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과학은 믿을만한가?
진화 과학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전술 중 하나는 그것에 "역사과학"(historical science)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과학이 시험할 만한 예측을 전혀 할 수 없으며 오로지 과거에 대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추측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과거는 직접적인 관찰이 불가능하며 반복 가능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조작적", "관측적" 또는 "실험적"이라 불리는 다른 과학은 현재의 상황을 관찰하고 직접 자신의 가설을 시험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구별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술과 현대 의학을 책임지고 있는 범위까지의 과학은 신뢰하고, 지구의 오랜 역사와 진화의 실체를 규명하는 과학은 거부 할 수 있게 합니다.
역사과학과 다른 종류의 과학을 구별하는 것이 정말 필요할까요?
서론
먼저 '역사과학'이라는 용어는 달이나 에펠탑 혹은 찰스 다윈과 같이 하나의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졌다고 주장되는 일련의 활동에 주어진 꼬리표입니다.
또 다른 특징들을 이용해 다른 꼬리표를 붙이는 식으로 이런 활동을 분류하는 다른 방법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리과학 대 생명과학, 경험과학 대 이론과학, 혹은 자연과학대 사회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각각은 특정 맥락에서는 유용한 구분 이지만, 과학을 분류하는 방법이 많고 다양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 중 어떤 것도 절대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우리가 특정 맥락에서 어떤 활동을 정당하게 "역사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 는 것도 유용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의 핵심은 과학이 과거에 대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지의 여부입니다.
과거에 대한 추론
과거에 일어난 한 사건을 직접 관찰한 적도 없는 사람이 그 사건에 대해 추론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예를 생각하면서 시작해 봅시다.
사라는 어느 날 퇴근해 집에 돌아와 차고에 있던 아들의 자전거가 없어진 것을 발견합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즉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 다.
그녀의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친구 집에 갔다는 추론과 자전거를 도둑맞았다는 추론입니다.
이 두 가지 설명 모두 지금까지 주어진 데이터와 일치하고, 사라가 그 데이터를 더 꼼꼼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만약 아들이 어디론가 갔다면 엄마에게 연락해서 알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두 번째 설명, 곧 도둑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설명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러나 차고의 문과 창문은 모두 잠겨 있었고, 누군가 무단침입을 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자전거 외에는 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이 연락하는 것을 잊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들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설명이 더 타당할까요?
그녀가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좀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어딘가에 갔는데 연락하는 것을 잊어버렸다면, 집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검증할 수 있는 예측입니다.
사라는 집에 들어가서 아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대답을 듣지 못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었나요? 아닐 것입니다.
가끔 그녀가 아들을 부를 때, 아들이 다른 방에서 헤드폰을 쓰고 있느라 대답을 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여전히 데이터가 더 필요합니다.
그때, 사라는 예기치 않게 카운터 위에 있는 아들의 핸드폰과 그 옆에 메모지를 발견합니다.
거기에는 "마이클 집에 가요. 저녁 때 올게요. 미안해요. 내 핸드폰이 고장났어요"라 고 쓰여 있습니다.
이제 관찰 가능한 모든 사실이 하나의 이론에 잘 들어맞습니다(아들이 전화하거나 문자 보내는 것을 잊은 게 아닌 셈이므로, 그녀는 그 이론을 조금 수정해야 했지만 말이지요).
그럼 이제 아들이 차고에 있던 자전거를 타고 친구 집에 갔다는 것이 증명되었나요?
그렇지 않습 니다.
자전거는 도둑맞았고 아들은 친구 집에 걸어서 갔다고 해도 주어진 사실들과 부합하거든요.
관측을 더 하면서 이론을 또 다시 수정 해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약 아들이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녀는 자전거는 도둑맞았고 아들은 유괴당한 뒤 그 노트를 쓰도록 강요 받은 건 아닐까 걱정하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현재의 증거를 보면, 아들이 마이클 집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고 결론을 짓는게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이 가상 사건의 여러 가능한 설명 중 하나를 거의 확실하게 정해 줄 다른 증거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억지는 아니지요.
과거에 대한 추론을 보여 주는 이 이야기는 과학으로 불리기에는 자격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관찰이 보다 정확하고 체계적이라면, 또 자연 세계의 여러 측면에 대한 것들이라면, 이른바 '역사과학'을
하는 과정과 아주 비슷해집니다.
