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스도인은 창조 세계를 돌봐야 하는가?
하나님 형상을 지닌 자로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볼 책임과 특권을 가집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경 말씀이 그에 합당한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아끼고 보살펴야 합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아주 멋진 창조 작품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약한 자를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과 태도는 자주 성경이 아닌, 우리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의해 좌우됩니다.
과학은 인간의 행위 때문에 총의 멸종과 기후 변화와 같은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애통하고 회개 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우리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복의 소망을 기대하며 행동하는 동안 직면할 막대한 문제들을 받아들이면서도 '합리적인 소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연 세계를 돌봐야 하는 이유는 성경에 분명하게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 문화에서는 환경 문제가 고도로 정치화되어 있어서, 그 이유가 종교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기후 변화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사실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기후 변화에 관한 과학적 합의를 수용할지의 여부에 대한 결정 은, 우리가 얼마나 과학을 많이 알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종교적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정치적 스펙트럼에 의해 좌우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합니다.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에 대한 논의에 정치적인 함의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특정한 정치 이념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사실, 미국의 두 주요 정당 모두 창조 세계를 돌보는 성경적인 기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시류에 저항하는 독특하고 고유한 성경적 비전이 있습니다.
이 비전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르게 살고 행동하도록 이끌어야만 합니다.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에 대한 복음주의자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의 생각은 성경적인 입장을 잘 요약해 줍니다.
우리는 왜 환경을 돌봐야 할까요?
그 이유는 단지 우리가 오염, 기후 변화 또는 기타 환경 문제 - 비록 그것들이 심각하기는 할지라도 - 로 인해 우 리가 직면하는 위험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문제는 더 깊은 차원을 가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이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청지기 혹은 대리 관리인일 뿐이며, 그것을 남용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우리가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 세계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결국 남용하고 말 것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에 매여 우리가 후대에게 만들어 주는 환경이나 문제들을 신경 쓰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 을 돌봐야 하는 성경적 근거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레이엄 목사가 언급했듯이, 그 성경적 근거는 이기적 선택, 탐욕, 하나님의 선한 창조와 타자에 대한 무관심, 이런 것들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 집단적맹목을 회개하도록 우리를 바르게 인도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을 돌봐야 하는 성경적 근거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을 치유하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단계들을 취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 : 그분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은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계명이 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 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막 12:29-31).
우리의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일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형상을 지니도록 하셨고(창 1:27) 이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창 2:15).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기본 적인 일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창조 세계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시 50:10-11).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고"(골 1:15-16).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에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 (레 23:22)과 다른 피조물들(신 25:4)뿐 아니라 땅의 쇄신도 준비하십니다(출 23:10-12).
율법을 따르기 위해 이스라엘 사람은 큰 값을 치렀습니다.
마찬가지로 창조 세계를 돌보기 위해 오늘날 우리들은 큰 값을 치러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했던 일들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생물의 다양성을 감소 시켰습니다.
생물의 다양성이라는 주어진 생태계 내에서 다양한 종류의 식물, 동물, 박테리아 및 균류의 수를 의미합니다.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종의 멸종은 정상 속도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멸종 속도는 연간 1-5종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속도는 1,000-10,000배 더 빠릅니다.
평균 한 시간에 한 종이 멸종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그 것들을 만드시고 좋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창 1장),
우리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생물 다양성의 상실과 종의 멸종을 애통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인 제공을 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 니다.
이웃사랑 :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
일부 그리스도인에게 '창조 세계 돌보기'는 마치 사람보다 이 땅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을 돌보는 것입니다.
환경 파괴가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입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 열대성 질환의 높은 발병률, 오염으로 인한 심폐 장애, 천연 자원에 대한 분쟁은 환경 문제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처음에는 기후 변화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 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기후 변화는 기온이 몇 도 올라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후 변화는 여러 위협을 일으킵니다.
기후 변화는 난민 위기, 기아, 질병, 빈곤, 생물 다양성의 손실, 삼림 파괴, 대기오염 및 자원의 고갈과 같은 이미 심각한 많은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킬 것입니다.
다수 세계에서(예전에 쓰던 "제3세계"라는 말 대신 사용하는 표현-옮긴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방식으로 환경파괴와 기후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자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악화되는 가뭄, 오염 및 분쟁의 현실을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이 땅을 돌보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동료, 곧 인간 전체를 돌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의 유익을 증진시키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실질적으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이웃일까요?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오늘날 기후 위기의 상황에서 예수님의 대답은, 기후 변화의 결과로 가장 큰 고통을 당할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은 부유하고 산업화된 경제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옹호하고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합리적 소망과 행동하기
교회가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에 대한 비전을 가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생겨날까요?
우리의 태도와 행동이 우리의 생활방식과 정치적 선호가 아닌 성경 말씀에 의해 인도받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가 우리 자신 이야기의 목적, 곧 그리스도가 창조 세계 전체를 자신과 화해시키시고 우리를 그 화해 사역의 참여하라고 부르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합리적 소망이란 과학적인 자료를 진지하게 다루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의 심각성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복음의 소망을 굳건히 붙들고 놓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 자세는 담대한 행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교회, 선교사 및 구호 단체의 수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을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적 우선순위로 여긴다면, 우리는 엄청난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로잔 언약 참조).
우리는 복음이 가르친 대로 살아 내고 가난하고 취약한 자들에게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진행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고무적입니다.
예를 들어, '기후 행동을 위한 젊은 복음주의자들'(Young Evangelicals for Climate Action)에는 대학생들이 여름 동안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학기 중에 자신의 캠퍼스에서 그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펠로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선배 펠로우들은 캠퍼스에 태양열 패널을 설치했고, 식당에 퇴비화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며, 재활용 프로그램을 설정하기도 했고, 입법 관계자들과 교류도 했습니다.
많은 기독교 대학들이 태양열 패널이나 흰 지붕을 설치하고, 지속가능한 농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특별히 지속가능성과 기후를 바라보는 관점을 포함하는 선교 구호 및 개발 여행을 주도함으로써 길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매우 많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여러분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 러분의 구체적인 행동은, 심지어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변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여기 시작해 볼 만한 몇 가지 행동이 있습니다.
1. 밖으로 나가십시오.
창조 질서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 하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 '기후 관리인'(Climate Caretakers)에 등록하십시오.
매달 여러분이 해야 할 세 가지 일과 기도제목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3. 교회에서 세미나를 여십시오.
과학과 신학의 대화나 기독교환경운동 연대의 연사를 초대하십시오.
4. 마지막으로,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에 관해 과학과 신학으로부터 양질의 정보를 구하십시오.
출처 : 과학과 신학의 대화(우종학 지음, 정모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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