기로 결심해 줘서 감사하다.

이 책의 진리들을 계속해서 배우고 적용하기를 바란다.

나는 내 여행을 이제 겨우 시작한 느낌이다.

내 성은 여전히 '일찍'을 의미하고, 나의 행동 지향적인 성향은 줄어들지 않았다.

내 성격과 성향은 여전하다.

나는 여전히 같은 유혹들에 시달린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이 당신이나 당신의 환경을 근본적으 로 바꿔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다림을 전보다 덜 낭비하고 있다.

 

내가 기다림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 태도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가 기다림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내 평생에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체와 불확실성 속의 긴장은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나는 공백의 순간들의 구속적인 특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의 약함을 더 깊은 영적 성장을 위한 기회로, 내가 모르는 것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집중할 기회로 보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기다림이 힘들고 흔하지만 나는 인내 하며 사려 깊게 기다림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기다림에 덜 충격받고 덜 짜증낸다. 

이 책을 쓰면서 하나님을 기다릴 기회를 덜 놓치게 되었다.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나는 기다림에 대해 덜 반응적이고 더 의도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분을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전보다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사 64:4).

나는 그 역사를 직접 보았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도 잘 기다리도록 돕는 법을 찾고 있다.

 

나는 기다림을 받아들이기 위한 더 많은 방법을 찾고 있다.

당신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기다림을 받아들이면서 배운 교훈

 

우리의 여행이 끝나가는 지금, 내가 기다림에 관해 생 각하고 쓰면서 배운 개인적인 교훈을 몇 가지 나누고 싶다. 

이 교훈들이 마음에 와닿기를 바란다. 

스스로 얻은 교훈을 얼마든지 덧붙여도 좋다. 

당신과 같은 독자들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에 관해 듣고 싶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놀라운 여행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섯 가지 교훈을 얻었다.

 

기다림을 싫어하는 것은 통제 욕구와 관련이 있다 

나는 기다림을 왜 싫어하는가?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 보고 이 책을 쓰면서 내게 중요한 질문이었다. 

감정과 반응을 확인하기는 아주 쉬웠다.

좌절감이나 두려움, 불안, 분노가 나의 감정과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것을 파악해야 했다.

이제 나는 통제 욕구가 나의 근본문제라는 것을 안다.

기다림은 내 삶을 통제하려는 욕구에 제동을 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파악하고 타이밍을 알고 결과를 확실히 알면 안심이 된다.

반면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불안해진다.

이 점을 알고 나니 공백의 순간들을 하나님께 의지할 기회로 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아는 데서 오는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기다림을 받아들이려면 내 통제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문화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기다림은 점점 더 쉽지 않다. 

세상에는 기다림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으며,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빨리 움직여야 할 이유가 주변에 가득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속도와 효율성에 익숙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기대들이 변했고, 그런 기대가 내 삶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가 정말 힘들다.

나아가 삶의 경험도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일이 잘못되어 고통을 겪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주변과 내안의 이런 경향을 깨달은 덕분에 그런 어려움을 마치 백색소음처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기다리기 힘들어할 때 이런 점을 예전보다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고, 답이나 해법을 빨리 얻으려는 충동을 예전보다 더 잘 뿌리칠 수 있다.

기다림을 받아들이려면 우리 안팎의 유혹을 뿌리쳐야 만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내게 부족한 한 영역을 개선하려는 생각으로 이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곧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중요한 측면임을 깨달았다. 

앤드류 머리는 자신의 책 마무리 부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기다림이 그리스도인의 수 많은 덕목 중 하나요 가끔씩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에 있는 태도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기다림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하나 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제자의 길에 정상적이고도 중심적인 요소다.

따라서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면 이 중요한 영역에서 자라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이 점을 이해하면서 기다림에 관한 생각이 바뀌고 기다림을 가치 있게 여기게 되었다.

기다림을 받아들이면 영적 성숙과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깊어진다.

 

날마다 하나님을 기다리면 반응을 절제하고 평안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의도적인 기다림과 내 반응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고, 앞으로도 기다림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이 여행 덕분에 많은 자유를 경험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을 날마다의 훈련으로 받아들이자 놀라운 열매들이 나타났다.

매일 몇 분간 시간을 내어 초점을 맞추고 경배하고 찾고 믿었더니 눈에 띄는 열매가 맺혔다.

이제 지체되는 상황이 덜 충격으로 다가온다.

불확실성을 더 참을 수 있다.

이제 예전만큼 빨리 말하거나 반응하지 않는다.

내 삶의 훨씬 더 많은 순간 속으로 하나님 을 초대하고 있다.

걱정과 스트레스가 전보다 덜하다.

내 짐이 더 가벼워진 것 같고,

내 구주와 더 가까워진 것을 느 낀다.

기다림의 공백을 반응으로 채우는 경우가 훨씬 줄어 들었다.
기다림을 받아들이면 성장의 길이 펼쳐진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그분의 구체적인 개입을 경험했다. 

그 개입은 먼저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동안 내 안에서 인내, 기쁨, 감사가 커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모르는 부분을 덜 생각하고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더 묵상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내 영혼 속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동안 나타난 그분의 역사를 생각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고 성급하게 행동하려는 충동을 뿌리쳤더니 문제가 풀리고 해법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회개 하고 갈등이 해결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타난 기도의 구체적인 응답들은 실로 놀라웠다.

하나님이 그분을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예전에도 머리로는 알았지만 이제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기다림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기회를 얻는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인생은 공백의 순간들, 곧 하나님을 기다릴 기회로 가
득하다. 

따라서 이 책은 시작일 뿐이다. 

기다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기다리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이제 전보다 더 잘 기다릴 의지와 능력을 얻었으리라 믿는다.

더 잘 준비하여 기다릴 수 있도록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를 다시 확인하고 넘어가자.

 

*묵묵히 :  기다림은 힘들다

*자주 : 기다림은 흔하다

* 말씀을 붙들며 : 기다림은 성경적이다 

* 인내로 : 기다림은 느리다

*적극적으로 : 기다림은 명령이다

*함께 : 기다림은 관계적이다

언젠가 우리의 기다림이 끝날 날이 올 것이다. 

그날 우리 믿음의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완성될 것이다.

영원한 삶이 시간에 대한 우리의 일시적인 관념을 대신 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빨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고통의 공백들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알게 될것이다.

그 위대한 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린다.

조급함과 좌절감으로 기다림을 낭비하지 말자. 

기다림 은 삶의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찾아오는 놀라운 위로를 경험할 기회이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시 27:13-14).


출처 :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다(마크 브로갑 지음, 두란노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