법의학은 현재의 관찰로부터 시험 가능한 예측을 만들어 냄으로써 과거에 대한 결론을 추론하는 확실한 예이지요. 유전자 증거는 끔찍 한 범죄 용의자에게 유죄를 선고하거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데 특별히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관찰과 예측
잃어버린 자전거와 법의학의 예에서처럼, 진화 이론은 관찰로부터 시작됩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그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 니다.
H. M. S. '비글'호에 탑승했을 때, 나는 자연과학자로서 남아메리카에 사는 유기체들의 분포와 그 대륙에서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들과 현재 살고 있는 생명체들 사이의 지질학적 관계에 대한 특정 자료들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자료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하나가 말했던 것처럼,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인) 종의 기원에 대해 어떤 빛을 비추어 주는 것 같았다.
1837년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이 질문에 대해 무엇인가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문득 들었다.
그 질문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을 것 같은 모든 종류의 자료들을 끈기 있게 모으고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5년간의 작업이 끝나고, 나는 그 주제에 대해 숙고한 후 몇몇 짧은 글들을 작성했다.
1844년, 나는 이 글들을 당시 내게는 상당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결론의 형태로 확대시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꾸준히 그와 같은 목표를 추구해 오고 있다.
다윈의 기원
다윈은 자신의 관찰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과거 사건들에 대한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실증적인 검증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전에 그는 수년간 따개비를 연구했습니다.
어느 한 종 내의 다양성이나 흔적 기관의 특성과 같은 것에 자신의 가설이 가지는 의미를 검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증명되지 않았던, 가장 유명한 예측 중 하나는 고래와 돌고래와 같은 해양 포유류가 점진적으로 수중 생활에 적응해 간 육지 포유류로부터 진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발견된 화석 중에는 그의 예측을 입증하는 훌륭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아주 먼 과거의 사건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 얼마나 뛰어난 예측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또 다른 놀라운 예가 있습니다.
바로 틱타알릭 화석의 발견입니다.
진화 이론에 따르면, 그 동안 알려진 화석과 그 연대를 근거로 육상 동물이 약 3억 7천 5백만 년 전에 수생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생명체가 보존되기에 적절한 조건에서 형성된 그 시대의 암석층이 있다면, 과도기적 화석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지요.
과학자들이 접근 가능한 암석층이 존재하는 지구상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가 캐나다 최북단 지역입니다.
1990년대 말, 과도기적 화석을 찾기 위해 이 지역으로 가는 원정대가 조직되었고, 2004년에 어류와 양서류의 중간적인 특징을 명확히 보여 주는 세 개의 틱타알릭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진화 이론과 지구의 자연사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적인 이해가 옳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 발견을 기록한 PBS 비디오 시리즈를 시청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날 DNA는 진화론적 가설의 예측을 시험해 보고 입증하는 강력한 수단을 제공합니다.
두 가지 현생 종의 DNA를 비교함으로써, 과학자들은 가장 최근의 공통 조상이 언제 존재했는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틱타알릭 화석 발견의 예와 같이, 그 시기에 해당하는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현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또는 어느 종들의 공통 조상에 대한 계통수를 만들기 위한 화석 연구와 비교형태학 연구로부터 예측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형태를 바탕으로, 유인원 중 어떤 종이 인간과 더 가까운지에 대한 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
각 종들의 DNA에서 보이는 특정 돌연변이들을 서로 비교할 수 있 게 되면서 이 문제는 확실하게 해결되었습니다.
과학의 한계와 자연사
과학이 현재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과학이 과거에 일어난 모든 것을 밝혀내고 설명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과학은 특히 자연계의 일반적인 패턴이나 법칙 같은 현상을 밝히는 데 적합한데, 이를 우리는 세계의 자연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기적은 과학적인 예측과 어긋나는 증거를 남길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가끔 기적을 행하신다는 믿음이 우리가 자연사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막지 않습니다.
단지 자연사가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천문학자, 지질학자, 생물학자들은 우주 역사의 상당 부분에서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과학에 의해 발견되거나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출처 : 과학과 신학의 대화(우종학 지음, 정모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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