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2016년 12월 27일 : 단 하나의 계명, 사랑

w.j.lee 2016. 12. 27. 22:02

단 하나의 계명, 사랑

찬  송 : 218장 -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성  경 : 요한복음 15:12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절 :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정말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보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것이고, 나를 희생하는 가운데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갸륵한 희생을 사랑의 참된 본으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것이 우리 삶에서 일어나게 할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이 가능할 수 있는 근거가 오늘 본문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이러러주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이 말씀 안에는 전제(前提)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당신의 독자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과 성령의 친밀함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이 담겨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사랑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사랑은 당신의 독자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 안에서 하나 됨으로 가능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온전히 예수 안에 있어서, 그 사랑의 충만함으로 우리와 세상을 향한 거룩한 사랑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이며 어떠한 것인지를 발견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창조하신 분의 피조물을 향한 무제약적인 사랑, 당신의 거룩과 공의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당신을 제약하고 한없이 낮아지시는 사랑, 우리의 고양(高揚)을 위해 기꺼이 당신을 십자가에 추락시키는 이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묵상하는 가운데 몸으로 체인(體認) 하며 그 사랑을 온전히 누려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젖어들지 않고서는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 한다는 것은 사랑 받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사랑 받아 사랑으로 충만해지지 않고서는 사랑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란 말이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메마른 것은, 사랑 받지 못한 이들이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기 보다 상처를 내기 일쑤인 까닭입니다.

사랑하기 전에 사랑 받음을 온전히 누리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을 그저 흘러넘치게 하십시오. 그것이 사랑의 길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이 말씀이 일상에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 사랑으로 충만해지지 않고 어떻게 사랑할 수 있으며, 온전히 사랑 받는 자녀로 살아보지 않고 어떻게 사랑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눈을 열어 주의 사랑을 발견하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대선 목사 ㅣ 영파교회




고양(高揚) : 의식, 감정, 분위기 따위를 한껏 북돋워서 높임
체인(體認) : 마음속으로 깊이 인정하거나 납득함


출처 : 2016년 하늘양식 중에서